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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이랑 몽테쏭까지 자전거로 4.5km를 달려 시청 앞 게시판에 녹색당 지역선거 후보 포스터를 붙인 뒤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다.
▲ 필립(좌)과 나(우) 필립이랑 몽테쏭까지 자전거로 4.5km를 달려 시청 앞 게시판에 녹색당 지역선거 후보 포스터를 붙인 뒤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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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범한 환경주의자 친구를 소개할까 한다.

필립 쿨롱, 그는 2016년 3월에 있었던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삭투루빌 지역구의 녹색당 남성 부후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우이 지역구의 녹색당 여성후보였던 나를 도와서 캬리에르쉭센느과 몽테쏭을 자전거로 돌며 같이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몽테쏭 시청 앞 공식 게시판에 첫 포스터를 붙이고 셀카를 찍으려고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오더니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 덕에 필립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다. 보라, 물풀이 발라진 붓과 포스터 뭉치를 들고 순진하게 좋아하며 뿌듯해하는 우리를 ! (참고로, 우이 지역구와 삭투루빌 지역구는 각각 3개의 도시를 포괄한다. 우리 시청에서 몽테쏭 시청까지는 4.5km, 꺄리에르쉭센느 시청까지는 3km 걸린다.)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때면 늘 그가 풀을 쑤어 놓았고, 난 포스터를 들고 풀과 붓을 빌리러 그의 집에 갔다. 차 한 대가 들어갈 정도의 폭에 길이 20미터 정도인 막다른 길 끝에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형식적인 울타리도 정문도 없다. 나무 가지를 팔로 걷어내고 들어가면 그의 집 마당이 나온다. 왼편엔 작은 텃밭이 있고, 오른편엔 오래돼서 막혀버린 우물이 있고, 그 옆 나무 밑에 물풀이 놓여 있었다.

혹여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 내가 들를라치면 그는 한 번도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 텃밭에서 캔 뚱딴지 감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식물들, 한 양동이 가득한 퇴비 등 항상 땅이 그에게 내어준 것을 선뜻 내게 나눠주었다. 어느 날은 어둑어둑 해 질 무렵이었는데, 경주하듯 벽을 타고 올라가는 수십 마리의 달팽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그 많은 달팽이 중 한 마리도 잡거나 죽이지 않았다.

내가 가장 높이 사는 필립의 장점은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종교인으로서나 환경주의자로서나 자신이 믿는 바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매우 드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필립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우이에 녹색당 모임을 처음 만든 일원이었다. 약간 수다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불평불만하고 타인을 비판하는, 말로만 환경주의자가 아니라 자기가 먼저 몸소 행동으로 보이는 환경주의자이다.

환경을 위해서 고기를 아주 적게 먹고,  일회용 컵이나 포장, 비닐봉지를 쓰지 않으며,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동물의 권리나 환경문제에 예민했다. 절대 앞에 나서지 않고, 크든 작든 어떤 일이든 그가 필요하다 싶은 자리에서 아주 적절하게, 하지만 매우 큰 도움을 주곤 했다.

대형상가 건설 유혹에 시달리는 지역의 농토를 지키려고 그 밭에 감자를 심으며 연대투쟁 하기를 수년 째. 지난 10월에는 자연 생태계가 풍부한 프랑스 남서부에 정부가 공항건설을 강행하려고 해서 녹색당원들과 노트르담데렁드에 내려가 전국에서 모인 4만 명의 시민과 함께 대규모 반대집회에 참여했다. 노트르담데렁드는 우이에서 420km 떨어져있는데, 이 거리를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만에 왕복했다. 

그가 사회운동을 시작한 것은 1968년,  21살 때라고 한다. 그 당시 나이지리아의 하우사족과 이보족 간의 전쟁이 있었는데, 무관심한 대중들에게 대학살을 알리려고 'A는 아우슈비츠의 A, B는 비아프라의 B' 등 일명 '공포의 알파벳' 전단을 뿌리고 다녔다.

환경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그는 진정한 교육자였고, 실천하는 종교인이었다. 교직에서 은퇴한 뒤에도 개인 지도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쳤고, 자원봉사로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었다. 게다가 모든 이들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앙 같은 믿음으로 문맹률을 낮추려고 애쓰는 협회에서 활동했다.

