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이 끝나고 정유년이 왔다. 연말을 지나며 국내 극장가도 여러 작품이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며 특수를 누리는 중이다. 연말과 연초 극장을 가장 달구고 있는 작품은 단연 <마스터>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의 만남으로 티켓파워를 담보했고, 전문 사기꾼과 그를 쫓는 경찰을 그렸다는 점에서 사회 고발과 오락성을 노렸다.

전략이 제대로 먹힌 걸까. 지난해 12월 21일 개봉 후 <마스터>는, 1월 2일 현재까지 5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역대 영화들의 흥행세와 비교해보면 또 하나의 '천만 돌파'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흥행은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이 빛 뒤엔 그림자가 있다. 그간 영화계 내부와 언론에서 줄곧 지적해 온 스크린 독과점 문제, 나아가 상영관 몰아주기 관행이다. 극장을 지닌 대기업이 자사 투자 영화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적용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여기에 일부 관객과 해당 극장들은 "기업 논리로 많이 보는 작품을 트는 게 맞다"고 항변하지만, 다른 쪽에선 "보고 싶은 영화를 극장에서 틀어주지 않는다"는 성토가 나온다.

개봉 후 일주일까진 반짝

 영화 <판도라> 포스터.

영화 <판도라> 포스터. <판도라>는 정말 <마스터> 몰아주기 때문에 손해를 본 걸까? ⓒ NEW


<오마이스타>는 올해 연말을 노리고 개봉한 상업영화를 가지고 드롭율을 비교해봤다. 극장가에서 말하는 드롭율이란 통상 스크린 수, 상영 횟수, 좌석 수 등이 이전보다 떨어지는 정도를 뜻한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체인 극장 사업자 3사가 전체 극장 대비 92%의 점유율을 가진 현실 조건에서 이 극장들의 선택에 따라 해당 영화들의 성패가 크게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선 드롭율 변화를 한눈에 알기 좋은 좌석 수와 상영 횟수를 중심으로 다룬다.

과연 이 드롭율은 어떻게 정해질까. 통상 수익을 목표로 하는 각 극장 프로그램 팀이 전략을 짠다. 해당 영화의 예매율과 좌석점유율 등의 객관적 수치와 시기 및 분위기를 보는 주관적 판단이 함께 작용해 상영관 수 등이 결정된다. 객관적 수치가 높다 해도 극장 기준에 따라 작품의 노출 빈도가 낮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삼성반도체 직원의 사례를 극화한 <또 하나의 약속>,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소수의견> 등 사회비판, 정권비판 영화들이 드롭율이 높았던 사례가 꽤 있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연말과 올 연초 그런 정황이 있다고 보이는 영화는 <판도라>다. 지난해 12월 7일 개봉한 <판도라>의 경쟁작은 <라라랜드>와 <형>, 그리고 <미씽: 사라진 여자> 등이었다. 1029개 스크린으로 시작한 <판도라>는 당시 4777회 상영됐다. 좌석 수는 91만8214개. <라라랜드>는 2962회 상영에 좌석 수는 57만7546개. <형>은 2103회 상영에 32만5118개. <미씽>은 1613회 상영에 26만7768개 좌석을 확보했다. 순서대로 박스오피스 1위부터 4위까지다.

일주일 후를 보자. 지난 2016년 12월 14일 <판도라>는 4584회(1080개 스크린)에 88만5081개로 상영 횟수와 좌석 수가 약 3% 줄었다. 14일 개봉한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때문이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판도라>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고, 3559회(756개 스크린) 상영에 60만9944석을 차지했다. 3위인 <라라랜드> 2252회(587개 스크린) 상영에 38만5915명, 4위 형은 1397회(497개 스크린) 18만9349개였다. 좌석 수 기준 <라라랜드>는 약 30%의 드롭율을 보였고, <형>의 드롭율은 42%였다.

고무줄처럼 달라지는 드롭율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 입소문 덕분에 스크린 수와 좌석 수가 증가했다. ⓒ 판시네마


여기까지만 보면 <판도라>가 개봉 이후 일주일간 상승세를 탔으니 충분히 극장을 배정받았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추이를 보면 다소 이야기가 달라진다. <판도라>를 보려 했던 관객 A씨는 <오마이스타>에 "예매를 하려고 보니 다른 영화와 달리 창이 안 열린 극장이 많았다"며 "대신 신작 <마스터> 등은 이미 열려 있더라. 결국, 집에서 좀 떨어진 극장을 다녀와야 했다"고 전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CJ가 투자한 <마스터>를 최대한 끌어 올리라는 주문을 CGV가 받은 거로 알고 있다"며 사실상 자사 영화 밀어주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일까. 이 물음에 CGV 측은 "국내 영화산업 구조상 스크린 수보다 틀어야 할 영화가 너무 많아 극장에서 모두 소화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이에 따라 극장 스크린 편성은 철저히 관객 선호도에 맞춰 짤 수밖에 없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마스터> 개봉 직전 19일 월요일, 그러니까 개봉 3주차를 맞은 <판도라>는 역시 박스오피스 1위였다. 당시 <판도라>는 4857회(1096개 스크린) 상영에 93만 9054개의 좌석을 확보하고 있었다. 14일에 비해 5% 정도 좌석이 늘었다. 입소문을 타던 <라라랜드>는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섰고, 2532회(650개 스크린) 상영에 43만 개 좌석을 차지했다. 스크린 수도 대거 늘었고, 좌석 수 역시 13% 증가했다.

