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와 그래픽 노블로 유명한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흔히 말하는 '금수저'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며 명문대학을 나온 천재이자 선대의 후광까지 등에 업은 출생부터 남다른 엄친아다. 스타크의 또다른 자아인 아이언맨의 강철 슈트는 그가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화려한 배경에 그 원동력이 있다.

한국에도 아이언맨이라고 불릴만한 사나이가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적의 강철슈트 따위는 없다.  물려받은 배경도 엄청난 인맥이나 학벌도, 심지어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도 없는 전형적인 밑바닥 흙수저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맨손으로 시작하여 오직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만으로 한계를 뛰어넘어 진짜 '철인'이 되었다. 바로 한국 프로농구의 살아있는 전설 주희정의 이야기다.

주희정은 23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시즌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의 원정경기에서 프로 통산 1000경기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1997-1998시즌 프로농구 데뷔 이후 20시즌 만에 나온 사상 최초의 대기록이다. 서장훈의 통산  최다득점(1만 3천231점)과 함께 한국농구 역사상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위대한 기록이 또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수많은 팬들과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코트에 선 주희정은 쑥쓰러우면서도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997년 11월 11일, 농구선수 주희정의 프로 경력이 공식적으로 처음 시작된 날이다. 그때만 해도 주희정이 이렇게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연습생으로 프로농구에 입문한 주희정

 23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삼성 주희정이 패스를 하고 있다.

23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삼성 주희정이 패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시 만 스무살의 풋풋했던 주희정은 고려대를 중퇴하고 일찍 프로에 진출했다. 조모 슬하에서 자란 주희정은 순전히 생계를 위하여 연봉을 받을수 있는 프로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시작은 정식 선수도 아닌 연습생(수련선수) 신분, 요즘으로 말하면 2군 신세로 언제든 방출당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위치였다. 당시의 주희정도 프로 생활을 오래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없었고 몇 년 활약하다가 경력을 쌓아 구단 프런트나 아마추어 지도자가 되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실업농구의 약체팀이었던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출신 선수들을 인수하여 창단한 나래는 쓸만한 선수들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마침 당시 나래의 주전가드로 활약하던 이인규가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자 11월 11일 경남 LG(현 창원)전에서 첫 출장기회를 잡았고 갑작스러운 투입에도 4점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쁘지않은 활약을 보였다. 이때부터 주희정은 서서히 나래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주희정은 그해 일약 신인왕에 오르며 무명 신화를 열었다.

당시 나래의 사령탑이었던 최명룡 감독(현 대학농구연맹)은 주희정의 농구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해준 평생의 은인이다. 최 감독은 산업은행 감독 시절 96년 우연히 고교 경기에서 당시 부산동아고에서 활약하던 주희정을 눈여겨보게 됐고 이후 나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하며 직접 스카우트해 오기에 이른다. 최 감독은 이후 농구 외적으로도 주희정을 물심양면 응원하며 그가 농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심지어 1998-1999시즌 주전가드로 성장한 주희정을 돌연 삼성으로 트레이드시킨 장본인도 바로 최 감독이었다. 당시 나래에 주희정의 고려대 선배이자 국가대표 가드인 신기성이 신인으로 입단하게 되면서 출전기회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주희정을 배려한 트레이드였다. 당시 주희정은 서운함에 눈물까지 흘렸지만 장기적으로 주희정의 경력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전환점이 됐다. 주희정은 지금도 최명룡 감독을 감독님이 아니라 '아버지'로 부른다.

주희정은 2000-2001시즌 삼성에 창단 첫 정규시즌·플레이오프 통합우승을 안기며 챔프전에서는 MVP까지 선정됐다. 이후 KT&G(현 안양 KGC 인삼공사)로 이적하며 2008-2009시즌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KT&G는 리그 7위에 그치며 6강플레이오프 탈락팀에서 MVP가 배출된 것은 주희정이 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이다. 주희정은 SK 시절이던 2013-2014시즌에는 식스맨상까지 수상했는데 한 선수가 신인왕-정규리그·챔프전 MVP-식스맨상을 모두 수상한 것은 KBL 역사에서 오직 주희정 뿐이다.

