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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 열린 롯데액셀러레이터 개소식.
 4월27일 열린 롯데액셀러레이터 개소식.
ⓒ 롯데액셀러레이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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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스타트업에 진짜 '갑질'을 했을까.

롯데그룹의 창업보육투자법인인 롯데액셀러레이터(대표 이진성)가 최근 한 스타트업에게 잔금 미지급 등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스타트업 대표는 현재 롯데액셀러레이터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상태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올해 2월 설립된 롯데그룹의 창업보육전문법인이다. 스타트업 지원을 통해 청년창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직접 100억 원을 사재 출연하고 롯데쇼핑 등 주요계열사에서 200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이 중 150억 원을 법인설립 단계에서 우선적으로 조성했다. 9월까지 L캠프 1기 입주기업으로 15개 스타트업을 육성 배출했으며 현재 2기 기업을 모집 중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마케팅 스타트업 '주식회사 청년'(아래 '청년' 대표 박계환)은 올해 2월 롯데 액셀러레이터와 마케팅 및 홍보 대행 업무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두 회사는 당초 1년간 총 2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지만 롯데 측의 조정요구로 2월 29일부터 8월 말까지 6개월간 총 1억920만 원으로 마케팅 대행 업무를 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온라인특수사업종목의 특성상 100% 선금과 월정액으로 지급하기로 한 바 있으며 롯데 측은 3월 4일 서면 계약 후 첫 대금 1820만 원(부가세 포함)을 청년 측에 지급했다. 이후 4월분 대금을 4월 21일에, 5월 분을 5월 12일 세 차례 대금을 '청년' 측에 지급한 바 있다.

분쟁은 롯데 쪽이 6월분 대금지급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롯데 쪽이 계약 만료를 3개월여 남겨둔 6월 7일, 마케팅 비용이 과다 청구됐다며 대금 지급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과다 청구된 대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청년'쪽이 이를 거절하자 롯데 쪽은 "나머지 계약기간인 3개월 치 대금을 주지 않으면 대금을 환불받은 것이나 같다"라면서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롯데 쪽으로부터 갑질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청년'의 박계환 대표와 롯데액셀러레이터 김영덕 상무를 각각 11일과 12일 만나 양측의 입장을 듣고 다섯 가지 쟁점별 사실관계를 짚어봤다.
주식회사 청년과 롯데액셀러레이터의 계약서 사본.
 주식회사 청년과 롯데액셀러레이터의 계약서 사본.
ⓒ 주식회사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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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①] 롯데 쪽의 대금지급 거부 이유는 합당한가

먼저 '청년'이 수행하기로 한 '롯데'쪽 마케팅/홍보 업무에 대한 계약서 내용을 살펴봤다.

제2조 "청년"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마케팅"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별첨]에 의하며, [별첨]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양사가 합의하여 결정한다

[별첨]에 따르면 청년이 수행하기로 한 마케팅 업무는 다음과 같다. 콘텐츠 제작, 홍보/마케팅 전체 그래픽, 공식 블로그 관리,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 언론/미디어 마케팅, 영상제작 및 홍보, 글로벌 사이트/커뮤니티 홍보, 네이버 키워드 광고, 커뮤니티 홍보, 교육/행사 진행 등이다.

박 대표는 3~5월 '청년'이 마진을 너무 많이 챙겼다는 이유로 롯데 쪽이 대금 일부 반환을 요구한 것과 6월 이후 대금 지급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미 서면 계약서를 통해 월정액으로 대금을 100% 선지급 하기로 했고, 3개월간 업무를 진행한 사안에 대해 비용 청구가 과다한지 여부는 다분히 주관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청년' 쪽은 3개월간 롯데 쪽 담당 매니저의 지나친 업무 간섭과 직원 빼가기 의혹 등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는 '청년'이 수행하기로 한 마케팅 및 홍보 업무가 40%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상무는 "계약 3개월이 지나도 제대로 된 홍보나 마케팅 퍼포먼스가 보이지 않았다"라면서 "청년 측은 롯데 업무에 3명을 투입했다고 했지만 동영상 SNS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김아무개씨 1명만 일하고 있었다"라고 맞섰다.

롯데 쪽은 또 김아무개씨가 3개월 동안 월급으로 120만 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청년'에게 지급한 월 1820만 원 중 김아무개씨 급여 외 나머지 비용은 어디에 썼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롯데액셀러레이터쪽이 제시한 본 계약서의 별첨1.
 롯데액셀러레이터쪽이 제시한 본 계약서의 별첨1.
ⓒ 롯데액셀러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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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②] 박계환 대표의 임금체불 이유는 롯데 때문?