눈여겨볼 것은 <형>의 드롭율이다. 이미 개봉 한 달이 되는 시점에 좌석점유율과 예매율이 앞선 영화에 비해 현저히 떨어짐에도 19일 1239회(443개 스크린) 상영에 16만 7546개의 좌석을 가져가며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했다. 2만 개의 좌석이 14일에 비해 줄어 약 10% 정도의 드롭율을 보였다. 3위였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3361회 상영(710개 스크린)에 55만6128석으로 약 9%의 드롭율을 기록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개봉 2주차를 맞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형>보다 예매율 및 좌석점유율이 다소 높았다.

<형>보다 일주일 앞서 개봉한 판타지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이 오히려 <형>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보다 앞서 있거나 비슷한 수준의 좌석점유율 등을 보였으나 이 무렵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선 이미 멀어진 후였다. 상대적으로 한국영화에 그것도 <형>에게 유리하게 상영조건을 적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마스터> 개봉 후 올킬

 영화 <마스터>의 포스터. 기술적 완성도도 높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결말부의 쾌감과 후련함을 맛보기 위한 과정이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다.

영화 <마스터>의 포스터. 기술적 완성도도 높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결말부의 쾌감과 후련함을 맛보기 위한 과정이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서너 영화의 국지전은 <마스터>가 개봉한 12월 21일 이후 모두 정리된다. '올킬'이다. 개봉 직전 약 40%의 예매율(<판도라> 개봉 당시 예매율은 약 25% 전후)을 보이며 돌풍을 예고한 <마스터>는 6617회(1448개 스크린) 상영에 129만 4473개 좌석을 차지한다. <판도라> 개봉 때보다 30% 이상 높게 유리한 조건에서 개봉을 맞이한 셈. 박스오피스 2위가 된 <판도라>는 21일 기준 2344회(490개 스크린) 상영에 34만 4157개 좌석을 보유했다. 19일과 비교할 때 좌석 수 드롭율은 약 58%로 상당히 높다. 3위 <라라랜드>는 1405회(704개 스크린) 상영에 19만 799개 좌석을 가졌다. 드롭율은 약 55%다. 4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1787회(640개 스크린) 상영됐고, 24만 3754개 좌석을 차지했다. 드롭율은 56%다.

<마스터>를 제외한 세 영화의 드롭율이 비슷한데 <판도라>와 <라라랜드>가 전주 좌석점유율이 10위 권 내에서 박빙이었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10위권 밖이었다. 극장 입장에서 수익을 보려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더 떨어뜨리는 게 이론상 맞는 선택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해당 작품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이익을 봤다.

이 추세는 쭉 이어진다. 25일 크리스마스 당일 <마스터>는 7145회(1495개 스크린) 상영에 138만 2920개 좌석을 가져가며 독주 체제를 굳힌다. <마스터>와 같은 날 개봉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씽>이 특수를 누리며 2위를 차지했는데 2396회(795개 스크린) 상영에 36만 8415개 좌석을 확보했다. 스크린 수로만 놓고 보면 2배지만 좌석 수에서 <마스터>가 약 4배 정도 더 가져갔다.

개봉 이후 <마스터>가 줄곧 좌석점유율 5위권 내였고, <씽>이 15위권 안팎임을 감안하면 상영 조건 차이는 분명 날 수밖에 없다. 10위권 내를 오간 <판도라>와 <라라랜드>를 보자. 25일 <판도라>는 2029회 상영(654개 스크린)에 28만 4453개 좌석을 가졌다. 21일에 비해 17%의 드롭율이다. <라라랜드>는 1798회 상영(스크린 수 680개)에 25만 9184개의 좌석으로 오히려 31%로 증가했다. 비슷한 객관적 지표를 기록한 <판도라>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할 상황인 셈이다.

1월 1일 기준 <마스터>는 5715회(1243개 스크린) 상영에 108만 9687개 좌석을 갖고 있다. 정점을 찍었던 연말에 비해 20% 정도 감소한 수준이다. 신작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가 개봉했기 때문인데, 이 작품은 3335회(810개 스크린) 상영됐고, 58만 7631개 좌석을 보유하고 있다. 그 뒤를 <씽> <판도라> <라라랜드> 순으로 잇고 있다. 각 영화의 드롭율은 30%, 32%, 12%다.

결론적으로 객관적 지표가 좋다고 해도 그대로 극장에 반영되는 건 아니었다. 일각에서 특정 영화 밀어주기라는 비판이 나올 여지도 충분히 있다.

이런 들쭉날쭉 한 드롭율에 대해 국내 극장 체인은 대부분 비슷한 답을 했다. 관객 선호도를 이유로 든 CGV와 같은 맥락으로 롯데시네마 측은 "(<마스터>와 <판도라>가) 일단 같은 한국영화이고 블록버스터라는 특징이 동일하기에 관객의 이동이 있는 거로 보인다"며 "장르적으로 구분되고 외화인 <라라랜드> 등은 입소문이 나서 드롭율이 낮은 편"이라고 전했다. 메가박스 측 역시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을 맞아 드라마와 코미디 장르 영화를 선호하는 가족 및 관객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극장 배정은)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마스터 판도라 라라랜드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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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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