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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뜨거운 감자이다 못해 불타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한편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개인의 이득을 위한 짓'이라고 요약할 수도 있다. 기실 개인의 이득을 위한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개인의 이득을 위한 일은 대한민국 헌정 역사에서 어느 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허나 이번 사건은 명백히 다름을 온 국민은 알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대통령과 청와대를 함께 운영하는('함께'라는 표현이 어색하긴 하지만 공간적, 물리적으로 '함께'라는 뜻으로 해석) 사람들의 소통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도 누구도 나서서 말하는 이가 없었고, 나서서 말하는 이는 아웃되기도 했다. 대면보고가 요원하였던 점을 주목한다면 소통의 부재는 더욱 더 심각한 문제였다.

사실 청와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청와대의 사태를 보고서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청와대와 우리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겠지만 사람 사는 것에 집중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지금 200만 촛불이 응집된 모습, 그 모습 속에 서로를 배려하는 국민성, 200만이 모인 곳에 쓰레기 한 점 없는 시민성은 분명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허나 우리는 과연 주변인과 소통을 잘하고 있을까?

얼마 전 이사를 했다. 같은 시 안에서 아주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하고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바빠서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 나보다 아랫집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것도 경비실을 통한 연락이었다.

이사 일주일 만에 먼저 연락한 아랫집

"안녕하세요? 아랫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너무 시끄럽다고 연락이 왔네요. 조금만 자제 부탁드립니다."
"네. 죄송합니다."

미안한 것도 있었지만, 부끄러웠다.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었고, 공동체 의식도 전혀 없는 내가 부끄러웠다. 떡을 사서 돌려보자고 계획은 했으나 하루하루 미루다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아랫집, 옆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아파트는 작은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은 공동체 생활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일이 아닌가? 곧장 떡을 주문했다. 그리고 떡과 과일을 접시에 담아 윗집, 아랫집, 옆집 다닐 수 있는 곳을 다녔다.

여섯 살, 세 살 배기 딸과 함께 떡을 돌리고 인사를 드렸더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며칠 후에 빵, 과자, 감, 유자 등이 몇 배로 올라왔다. 딸과 비슷한 또래가 우리 집으로 자주 놀러왔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내가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층간소음 전화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우연한 계기로 타인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관련 기사 : 층간 소음에 '욱하는' 순간, 나를 풀어준 건)

그때 관심을 가졌던 예강, 예원이를 이사 후에도 한두 번 길에서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서로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책 한 권의 경험으로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아파트 승강기에서는 늘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게 정든 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이사를 했고, 이사 소식을 알리려고 고민을 하던 차에 우리 공동체가 가장 자주 만났던 승강기에 소식을 알렸다.

이사 소식에 펜을 들고 나와 댓글을 달아준 이웃들. 이사 당일 음료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 아파트 승강기에 붙인 이사 소식 이사 소식에 펜을 들고 나와 댓글을 달아준 이웃들. 이사 당일 음료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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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집에 가서 볼펜을 가지고 나와 댓글을 달아준 8층, 10층 이모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연말에 아이들과 전 아파트 이웃들에게 찾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웃에 대한 부재와 소통뿐만이 아니다

본 기자는 학교에 근무를 한다. 한 달 전, 설문조사를 실시하라는 공문이 왔다. 각 학년부에 설문지를 복사하여 배부했고, 반별 통계까지 부탁드렸다. 그런데 1학년 한 반에서 문항별로 통계 수치의 합이 달라서 난감했다.

그대로 설문지를 들고 가서 선생님에게 통계를 다시 내서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이래저래 바쁜 일이 쌓이다 보니 1학년 담임선생님에게 책임을 미룬 것이다. 미묘한 갈등이 생겼고, 며칠 전까지도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 전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서로의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했다. 미안함을 밝히고, 또 다른 설문지를 부탁했다. 서로의 갈등이 풀리니 오히려 일이 잘 풀려나갔다.

경험이 부족하고, 식견이 좁은 나는 늘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아래에서부터 소통을 시작한다면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아이들은 자연스레 체득할 것이다.

20년, 30년 뒤에 지금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일은 촛불을 드는 것 뿐만이 아니다. 자식 세대에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직접 몸으로 알려주고, 그것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태그:#소통, #공감, #이사, #학교,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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