이때부터 김 상무는 직원들에게 '청년'의 업무진행 상황을 꼼꼼히 체크할 것을 지시했다. 이계준 롯데액셀러레이터 경영기획실 팀장은 "박 대표가 매월 대금 지급이 조금씩 늦어졌다고 문제삼는데 '청년' 측이 대금사용내역 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해 4월분 지급이 다소 늦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팀장은 또 '청년'이 지키지 않은 약속이 하나 더 있다고 말했다. 대행사로 선정되기 전 PT 당시 '청년'은 마케팅 홍보 관련 스타트업 연합체를 만들어 롯데가 원하는 스펙을 맞추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청년'의 일부 직원들이 임금 체불을 이유로 박계환 대표를 노동부에 신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스타트업이 돈을 쌓아놓고 일을 하는 형편은 아니지 않나"라며 "롯데의 일방적인 대금지급 거부로 인해 6월부터 직원들의 임금을 주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임금을 못 받게 되자 롯데 업무를 담당했던 '청년' 쪽 직원 2명은 7월 11일 부로 퇴사했다.

김 상무는 "3개월간 매월 1820만 원씩 받았는데 왜 직원 급여를 못 준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라면서 "6월 이후 청년은 롯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6~7월 잔금을 전액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6월 이후 '청년'이 롯데 일을 수행하지 못한 이유는 롯데 쪽이 일방적으로 업무 권한을 김아무개씨에게 넘겼기 때문이라고 재반박했다. 또 6월에 '청년'쪽 시각디자이너에게 수공예 게시판 제작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롯데쪽이 제시한 (주)청년의 6월 예산 집행내역.
 롯데쪽이 제시한 (주)청년의 6월 예산 집행내역.
ⓒ 롯데액셀러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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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③] 청년 "직원 빼가기 의혹" vs. 롯데 "세금계산서가 반증"

'청년'의 직원 신분으로 3개월간 동영상 및 SNS 홍보업무를 담당했던 김아무개씨가 퇴사 후 롯데 쪽 동영상 업무를 계속 수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양쪽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김아무개씨는 6월 9일 '청년' 쪽에 퇴사 의사를 밝혔고, 공교롭게도 6월 10일 이후 개인사업자로서 롯데 쪽의 요청을 받아 기존 업무를 계속 수행했다. '청년' 쪽이 직원 빼가기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다. 6~7월 두 달간 김씨의 임금 지급을 누가 해야 하는지를 놓고 양쪽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형국이다.

롯데 쪽은 계약만료 기한인 8월까지는 '청년' 쪽에 업무수행 권한이 있으므로 김씨에게 하도급을 준 쪽은 '청년'이며 당연히 '청년'이 김씨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청년' 쪽은 김씨가 6월 9일 사직서를 직접 써서 제출했고 김씨가 하던 업무를 대체할 직원을 구해놨지만 롯데 쪽의 일방적인 요청 때문에 김씨가 업무를 계속하는 것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박 대표는 "6월 9일 퇴사 후 '청년'과 김씨는 어떤 하도급 계약도 진행한 바가 없으므로 당연히 일을 시킨 롯데가 김씨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롯데 쪽은 7월 13일 박 대표가 제출한 세금계산서를 증거 자료로 제시했다. '청년'이 제출한 세금계산서에 엄연히 김아무개씨가 운영하는 업체 이름으로 수행한 업무를 포함한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세금계산서에는 김씨가 운영하는 업체가 동영상 9편 제작비 1820만 원을 '청년' 측에 청구한 사실이 드러나 있고 이를 통해 김씨가 '청년'과의 계약관계로 일했다는 것을 '청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쟁점④] "롯데 매니저가 회사파산 권고했다" 진실은?

롯데 쪽이 박 대표에게 회사 파산을 권고했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박 대표가 8월 롯데 쪽 담당자에게 "잔금을 받지 못해 직원들 임금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더니 롯데 쪽 담당자가 "법인파산을 신청하면 임금을 줄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는 주장이다.