주희정의 트레이드 마크는 런앤건과 강철체력으로 요약된다. 주희정은 특유의 스피드를 바탕으로 빠른 템포의 공격농구를 펼치는 팀에서 가장 진가를 발휘했다. 2000-2001시즌의 삼성과 2008-2009시즌의 KT&G는 주희정의 이런 장점을 극대화한 팀이었다. 주희정은 이처럼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소모를 요구하는 플레이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선수 경력 내내 결장한 경기가 단 12경기에 불과하며 출석률로 환산하면 무려 98.8%(1000/1012)에 육박한다. 커리어 20시즌 중  부상없이 전 경기를 소화한 것만 13시즌이나 된다.

불굴의 의지로 한계를 뛰어넘은 주희정

 23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프로통산 1천 번째 경기에 출전한 삼성 주희정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3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경기. 프로통산 1천 번째 경기에 출전한 삼성 주희정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주희정은 흔히 말하는 천재형 선수는 아니었다. 부산 동아고 시절부터 빠른 스피드 하나는 인정받았지만 외곽슛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었고 돌파 의존도가 크다보니 볼을 오래 끈다는 지적도 받았다. 동시대를 풍미한 강동희-이상민-김승현 같은 특급 포인트가드의 계보에서 주희정은 별로 언급조차되지 않을 만큼 1인자나 스타의 이미지와도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주희정은 불굴의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었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자신만의 슛폼을 장착하며 오픈찬스에서의 3점슛은 물론, 클러치타임에서 누구보다 무서운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최고령이 된 지금도 새벽까지 개인훈련을 통하여 기술 연마를 소홀히하지 않는 것은 유명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희정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원동력은 그의 '인성'에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많은 이들이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하면 되지라며 재능에 비하여 인성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재능으로 한때 반짝하는 선수들은 많아도 오래 살아남는 선수들을 돌아보면 항상 그에 걸맞는 이유가 있었다.

20년에 가까운 프로 생활동안 수많은 팀과 지도자를 거쳤지만 주희정은 어느 팀에 가든 성실함과 리더십을 인정받는 선수였다.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 선수나 베테랑이 된 이후에도 타성에 젖어 교만에 빠지거나 스스로와 타협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어느덧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여 주전에서 밀려나 후보 선수가 된 이후에도 변화를 인정하고 후배들을 배려하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랜 세월 동안 그 흔한 구설수나 사건사고가 없었다는 것도 지금 돌아보면 대단한 일이다.

농구계에서 주희정의 인성과 프로의식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번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한 치열함과 뚝심이 바로 철인 주희정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다.

땀으로 만들어낸 주희정의 위대한 기록들

주희정은 1990년대-2000년대-2010년까지 현역으로 누비며 강동희-이상민-김승현-양동근-김선형 등 프로화 1세대부터 지금 현 세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들과 코트에서 자웅을 겨뤄본 유일한 현역이다. 주희정과 동시대에 현역으로 같이 경쟁했던 선수중에는 이제 어느덧 감독이나 코치가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부산 KT 조동현 감독은 학교는 다르지만 빠른 년생인 주희정(77년 2월)과 동기다. 주희정과 비슷한 또래이자 비슷한 시기에 NBA에서 활약했던 코비 브라이언트나 팀 던컨, 케빈 가넷같은 선수들도 최근 줄줄이 은퇴했지만 주희정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희정은 이미 1000 경기 출전 외에도 통산 어시스트, 가로채기, 트리플더블 등 한국 프로농구사에서 깨지기 힘든 위대한 기록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잊지말아야할 것은, 주희정의 기록에는 단지 서류상의 숫자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땀과 눈물의 노력이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이름없는 철저한 무명선수로 시작하여, 타고난 천재적 재능이나 학벌, 인맥의 혜택없이도 오직 본인의 노력과 실력만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다. 한국프로농구가 흥망성쇠를 기록하며 수많은 스타들이 명멸하는 순간 속에서도 주희정은 묵묵히 오랜 세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자신의 커리어를 통하여 증명해냈다.

프로농구는 최근 다사다난했다. 한때 농구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많은 업적을 남겼던 농구인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오점을 남기는 일이 빈번해졌다. 뜻하지앟은 부상이나 개인사로 날개가 꺾인 선수들도 수두룩하다. 지금같은 프로농구의 암흑기에 주희정처럼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설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가 아직 코트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 농구계에 귀감이 되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누구보다 오랜 세월을 활약하면서도 변함없는 명성과 실력을 지키고 있는 주희정 같은 선수의 존재는 종목을 떠나 장수하는 모든 프로선수들의 롤 모델이 될 만하다. 코트 위에서 주희정의 시간이 여전히 계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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