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녹음곡을 사후 음반화한 <김현식 2013년 10월> 표지

미공개 녹음곡을 사후 음반화한 <김현식 2013년 10월> 표지 ⓒ 다날


김현식은 1980년대 들국화와 더불어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음악인 중 한 명이었다. 첫 출발은 그 무렵 여타 가수들처럼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힘겹게 노래하는 무명가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984년 발매된 2집 수록곡 '사랑했어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김현식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그 당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3집 이후론 김종진, 전태관, 유재하, 박성식, 장기호, 윤상 등 젊은 후배들을 적극 기용하면서 팝, 퓨젼 재즈 등 1980년대 해외 음악계의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포용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TV 라는 외부적 도움 없이 라디오, 공연 등 오직 음악 하나로만 승부를 걸면서 자신만의 창작혼을 불태웠던 점은 김현식표 음악이 완성되는 데 밑거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자기 관리에 실패하며 (마약, 술) 1990년 만 서른두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음악 만큼은 여전히 강한 생명력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부지기수다. 하지만 김현식처럼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것이 그가 떠난 지 26년이 지난 지금, 그의 빈자리가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김현식은 생전 총 5장의 정규 음반 (후에 2장이 더 발매된다)과 신촌블루스 및 OST 참여 등 다양한 음반을 녹음한 바 있다. 이들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음악적 발자취를 되짚어 보았다. 

[1집 <김현식 새노래>(1980년)] 출렁이는 펑키, 디스코 사운드의 향연

 김현식 1집 표지

김현식 1집 표지 ⓒ (사)한국음반산업협회


'봄 여름 가을 겨울', '어하둥둥 내사랑'(들고양이 원곡), '주저하지 말아요'(1981년 방미 리메이크), '떠나가 버렸네' 등 수록.

원래 이 음반은 1978년부터 녹음되었지만 실제 발매는 2년 후인 1980년에 이뤄졌다.  LP 기준 A면은 편곡자 김명곤(키보드)의 영향 탓인지 그 무렵 인기 록밴드 사랑과 평화를 연상케하는 펑키, 디스코 스타일의 곡들로 채워져있다. 특히 주제곡에 해당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그의 애창곡 중 하나로 사랑받았고 후일 자신의 백업 밴드 및 김종진-전태관의 그룹명으로 사용될 만큼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 명곡이다.

반면 B면은 어쿠스틱 발라드-포크 성향의 곡들로 구성되었다. 녹음 시기의 차이 탓인지 A면에 비해 녹음 상태는 썩 좋은 편은 아니다. 1970-1980년대 가요 음반에는 반드시 들어가야만 했던 건전 가요로는 특이하게도 다른 가수(1970년대 인기가수 장미화)가 부른 '아름다운 노래'가 수록되었다.

[2집 <김현식 2>(1984년)] 인기가수로 발돋움

 김현식 2집 표지

김현식 2집 표지 ⓒ (사)한국음반산업협회


'사랑했어요', '어둠 그 별빛', '바람인줄 알았는데', '변덕쟁이'(이승철 리메이크) 등 수록.

4년의 절치부심. 그가 내놓은 발라드 '사랑했어요'는 1984년 발매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지금 기준으로는 성인가요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블루스에 기반을 둔 호소력 짙은 그의 목소리는 이미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완성된 느낌이다.

이 음반을 들고 활동하던 1984-1985년 무렵 <이종환의 디스크쇼> <별이 빛나는 밤에> 등 당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공개방송 무대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밖에 '어둠 그 별빛', 공연 애창곡 '바람인줄 알았는데' 등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3집 <김현식 III>(1986년)] 자신만의 음악을 완성하다

 김현식 3집 표지

김현식 3집 표지 ⓒ 케이앤씨뮤직


'비처럼 음악처럼'(박성식 작곡), '가리워진 길'(유재하 작곡), '쓸쓸한 오후'(김종진 작곡), '그대와 단둘이서'(장기호 작곡), '눈 내리던 겨울밤', '떠나가 버렸네' 등 수록.

김현식은 초기 백업 밴드 '돌개바람'에 이어 또 한 번 음반을 위해 팀을 결성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전태관-박성식-장기호, 초기 유재하, 최태완 등 포함)이었다. 비록 유재하는 녹음에 돌입할 무렵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했지만 이 음반에는 그의 작품 '가리워진 길'이 수록되었다.

이전까지 보여준 전통적인 가요적 화법에서 탈피한 팝 발라드와 퓨젼 재즈의 성향으로 변모한 본작에선 박성식이 만든 '비처럼 음악처럼'이 큰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김현식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골든디스크> 시상식 본상을 받을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 (당시 30만장 이상 팔린 것으로 전해짐)하기도 했다.

