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하기는 어렵다. 미디어에 비친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이미지는 패러디하기에 좋은 '사냥감'이었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눈보다 조금 위에 착용하고 비스듬히 몸을 틀어 찍힌 사진은 최순실이라는 인물을 파악하기 용이한 이미지였고, 즉시 이태원 할로윈 축제 장을 비롯한 많은 공간에서 패러디 대상이 됐다. 그 사진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이 최순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진 한 장이 갖는 파급력은 상당했다. 또한 언론이 확보하고 있는 최순실씨에 대한 사진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진은 언론에 반복적으로 노출됐다. 말하자면 이 한 장의 사진은 대중들이 최순실에 대해 이미지로 추론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보값의 총체였다.

여기에 보도가 계속 되면서 최순실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정보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시종일관 예의가 없고, 청와대 경호원들을 사병처럼 거느리며, 딸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단한 '아줌마'. 이런 이미지 소비는 명품 브랜드 '프라다' 신발을 신었다는 것에서 한층 더 강화됐다. 지난 5일과 6일 각각 방송된 <SNL코리아 시즌8>과 <개그콘서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그콘서트>에서 개그우먼 이수지씨가 '비선실세' 최순실로 분했다.

<개그콘서트>에서 개그우먼 이수지씨가 '비선실세' 최순실로 분했다. ⓒ KBS


직접적으로 최순실 다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스탠드업 코미디쇼인 <개그콘서트>와 <SNL코리아>는 비선실세인 최순실을 '직접' 패러디했다. <개그콘서트> 코너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들'에서는 개그우먼 이수지씨가, <SNL코리아 시즌8>에서 개그맨 김민교씨가 최순실로 분했다. 스마트폰을 쥐고 흰 테두리의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 같은 외양까지 유사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이들 패러디의 전부였다.

<개그콘서트>에서는 개그맨 유민상이 최순실로 분한 이수지에게 "요즘 떠들썩한 그 분이 아니냐"고 물었고 이수지는 이에 "나는 그 사람 아니"라며 "그 사람 닮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듣는 거야 정말"이라고 반응했다. 이어 들고 있는 가방이 '태블릿PC가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 "클러치백이다" "나 독일에서 오지 않았다" "실세 아니다"는 발언을 했다. 최순실로 분했지만 최순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내용의 콩트였다.

 지난 5일 방송된 <SNL 코리아 시즌8>에서 최순실을 패러디한 김민교.

지난 5일 방송된 에서 최순실을 패러디한 김민교. ⓒ tvN


 tvN < SNL 코리아 >의 최순실 모녀 패러디 장면

tvN < SNL 코리아 시즌8 >의 최순실의 딸을 패러디한 유세윤 ⓒ SNL


<SNL코리아 시즌8>에서는 최순실씨의 신발이 주된 패러디 소재로 쓰였다. 김민교는 '프라다'가 아닌 '프라도(PRADO)' 신발을 신고 세입자의 집에 들어와 집세를 올리겠다고 선포했다. 세입자는 이에 올리지 말아달라고 통 사정을 했고 그러던 중에 신발 한짝이 벗겨지는 구성의 콩트다. 이어지는 코너에서 유세윤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로 등장해 "엄마의 신발을 찾으러 왔다"는 말을 했다. 또 최순실이 검찰 출두 당시 했던 발언인 "정말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같은 패러디도 나왔다.

최순실씨가 먹어서 화제가 됐던 '곰탕'이나 '프라다' 신발, 그가 도피했던 '독일'과 같은 이미지는 패러디에 어김없이 반복됐고 그에 비해 최순실이 했던 행위에 대한 풍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SNL코리아 시즌8>의 경우 '비선실세'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씨가 순식간에 집세를 올리려는 탐욕스럽고 극성맞은 '아줌마'로 둔갑했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집세를 올리려는 최순실(<SNL>)과 국정농단을 행한 최순실 사이에 과연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 최순실의 외양을 하고 최순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인물(<개그콘서트>)과 '최순실 풍자' 사이에는 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 패러디는 결과적으로 맥락도 없고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가 아닌 그의 표면적 이미지만을 소비한 모양새가 됐다.

이는 또한 최순실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반감을 그대로 모사했다고 볼 수 있다. '명품'을 착용한 '극성맞은' '아줌마'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희화화되기 좋은 소재로 쓰였다. 최순실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은 이 국민적 반감에 훌륭하게 스며들었다. 정작 최순실의 본질은 현재 소비되는 이미지와 전혀 다름에도 말이다. 그는 아무런 직위에 오르지 않고 국정을 좌지우지한 사람이고, 국가 시스템은 그로 인해 붕괴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으며, 여전히 많은 증거를 숨긴 인물이다. 이런 정보들은 '프라다 신발'이나 '곰탕' '독일' '선글라스' 같은 이미지에 가려져 미처 드러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물론 이 역시 치열한 고민과 수위 조절 끝에 탄생한 패러디일 터다. 특히 CJ E&M의 경우 <변호인>이나 <SNL - 여의도 텔레토비> 등의 풍자로 정권과 마찰을 빚었고 곤혹을 치렀다는 의혹이 있는 만큼 이 정도의 패러디 역시 충분히 용기를 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후 개그맨 탁재훈은 자신이 맡아 진행하는 <SNL코리아 시즌8>의 한 코너 '나이트라인'에서 직직접적으로 "검찰 수사를 바란다"고 언급했고 유세윤 역시 다른 코너에서 "광화문 집회"를 언급한 점 또한 그 용기의 일환이다.

임옥상 화백 , '박근혜-최순실게이트 무덤' 퍼포먼스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7,449명, 288단체 참여)이 4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우리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참석자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철저수사, 책임자 처벌, 국회 청문회 실시, 차은택-김종 구속수사, 최순실-차은택-김종 문화부역자 사퇴, 예술검열, 문화행정 파탄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임옥상 화백이 '박근혜-최순실게이트 무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임옥상 화백이 '박근혜-최순실게이트 무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시청자들은 이들의 패러디에 반가워했다. 그럴 만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TV에서 정치 풍자를 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이전에 방송됐던 '여의도 텔레토비' 정도가 회자되는 가장 최근 정치 풍자임을 미루어보면 이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정권에 대한 비판은 방송 출연까지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다는 게 만천하에 알려졌다. 이수지씨나 김민교씨, 그리고 정유라로 분했던 개그맨 유세윤씨 모두 개인으로서는 용기를 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단순한 이미지 모사가 아닌 내실 있는 '더 나아간' 풍자를 보는 건 무리일까. 문제는 프라다 신발 같은 '최순실의 이미지'가 아닌 최순실이라는 인물 때문이고 그의 주변 공모자들 때문이라고.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앞으로 더 폭 넓게 가능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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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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