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의 베테랑 스타 김주성(원주 동부. 37)이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때아닌 '3점슛'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주성의 동부는 2016-2017시즌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현재 8승 3패로 서울 삼성과 함게 공동 2위에 올라있다. 최근 4연승 행진 중이다. 김주성은 올해 37세의 노장임에도 경기당 12.45점, 6.3리바운드. 3.5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여전히 전성기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것은 김주성의 기록에서 부쩍 높아진 3점슛의 비중이다. 김주성은 올 시즌 11경기에서 총 46개의 3점슛을 시도하여 26개를 적중시키며 성공률이 무려 56.5%로 프로농구를 통틀어 전체 1위를 기록 중이다.

김주성은 성공률 20위권내에 이름을 올린 선수 중 공동 6번째로 많은 3점슛을 시도한 선수이기도 하다. 어쩌다 한 두 번 시도한게 성공한 게 아니라 거의 슈터만큼 많이 던지고도 엄청난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돋보인다. 김주성은 경기당 3점슛 성공 개수도 2.36개로 전체 4위로 올라있다.

김주성은 올해 2점슛은 총 36개를 시도하여 17개를 성공시켰다.(47.2%) 빅맨임에도 3점슛의 공격 비중과 성공률이 더 높은 특이한 케이스다. 올해만 놓고보면 김주성을 사실상 '장신 3점슈터'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

3점 슈터로 불려도 좋을 김주성의 활약

김주성은 원래 3점슛 시도가 많은 선수가 아니었다. 올해 프로 15년차인 김주성은 그간 뛰어난 블록슛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KBL 최고의 수비형 빅맨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전성기에 김주성의 활동 반경은 주로 페인트존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특히 외곽에서의 공격 빈도는 완전한 노마크나 시간에 쫓겨 던져야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3점이 김주성의 주요한 공격루트로 부상한 것은 지난 2015-2016시즌부터다. 김주성은 총 66개의 3점슛을 시도하여 32개를 성공하며 48.48%의 높은 적중률을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김주성에게 3점슛은 어디까지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추가 옵션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 시즌 김주성의 3점은 본인은 물론이고 동부의 중요한 공격전술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동부에는 골밑 장악력이 뛰어난 로드 벤슨과 웬델 맥키네스, 윤호영 같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김주성은 잔부상 등으로 더 이상 젊은 선수들처럼 골밑에서 거친 몸싸움을 견디는 게 쉽지 않다. 오히려 슛범위와 활동량이 넓은 김주성이 외곽에 포진하면서 골밑에 몰린 상대 수비의 견제를 분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5cm의 김주성이 던지는 3점슛을 막으려면 상대 장신 빅맨들이 외곽까지 나와야하는 데다 블록슛 타이밍을 잡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김주성은 웬만한 가드 못지않은 시야와 패싱력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수비를 끌어낸 뒤에 골밑의 아군에게 정확한 엔트리 패스를 찔러주는 능력도 탁월하다. 수비로서는 이래저래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현대농구에서 장신 선수임에도 슛거리가 길고 활동범위가 넓은 유형을 가리켜 스트레치형 빅맨 혹은 포워드라고 한다. 장신 빅맨은 어디가지 골밑을 지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던 국내 농구에서는 최근까지도 빅맨의 3점슛은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NBA에서는 일찍부터 이러한 스트레치형 빅맨의 가치가 인정받았고 현대농구에서는 아예 전술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만큼 트렌드가 달라졌다. 덕 노비츠키(댈러스)를 비롯하여 케빈 러브(클리블랜드), 라이언 앤더슨(휴스턴) 등은 NBA에서 유명한 스트레치 빅맨들이다. 최근에는 마크 가솔(멤피스)같이 정통 빅맨의 유형으로 분류되던 선수들도 전술적 필요에 따라 슛범위를 늘려서 3점슛을 장착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김주성, 스트레치 빅맨으로 자리잡나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스트레치 빅맨의 원조는 역시 은퇴한 예능인 서장훈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KBL 통산 최다득점 기록 보유자이기도 한 서장훈은 현역 시절 통산 1만3231점 중 3점슛으로만 무려 1.314점을 기록했다. 성공률도 36.02%(438/1216)로 매우 준수했다. 지금보다 빅맨의 3점슛을 훨씬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이례적이다.

서장훈은 대학 시절부터 야투가 정확한 선수였지만 중장거리슛을 본격적으로 장착한 것은  프로 진출 이후다. 아마 시절과 달리 강력한 외국인 선수들이 버틴(초창기는 2인 풀타임 동시 출전제였다) 프로무대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서장훈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재키 존스, 올루미데 오예데지 등 강력한 리바운드와 골밑장악력을 지닌 외국인 선수들과의 조화는 서장훈의 외곽슛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물론 나이를 먹은 이후에는 빅맨이 골밑플레이와 수비가담을 외면하고 외곽슛에 치중한다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서장훈이 노쇠화와 부상으로 운동능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위협적인 선수로 건재할수 있었던 것은 은퇴할 무렵까지도 녹슬지 않았던 슈팅능력 덕분이었다.

또한 서장훈 이후로 국내에서도 빅맨들의 외곽슛 능력이 주목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장훈만큼의 성공률은 아닐지라도 이제는 빅맨이라고 내버려두다가 노마크에서는 3점슛을 얻어맞는 경우를 종종 찾을수 있다. 여기에 김주성이나 함지훈(모비스)처럼 패싱력까지 겸비한 빅맨이라면 상대 수비가 막는데 더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김주성의 변신은 외국인 선수들이 득세하는 골밑에서 나이를 먹고 전성기가 지난 토종빅맨들이 어떻게 생존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교훈이기도 하다. 김주성은 사실 큰 키에 비하여 빅맨으로서는 체격이 왜소하고 운동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30대 이후에도 장수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많았다.

하지만 김주성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동부의 중심이자 KBL 최고의 토종빅맨으로 건재하다. 천하의 서장훈도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팀의 중심에서 밀려났던 것을 감안하면, 출전시간이 줄었음에도 기록과 팀공헌도에서 전성기와 큰 차이가 없는 김주성의 꾸준함은 더 돋보인다. 김주성은 서장훈에 비하여 개인 득점기록이나 공격에 크게 연연하는 유형도 아닐뿐더러 확실한 찬스나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타이밍에만 슛을 던져서 성공시키에 그만큼 더 효율성이 높다.

김주성의 슈터 변신을 지켜보는 이들은 흥미로운 상상도 한다. 만일 김주성이 말년이 아니라 지금보다 젊은 전성기에 좀더 일찍 3점슛을 장착했다면, 리그 판도와 김주성의 플레이스타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하는 궁금증이다. 실제로 포워드도 가능할 정도의 기동력과 농구센스를 보유했던 김주성이기에 충분히 설득력있는 상상이다.

아쉽게도 김주성은 어느덧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김주성을 롤모델로 하고 있는 미래의 유망주가 있다면 지금 그의 활약을 본받아 미래에는 장신임에도 정통 빅맨이 아닌, 덕 노비츠키나 케빈 듀란트같은 전천후 득점원으로 업그레이드된 제 2의 김주성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농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