 3집 음반 뒷면을 장식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 사진. (왼쪽부터 박성식, 장기호, 김현식, 김종진, 전태관)

3집 음반 뒷면을 장식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 사진. (왼쪽부터 박성식, 장기호, 김현식, 김종진, 전태관) ⓒ 케이앤씨뮤직


우리가 알고 있는 김현식의 음악은 이 작품을 통해 형체를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결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호사다마랄까, 1987년 터진 마약 복용사건으로 김현식이 구속되면서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도 각기 제 갈길을 가게 된다. (장기호-박성식은 그룹 <사랑과 평화>에 참여한 후 <빛과 소금>을 만들었고 김종진-전태관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잠시 거친 후 독자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한다)

[4집 <김현식 Vol.4>(1988년)] 신인 작곡가들의 발견

 김현식 4집 표지

김현식 4집 표지 ⓒ 케이앤씨뮤직


'언제나 그대 내곁에'(송병준 작곡), '여름밤의 꿈'(윤상 작곡), '사랑할 수 없어'(장기호 작곡), '그대 내품에'(유재하 작곡), '한국사람'(김현식 작곡) 등 수록.

김현식은 8개월여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그해 말 컴백 음반으로 4집을 내놓는다. (당시 삭발을 하고 63빌딩에서 치러진 재기 콘서트는 한 팬의 미니 카세트로 녹음되어 1998년 공연 실황 음반 <Kim Hyun Sik Live>로 발매된다) 

전작에서 보여준 팝 발라드 성향은 이 음반에서 더욱 짙은 색깔을 드러낸다. 김현식 본인의 자작곡은 단 3곡 뿐이지만 신인 작곡자였던 송병준 (현재 드라마 제작자), 후일 솔로가수로도 대성공을 거둔 당시 스무살 나이의 윤상이 이 음반을 통해 데뷔하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그밖에 이후 그의 유작이 된 6집(1991년)에도 수록된 하모니카 연주곡 '한국사람'은 지금 들어도 듣는 이의 마음을 쓸쓸하게 적셔준다.

[<김현식 베스트>(1989년,1991년 재발매)] 예전 히트곡의 재해석

 김현식 베스트 음반 표지

김현식 베스트 음반 표지 ⓒ 케이앤씨뮤직


'사랑했어요'(재녹음), '봄 여름 가을 겨울'(재녹음) 등 수록.

정규 4집 앨범 발매 이후에 나온 공식 베스트 음반이다. 그의 사후인 1991년 일부 수록곡을 달리해서 재발매되었다. CD를 비롯해 현재 음원사이트에 등록된 버전은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당시 김현식의 대표곡들을 모두 아우르기엔 2% 부족한 선곡이지만 동아기획 소속 이전에 나왔던 1-2집 수록곡들인 '사랑했어요'와 '봄 여름 가을 겨울'(1991년 발매)이 새로운 편곡으로 재녹음 수록된 게 이채롭다. 이밖에 신촌블루스 음반에 참여했던 '골목길'(1991년 발매) 등이 담겨져 있다.

[신촌블루스 2집 <신촌Blues II>(1989년)] 멋진 블루스의 향연

 신촌블루스 2집 표지

신촌블루스 2집 표지 ⓒ 케이앤씨뮤직


'골목길', '환상'에 참여.

소속사 동아기획의 음악 동료들이자 선배들인 이정선, 엄인호의 신촌블루스 2집에 김현식도 찬조 출연(2곡)하게 된다. 아직 피처링의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앞선 음반 기획으로 볼 수 있다. 엄인호가 만든 '골목길'은 한국적 블루스의 가능성을 보여준 명곡으로 자리매김했고 역동적인 브라스 섹션+한영애의 보컬이 뒤를 든든하게 받쳐준 '환상'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신촌블루스 Live Album>(1989년)] 신촌블루스의 첫 번째 공연 실황

 신촌블루스 라이브 앨범 표지

신촌블루스 라이브 앨범 표지 ⓒ 케이앤씨뮤직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비오는 어느 저녁'(정경화 보컬), '떠나가 버렸네', '우리네 인생'에 참여.

신촌블루스의 첫번째 공연 실황으로 원로가수 최희준, 한영애, 정경화 등이 보컬로 참여했다. 이 작품에서 김현식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떠나가 버렸네'를 열창했고 엔딩곡 '우리네 인생'(해바라기 원곡)에서도 공동 보컬로 빼어난 목소리를 들려준다. 1980년대 후반 녹음된 탓에 요즘의 라이브 앨범에 비해 음질은 다소 아쉽다.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 사운드트랙(1989년)] TV 순위를 장악하다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 사운드트랙 표지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 사운드트랙 표지 ⓒ (주)벅스


'그 거리 그 벤취', '비 오는 날 수채화'에 참여.