'학교에는 문제 있는 아이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 있는 교사가 있을 뿐'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합창 활동도 하고, 사회운동하는 가톨릭 단체인CCFD-테르 솔리데르 (Comité Catholique contre la Faim et pour le Développement-Terre Solidaire : 기아를 돕고, 연대의 땅을 발전시키기 위한 가톨릭 위원회)에 가입해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국가의 아픔을 나누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다.

무엇보다 그는 늘 미소 짓고 다녔고, 사람들을 웃게 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나타났다. 필립 만큼 적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떤 모임에 의견이 심하게 엇갈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한쪽 편을 들면서 공격적이 되거나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우리 모두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 모두가 목표하는 바를 상기시키고 평화를 구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갈등이 생긴 상황 자체를 무척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워할 수가 없었고,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의 말대로 쉽게 갈등을 불식시키지는 않았지만. 

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탓일까. 성탄이 오기 정확히 2주 전 금요일, 고요한 밤에 그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늙어서 병들고 약해지면 주변에서 걱정도 하고 챙겨주기도 하는데, 이 친구는 그걸 다 마다하고 주변 사람 고생시키지 않고, 걱정시키지 않고, 많지 않은 예순아홉의 생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조용히 마감했다.

온몸에 상처 하나 없이 자는 모습 그대로 하늘로 갔으니 그 또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복이었으려니. 일요일 아침, 아마도 그는 구름 위에서 신과 낄낄거리고 캬리에르쉭센느에서 따온 싱싱한 양송이버섯을 나눠 먹으면서 신의 곁에 앉아 예배를 보았을 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자전거가 필요 없을 것이다. 순간 이동을 하든가, 날아다니면 될 테니까.

2015년 지역선거에서 삭투루빌 선거구 남성 부후보로 출마했던 필립의 공식 후보 사진.
▲ 필립 쿨롱 2015년 지역선거에서 삭투루빌 선거구 남성 부후보로 출마했던 필립의 공식 후보 사진.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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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저녁 퇴근길에 핸드폰을 보니 지역신문 기자가 내게 전화한 흔적이 있었다. 다음 날, "필립 쿨롱 사망 - 환경주의자들은 상중"이라는 제목으로 필립의 부고가 지역신문에 실렸다. 지역선거 포스터용으로 내가 찍었던 바로 그 사진이 실렸다. 기분이 묘했다. 그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내 사진이 그의 부고 사진으로 쓰일 줄 전혀 몰랐는데.  

장례식 날짜까지 정확히 계산하고 숨을 거둔 건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기 바로 전 금요일, 다시 말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뿔뿔이 흩어지기 딱 일주일 전에 장례식이 열렸다. 아내도 자식도 없고, 금요일 이른 오후에 치르는 장례식이었음에도 난 프랑스에서 그렇게 많은 조문객이 모인 장례식은 처음 보았다.

수백 명이 그 큰 성당을 빼곡하게 채웠다. 회교도 친구도, 교회/성당 다니지 않는 지인들도 모였으니 그 여느 일요일 미사 때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왔을 것이다. 프랑스는 한국 같지 않아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많은 사람을 부르지도 않고, 부조금이 오가지도 않는다. 필립의 장례식을 치뤘던 그의 누나는 조문객들에게 미리 안내를 했다. '화환은 가져오지 마세요. 필립이 지원했던 협회 활동에 지원금을 주시는 건 좋습니다'라고.

장례미사가 끝나고 가기 전에 관 위에 성수를 뿌리거나 필립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길래 나는 관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주었다. 그때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주 평범한 환경주의자였고, 박애주의자였고, 평화주의자였던 친구의 삶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는다.

필립이 수백 명의 조문객들 마음 속에 살아있다면 그가 혼자 했던 일을 앞으로 수백 명이 수백 배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평가할까? 이 세상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아니 우리 중에 예수가 있다면, 아마 필립과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걸 지금 알았으니 우리 중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그때는 알아볼 수 있을까? 알아본 들 그것이 과연 중요할까? 내가 우리 중에 낮은 곳에 임하는 예수가 되고 필립처럼 평범하나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게 오히려 보람되지 않을까? 원고를 넘기는 오늘, 우연찮게도 크리스마스구나.


태그:#크리스마스, #친구의 죽음, #환경주의자, #박애주의자, #평화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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