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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가사처럼 끝내 대통령의 7시간의 진실이 밝혀지길.
▲ 굿바이 박근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가사처럼 끝내 대통령의 7시간의 진실이 밝혀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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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선 박근혜 탄핵과 퇴진 사이 온갖 정치적, 법적 방법론과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과연 18대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가 언제쯤 민간인이 될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나는 오늘 한 개인에 대해 생각했다. 바로 당신.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0, 30대. 그러니까 최소한 어린 시절 '88 올림픽' 호돌이 지우개 혹은 연필 따위쯤은 갖고 있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며 진정 2020년에는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 꿈꿨던 당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 역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며 꿈을 키웠더랬다. 올해 12월이 지나면 2020년은 이제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 우리에게는 '우주의 기운'을 국민에게 설파하는 대통령이 있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블랙홀처럼 매우 강력한 중력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혼을 빨아들이고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의 혼은 아직 인간계에 존재하는가?

독일 언론 "박근혜 정치적으로 끝났다"

나는 한국을 떠났다. 어느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책에서나 보던 것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겠다며 이래저래, 허둥지둥 살다가 눈을 떠 보니 독일 베를린에 와버렸다.

그렇다. 하필 최순실이 선택한 나라 역시 독일이었으니 나는 한국과 무려 몇 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곳에서조차 독일 뉴스를 통해 '그들이(최순실 모녀) 개를 잡아먹을까 봐 신고했다'라는 어느 독일 노인의 인터뷰를 치욕스럽게 지켜봐야만했다.

지금 독일어권 언론(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그 어느 때보다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매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한국 검찰이 3살 짜리 꼬맹이도 들을 수 있을 법한 가벼운 압수수색 상자를 들고 나왔을 때, 교민들 사이에서는 최순실이 애초에 독일 검찰에 붙잡혀야 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국민담화를 발표한 날, 허겁지겁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 독일 친구들은 박수를 치고 나를 힘껏 안아주며 말했다.

"축하해! 드디어 한국 대통령이 물러난다며!"

응?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정황을 독일 친구들에게서 들어보니, 독일 언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한다고 발표했다는 뉘앙스의 헤드라인을 뽑아 보도를 한 모양이다. 한국 국민들도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해석하기 힘드니, 외신들은 오죽하겠는가.

한편, 스위스의 유명언론 노이에 취리허 짜이퉁(Neue Zürcher Zeitung)은 11월 29일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끝났다'는 제목의 논평을 실었다. 독일 언론들 역시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끝났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스위스 유명언론 노이에취리허짜이퉁 화면캡처
 스위스 유명언론 노이에취리허짜이퉁 화면캡처
ⓒ Neue Zurcher Zei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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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친구들에게 3차 국민담화의 숨은 의미를 설명해주자 한 친구가 흥분하며 말한다.

"그럼 도대체 언제 관둔대?"

난들 아나. 다른 친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한다.

"200만 사람들이 이 한겨울에 집회하는데 안 물러나는 게 말이 돼?"

내 말이.

독일 친구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날 함께 술 한 잔 하자며 내 어깨를 토닥인다. 이들과 나는 분명 같은 세대임에도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나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월, 독일 농민들이 100여 대가 넘는 트랙터에 자신들의 어린 아들, 딸들을 태우고 베를린 앙겔라 메르켈 관저로 향해 돌진했던 순간을 목격했을 때도 그러했다. 독일 경찰은 그들을 호위했고 시민들은 농민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지난 1월, 독일 농업 정책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독일 농민들은 백여대가 넘는 트랙터를 몰고 베를린 시내를 누볐다.
▲ 독일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지난 1월, 독일 농업 정책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독일 농민들은 백여대가 넘는 트랙터를 몰고 베를린 시내를 누볐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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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혹은 엄마가 운전하는 트랙터 보조석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던 독일 꼬마아이를 보았을 때 나는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더랬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그 독일 꼬마의 얼굴 위로 피 흘리는 어느 한국 농민의 얼굴이 오버랩 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진정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일까?

내 생애 최악의 대통령

학창 시절, 나는 짝꿍에게 생일선물로 김영삼 대통령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철제 필통을 선물 받았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 친구는 하고 많은 필통 중에 '둘리'가 그려져 있거나 '하니'가 그려진 필통이 아닌 김영삼 대통령이 그려진 필통을 골랐을까 싶다. 어쨌든 그 필통은 몇 개월을 못가고 온갖 군데가 찌그러져서 결국 못쓰게 되었다. 결국 나의 필통에 그려진 대통령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악의 지지율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마저 내주게 되었다.

내가 그러하듯 지금 한국의 20,30대가 경험한 대통령은 대략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로 이어진다. 분명한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지금 30대가 마주하고 있는 대통령은 우리가 경험한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30대 지지율이 자그마치 0%이다. 한국의 보통의 30대들에게 박근혜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란 얘기다.

이른바 3포 세대, 7포 세대 또는 N포 세대로 불리는 당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책상서랍 한 켠에 사직서를 간직하고 있거나, 혹은 지금도 20대의 대학 학자금을 갚고 있거나, 혹은 겨우 자리 잡은 직장에서 오늘도 야근하고 있거나, 더 이상 스무 살처럼 앞뒤 안 가리고 연애하기엔 너무 아는 것이 많거나, 혹은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 신혼집을 알아보며 높은 집값에 절망하거나, 이른바 내 집 마련 대출금을 갚느라 통장잔고가 늘 가볍거나, 혹은 결혼은 했지만 출산은 한없이 미루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마주한 한국의 20,30대는 야근을 마치고 양복차림으로 촛불을 든 당신, 혹은 우는 아이를 달래 유모차를 끌고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당신, 혹은 밖으로는 나갈 수 없어 집안 불을 끈 채 어둠 속에서 퇴진 시위에 동참하는 당신, 혹은 그곳이 독일이건, 영국이건, 일본이건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아웃, 프린세스 팍(Park)'를 외치는 당신이다.

언제부터 헬조선 20,30대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있냐는 말을 하는 당신, 늘 가슴 속에 잠복해 있는 패배주의와 싸우며 소주 한 잔 들이킬 때마다 한국 사회에 저주를 퍼붓는 당신, 그럼에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당신을 생각하며 나 역시 베를린에서 촛불을 든다.

희망은 없지만 행동하는 삶, 그것이 지금 한국 20, 30대 '저항의 미학'이므로. 대한민국 정치가 아무리 우리를 배반하여도 N포 세대라 불리는 우리는, 우리 생애 최악의 대통령에게 지금 당장 뜨겁게 작별 인사를 할 준비가 되어있으므로.

베를린의 교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베를린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
12월 10일에도 베를린에서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 지난 11월 26일에 베를린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집회 베를린의 교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베를린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 12월 10일에도 베를린에서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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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를린, #굿바이박근혜, #촛불집회,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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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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