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의 한장면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의 한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폴 세잔(1839~1906)은 회화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화가다. 파블로 피카소는 그를 두고 "나의 유일한 스승,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라고 했고, 그의 그림 수백 점은 여전히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폴의 인생 자체는 '위대한 화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네, 모네 등 당대 인기를 얻고 있던 화가들에 비해 그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시들했다.

이런 폴을 평생에 걸쳐 곁에서 지켜본 친구가 있었다. 바로 작가 에밀 졸라다.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두 사람은 남다른 우정으로 서로 예술적 동지이자 지원군, 또한 경쟁자가 되었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바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스크린 위에 옮겨온 작품이다.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친구가 된 폴(기욤 갈리엔 분)과 에밀(기욤 까네 분)이 각각 화가와 작가의 꿈을 향해 따로 또 같이 나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자그마치 40여년의 세월을 담은 이 영화는 두 예술가가 겪는 인생의 흐름을 차분하게 조명한다.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의 한장면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의 한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폴을 대하는 에밀의 태도는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로서 승승장구하는 에밀은 좀처럼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폴을 걱정하는 듯 하면서도 타인 앞에서는 그를 평가절하 한다. 그러면서도 자유분방한 폴의 성향을 동경하고, "그림을 그리다 죽을 것"이라는 그의 예술혼에는 넌지시 질투심까지 내비친다. 실제 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에밀의 소설 <작품>이 영화에서 가장 주요한 갈등 요소로 다뤄지는 설정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폴은 자신의 치부를 이야깃거리로 사용한 에밀에게 분노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소설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실은 퍽 아이러니하다. 폴을 향한 에밀의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감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숭고한 창조자'와 '이기적 예술가'의 이중성을 지닌 영화 속 폴은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그려진다. 위대한 화가보다 차라리 미치광이에 가까운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치 구제불능의 문제아 같다. 그림의 모델이 되어준 여자와 사랑에 빠진 폴이 나중에는 모델로서의 그녀의 모습에만 집착해 상처를 주는 등 제멋대로인 그의 모습들은 혀를 차게 만든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숙명을 따르며 대중과의 괴리를 겪는 그의 비행은 일견 필연적인 것으로 읽히고, 어느새 연민을 자아내기에 이른다.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의 한장면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의 한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파리와 더불어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 엑상프로방스는 그림을 다루는 이 영화에서도 가장 '그림같은' 요소다. 푸르디 푸른 하늘과 울창한 숲과 언덕이 만들어내는 풍광은 눈부실 정도로 싱그러워 마치 인상주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하다. 파리에서 인정받지 못한 그가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캔버스에 풍경을 담고, 이를 원동력으로 삼아 창작을 이어가는 후반부 전개는 영화 속 폴에게 있어 흔치 않은 평화다.

영화는 실제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관계를 재현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 사실을 가공해 '팩션'(Faction)을 만들어 냈다. 실제 폴은 에밀의 소설 <작품>을 읽은 뒤 평생동안 그를 찾지 않았고 둘의 우정은 그렇게 끝났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그 전환점에 멈춰 선 채 티격태격 하는 두 사람을 끝내 떼어놓지 않는다. 폴 세잔의 삶은 사실 비극이 아니었다고, 그를 향해 반짝반짝 빛나던 에밀의 마음처럼 말이다. 오는 15일 개봉.

'추억을 가진 이들은 행복하니 / 폴, 자네가 나의 청춘이네 / 돌아보면 내 즐거움과 슬픔 하나하나에 자네가 함께하고 있어 / 오직 자네를 위해 이 글을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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