롯데 쪽은 박 대표가 직원들 급여를 못줄 정도로 경영난에 빠졌다며 잔금 지급을 요청했을 때 "그 정도라면 파산이라는 방법을 쓰면 채권 우선순위가 직원들에게 있으니 급여를 챙겨줄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뉘앙스로 조언했다는 입장이다. 3월 초 계약 이후 한 번도 미팅에 참석하지 않았던 박 대표가 8월에야 나타난 사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스타트업 한 관계자는 "파산신청을 종용했다는 주장은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고 본다"라면서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상대로 갑질을 했다면 어떤 행태를  저질렀는지, 스타트업은 과연 프로답게 제대로 업무처리를 했는지 등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 '대기업 갑질'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도배된 언론 보도를 통해 일방적으로 한쪽만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행태"라고 지적했다.

9월7일 열린 L-CAMP 1기 선발기업을 위한 행사 '데모데이 2016'.
 9월7일 열린 L-CAMP 1기 선발기업을 위한 행사 '데모데이 2016'.
ⓒ 롯데액셀러레이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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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⑤] 롯데 측 조치는 업무상 '갑질'로 볼 수 있나

'청년' 측이 느낀 가장 심한 갑질로는 롯데 쪽이 제시한 틀에 맞춰 업무계획을 다시 짜오라고 요구한 것과 목표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이미 지급한 대금의 부당한 환불을 요구한 점, 협력업체의 자격을 문제 삼으며 포트폴리오를 요구한 점, 주 1~2회씩 정기미팅에 대표 출석 강요, 6월 10일 이후 업무를 동의 없이 김아무개씨에게 넘긴 점 등이 있다. 박 대표의 주장을 그대로 전한다.

"3~4월 업무가 진행된 상태에서 예산이 납득이 안 된다며 1820만 원(부가세 포함)을 어디에 썼는지 명세서를 다 가져오라고 했다. 6월엔 '청년'이 마진을 너무 많이 가져갔다며 과다청구에 대한 환불 이야기가 나왔다. 또 1편당 200만 원으로 책정된 협력업체의 동영상 제작비에 대해 100만 원이면 충분하니 130만 원으로 깎고 환불받으라고 하며 협력업체 이력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동영상 제작비는 업체의 업무 퀄리티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비교 견적을 내봐도 200만 원은 비싼 편이 아니라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또 애초 계약서상 '청년'이 마진으로 얼마를 가져가든 이미 결제를 했고 결과물이 나왔으면 클레임을 걸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5월 말쯤 롯데 쪽 매니저가 타임랩스 장면을 찍기 위해 드론 항공촬영 영상작업을 요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드론 사용허가를 받기 위해 2~3주간 대기 중일 때 롯데 쪽이 일방적인 취소를 요청했고 '청년'은 영상 협력업체에 지급한 300만 원의 계약금을 고스란히 날릴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롯데 쪽 김 상무는 "드론촬영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실무자를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해보겠다"라고 답했다.

7월 4일 '청년'은 롯데 쪽으로부터 더 이상 맡길 일이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박 대표는 7월 31일까지 롯데 쪽 페이스북 광고관리비가 '청년' 계좌에서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페이스북 관리권한은 빼앗겼지만 광고비는 7월 말까지 '청년' 계좌에서 집행됐다는 것이다.

8월 이후 박 대표는 롯데 쪽에 몇 차례 면담을 요청했으나 잔금지급 여부에 대한 공식답변을 듣지 못했다. '청년'은 9월 롯데 쪽에 민형사 고소 및 손해배상청구, 공정위 고발, 언론공표 예고 등을 통지했다.

6개월간 사태를 지켜본 L캠프 1기 입주기업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스타트업이라도 비즈니스는 프로페셔널하게 해야 하는데 '청년'의 경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라면서 "롯데 쪽 담당자의 태도 역시 충분히 갑질로 오해할 만한 사안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초 스타트업 지원기관이라는 취지를 살리자는 선의에서 시작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만남은 결국 '잘못된 만남'으로 끝나게 됐다.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좋은 의도를 갖고 스타트업에 일을 맡긴 건데 업무처리가 미숙한 것은 물론 되레 '갑질 기업'으로 매도당한다면 앞으로 어떤 대기업도 스타트업과 협업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비슷한 유형의 대기업-스타트업 간 '갑질 논란'이 계속 되는 한 오늘도 생존을 다투며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는 다른 스타트업들에게 피해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9월7일 열린 L-CAMP 1기 선발기업을 위한 행사 '데모데이 2016'.
 9월7일 열린 L-CAMP 1기 선발기업을 위한 행사 '데모데이 2016'.
ⓒ 롯데액셀러레이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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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스타트업, #롯데액셀러레이터, #갑질, #대기업,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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