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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의 날' 대전 집회. 5만 시민이 시가행진을 벌였다.
▲ "박근혜 즉각퇴진" 성난 민심 '박근혜 퇴진의 날' 대전 집회. 5만 시민이 시가행진을 벌였다.
ⓒ 육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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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늦었다. 부랴부랴 촛불집회가 열리는 장소로 달려갔다. 저 멀리서 함성이 들린다. 행진 중인 모양이다. 그 쪽으로 방향을 잡기 위해 네거리를 건넜다. 아내가 따뜻한 커피 한 잔 사들고 가자고 한다. 커피숍에 들어섰다.

더 많은 촛불, 더 커진 함성

"조금 전에 우리 가게 앞으로 행렬이 지나갔는데 엄청나요. 어우! 굉장했어요.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몇 십분 걸린 것 같아요. 대전에 살면서 이런 인파 첨 봐요!"

점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팔을 쭉 뻗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 쪽으로, 저쪽 큰 네거리에서 우측으로, 아마 계룡로 쪽으로 갔을 거예요.

"즉각 퇴진, 박근혜 구속, 새누리당 해체!" 구호를 외치며 걷는 시민들. 시작과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행렬이 길다. 촛불을 든 중고생들, 엄마의 손을 잡고 구호를 외치는 초등학생, 어린 아들을 목말 태우고 '하야가'를 부르는 아빠, 촛불을 들고 두 손을 꼭 잡은 연인들, 어깨동무한 청년들에서 중년부부와 노인들까지 다양한 모습의 시민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행진을 끝내고 다시 방송차와 무대 앞에 앉은 시민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시민들의 합류가 이어졌다. 지난 주말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더 큰 함성을 지른다. 누군가 무대에 올라섰다.

"지금 광화문에 170만 명 이상이 모였답니다. 대전에는 6만 명! 저번 주말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시민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지른다. 휠체어를 타고나온 시민까지 박수를 치며 어깨춤을 춘다. '박근혜 구속'이라는 손피켓을 들고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한 노부부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활짝 웃는다.

최대 인파가 운집해 '박근혜 구속'을 외치며 시가행진을 했다.
▲ 대전 촛불시민 최대 인파가 운집해 '박근혜 구속'을 외치며 시가행진을 했다.
ⓒ 육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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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담화로 요동친 정치권

3일 밤 232만 명(주최 측 추산)이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쳤다. 광화문에만 170만 명이 운집했다. 많은 시민이 모이지는 못할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주최 측도 놀랄 정도였다.

거대한 촛불바다가 펼쳐지던 그때 정치권은 요동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때문이다. 자신의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를 국회가 협의해 달라'며 공을 국회로 떠넘기자 정치권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각 진영은 주판알 튕기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가장 먼저 새누리당 비박계가 흔들렸다. '대통령이 4월 퇴진 입장을 밝히면 굳이 탄핵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말을 바꿨다. 탄핵 동참에서 조건부 참여로 입장을 크게 뒤로 물린 것이다. 탄핵 불참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갈팡질팡했다. 여당과의 "임기단축 협상은 없다"고 단언한 지 하루 만에 협상에 나섰다. 추미애 대표가 비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을 만났다. 추 대표는 "협상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언론은 "추 대표가 대통령 퇴진 시점을 1월 말로 제시했으나 김 의원이 거부했다"는 보도를 내놨다.

국민의당 내부도 요동쳤다. 2일 약속됐던 탄핵소추안 발의를 무산시켰다. 야3당의 합의를 깬 것이다. 비박계가 탄핵 표결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가결이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비박계를 핑계 삼아 탄핵 발의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비박계와 야권이 흔들리자 새누리당은 쾌재를 부르며 야당을 비웃었다. 이정현 대표는 "(야당이) 당장 하야라는 걸 관철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야당이 실현하지 못할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했나"며 야당을 깎아내렸다.

친박 홍문종 의원은 "(대통령 3차 담화를 거론하며) 야당으로서는 시쳇말로 약이 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탄핵은 상당히 난감해지고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흔들기'가 먹혀들면서 탄핵이 물 건너가게 됐다는 주장이다. 

대통령의 3차 담화의 파장은 컸다. 야3당은 흔들리며 서로의 간극이 벌어졌고, 비박계는 친박과 보폭을 맞추기 시작했다. 친박은 탄핵 가능성을 거의 제로로 돌려놓았다며 축배를 드는 분위기였다.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밝히자는 의미로 7시에 맞춰 소등을 하고 있다.
▲ 국민들의 분노, '세월호 7시간 밝히고 박근혜 퇴진하라!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밝히자는 의미로 7시에 맞춰 소등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201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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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자신의 꼼수가 먹힐 거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담화를 발표할 때 옅은 미소와 안정적인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담화가 나오자 상황은 박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구태정치 불태운 촛불, 이게 '새정치'의 시작이다

하지만 촛불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232만 개의 촛불이 일제히 타오르자 상황은 달라졌다. 파열음을 내던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거대한 촛불 민심 앞에서 다시 손을 잡았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당혹스러워하며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기로 했다. 야당을 비웃던 친박계는 촛불의 파도에 놀란 듯 몸을 숨겼다.

촛불은 위대했다. 대통령의 '흔들기 꼼수'를 불태운 것도, 흔들리던 정치권을 바로 잡은 것도 광장의 촛불이었다. 거대한 촛불의 파도는 잘못된 곳으로 흘러가던 물길을 바꿔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이젠 촛불이 스승이다. 구태 정치를 혼내주고, 패거리 정치의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또 강력한 무엇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광장에선 새정치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토록 갈망하던 새정치가 촛불 든 시민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태그:#박근혜 꼼수, #촛불 새정치, #대전 촛불집회, #232만 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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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 분야 개인 블로그을 운영하고 있는 중년남자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고 내일은 오늘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미래를 향합니다.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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