영화 <엽기적인 그녀> 곽재용 감독 연출, 옥소리-강석현 주연의 청춘 멜로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 사운드트랙이다. 강인원(작곡), 권인하와 함께 부른 '비오는 날 수채화'는 KBS <가요톱텐> 1위에 오르는 등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밖에 솔로곡 '그 거리, 그 벤취'가 수록되었다.

[신촌블루스 3집 <신촌Blues III>(1990년)] 최후의 피처링

 신촌블루스 3집 표지

신촌블루스 3집 표지 ⓒ 케이앤씨뮤직


'이별의 종착역' 참여.

1989년부터 2년 동안 김현식은 무려 다섯 작품 이상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다. 아마 이무렵 그는 앞으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직감했던 모양이다. 김현식 5집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신촌블루스의 정규 3집에선 옛가요 '이별의 종착역' 한 곡을 불렀으며 특유의 보컬+블루스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5집 <김현식 5>(1990년)] 가객의 마지막 울부짖음

 김현식 5집 표지

김현식 5집 표지 ⓒ 케이앤씨뮤직


'넋두리', '그 거리 그 벤취'(강인원 작곡), '거울이 되어'(이원재 작곡) 등 수록.

김현식의 생전 마지막 음반. 1989년 무렵부터 김현식의 건강(음주)에 이상이 있다는 건 팬조차도 알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본인의 공연 무대에서 술에 잔뜩 취한 채 노래를 하는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진 탓에 수록곡 '넋두리'를 들은 이들은 '이게 그의 마지막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진작가 김중만이 촬영한 음반 뒷면 사진 역시 의미심장한 느낌을 주었다. 심지어 원래 LP 표지의 경우, '김현식5'가 아예 빨간색으로 기재되었다가 CD에선 지금의 회색으로 변경되었다)

 김현식 5집 음반 뒷면에 실린 사진(김중만 사진작가의 작품). 빗물로 적셔진 맨땅에 낡은 청바지, 운동화, 맨발로 선 모습은 이미 그의 죽음을 예견한 듯 보였다.

김현식 5집 음반 뒷면에 실린 사진(김중만 사진작가의 작품). 빗물로 적셔진 맨땅에 낡은 청바지, 운동화, 맨발로 선 모습은 이미 그의 죽음을 예견한 듯 보였다. ⓒ 케이앤씨뮤직


찰칵찰칵 시계소리를 시작으로 기타의 아르페지오 선율, 이어지는 독백. 그리고 박청귀의 신들린 듯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 연주는 처절함을 담은 김현식의 그 무렵 목소리와 더불어 마치 자신의 목숨을 걸고 노래한 듯했다.  

<비오는 날 수채화> OST 삽입곡 '그 거리 그 벤취'가 새로운 편곡으로 재녹음되었고 신촌블루스의 베이시스트였던 이원재의 소박한 재즈-블루스 넘버 '거울이 되어'는 숨은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본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쾌한 분위기의 복음성가 '할렐루야'는 가장 이질적인 수록곡인데 어찌보면 당시 그가 처했던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4집에 이어 또 한 번 프로듀서, 편곡자로 활약한 베이시스트 송홍섭은 본작의 완성도를 높이는 숨은 공신 중 하나였다. 필자 개인적으론 3집과 더불어 김현식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하고 싶다.

[6집 <Kim Hyun Sik Vol.6>(1991년)] 국민가요의 탄생

 김현식 6집 표지

김현식 6집 표지 ⓒ 케이앤씨뮤직


'내사랑 내곁에'(오태호 작곡), '추억만들기', '사랑 사랑 사랑' 등 수록.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오태호가 만든 명곡 '내사랑 내곁에' 등이 수록된 6집 유작 음반이 공개된다. 사실 내용만 놓고 보면 정규 음반이라기 보단 '내사랑 내곁에', '추억만들기', '사랑 사랑 사랑' 등 미공개 유작 + '사랑했어요', '한국사람' 등 기존 발표곡들을 합친 급조된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워낙 좋은 곡들이 수록된 덕에 이 작품은 1991년 무려 100만장 이상이 팔리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해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을 받았는데 사후에 수상한 가수는 그가 유일하다)

[김현식 7집 <Self Portrait>(1996년)] 미공개 녹음곡 수록

 김현식 7집 표지

김현식 7집 표지 ⓒ 케이앤씨뮤직


'다시 처음이라오'(김현식+김장훈 노래) 등 수록.

김현식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난 1996년 뜬금없이 7집이 발매된다. 사실은 그가 병상에서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힘겹게 부른 곡들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음반화한 것으로 음질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대신 김현식의 목소리를 인트로 삼아 그의 막역한 후배였던 김장훈이 '다시 처음이라오'(원곡가수 문관철)를 부르는 등 나름 공을 들인 흔적도 역력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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