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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왜 창업교육을 하는가. 청년들의 '먹고사니즘', 즉 취업 또는 창업지원정책의 중심에는 대학이 있다. 대학의 창업교육은 미국 영국 스웨덴 등 글로벌 트렌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독 우리 대학에선 창업교육이 취업난의 돌파구처럼 여겨지면서 곳곳에서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대학 창업교육 현장의 당사자들, 즉 대학 내 창업보육기관 운영실무자 3명, 대학 창업보육기관 입주기업 대표 2명, 창업교육 강사 2명, 해외대학 창업교육 경험자 2명 등 10여 명과 만나 문제점과 해법을 찾아봤다. 첫 번째로 대학은 왜 창업교육을 하나, 두 번째 대학생 창업가들이 말하는 창업교육프로그램의 문제점, 마지막으로 미국, 영국 등 해외 대학창업교육 사례를 통한 대안 모색의 순서로 짚어본다. [편집자말]
2015년 1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창조경제박람회 글로벌투자박람회에서 한 스타트업 대표가 자신의 사업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2015년 1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창조경제박람회 글로벌투자박람회에서 한 스타트업 대표가 자신의 사업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대학생이 창업하기 위해서는 학교를 떠나야 하는가."

2013년 4월 빌 게이츠의 서울대 특강 당시 한 학생의 질문이다. 대학생 창업자라면 누구나 학업과 사업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수업을 듣고 학점을 따고 졸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초기 창업을 위한 시드머니를 비롯해 지속적인 기업 운영을 위한 자금 문제 역시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이다. 정부지원사업을 수주하거나 투자받으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정부 사업은 수주하기까지 절차상 소모되는 에너지도 엄청나지만 용도 또한 엄격해 원하는 곳에 쓰기 힘들다.

과도한 의전으로 인한 시간 부족도 고민이다. 스타트업 대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리고 투자를 받기 위해 각종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불필요한 의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다 보면 정작 본질인 사업에는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기도 한다.

결국 대학생 창업자들이 말하는 대학 창업보육 시스템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학업, 돈, 그리고 시간.

창업활동 하면 학점 인정? 공정한 검증방법 없어 논란

"아직 4학년인데 몇 년째 졸업을 못 하고 있다. 학생 창업자 입장에서는 초기 시드머니를 모을 방법이 전혀 없다.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은행 대출도 못 받는다. 또 개인적인 펀딩도 받을 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부지원 사업으로 자꾸만 관심을 갖게 되고 사업을 따내기 위해 준비하다 보면 정작 내 사업은 제대로 못 하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때는 '아, 정부가 나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창업 10개월 차에 접어든 서울지역 대학 창업보육기관 입주기업 대표의 말이다.

전국학생창업네트워크(SSN)가 진행한 2013년 창업애로사항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65%가 과도한 수업부담으로 인해 학업과 창업의 병행이 어려움을 호소했다. 학생 창업으로 인한 휴학계, 학점 인정 등 창업교육을 위한 유연한 학사제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창업자 대입 특별전형제 운영 대학', '창업휴학제' 등 창업 대학생들을 지원하는 대학 내 여러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점을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일부 대학의 경우 창업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면 학점을 주는 '취업계'를 인정해주거나 산학인턴을 하는 공대생의 경우 학점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대학생 창업자들 사이엔 찬반 논란이 있다.

대학 산학협력단, 학생처, 창업보육센터 등 학내 유관기관들은 지속적으로 정부 부처에서 자금을 조달받기 위해 창업 장려 등을 목적으로 하는 창업 경진대회를 매년 혹은 연 2회 이상 개최하고 있다. 해마다 주관 기업들이 달라질 수는 있으나 2015년과 2016년은 SK 비상 프로그램이 거의 모든 학교와의 연계를 통해창업 경진대회 및 수업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대학 산학협력단, 학생처, 창업보육센터 등 학내 유관기관들은 지속적으로 정부 부처에서 자금을 조달받기 위해 창업 장려 등을 목적으로 하는 창업 경진대회를 매년 혹은 연 2회 이상 개최하고 있다. 해마다 주관 기업들이 달라질 수는 있으나 2015년과 2016년은 SK 비상 프로그램이 거의 모든 학교와의 연계를 통해창업 경진대회 및 수업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서울 모 대학 입주기업 대표는 "학생 입장에서 학점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스타트업 대표들이 창업활동으로 학점까지 인정을 받아야 되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창업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 입장에선 창업은 그저 하나의 발명 경진대회 같은 것인데 학점까지 인정해주게 되면 스펙으로 악용하려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도윤 고려대 스타트업 연구원 연구교수는 "스타트업 경력을 학점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부작용이 생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타트업 대표들이 학점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합리적인 선에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창업관련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단계를 거친다면 진정성 있는 학생 창업자들의 학점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대학 창업보육기관의 역할은 직접적인 자금지원이나 학점을 인정해주는 형식보다는 공부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업무공간을 캠퍼스 내에 두고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캠퍼스 내에 있는 사무실에서 24시간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통해 기회와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컴퓨터 한 대로 사업하는 시대, 정부지원금 받아 컴퓨터 못 산다

좋은 사업모델과 성장성을 인정받아 정부지원사업을 수주하더라도 지원금을 사용하려면 많은 제약이 있다.

강원지역 대학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의 한 대표는 "2014년 사업을 시작해 중기청, 미래창조부 등 정부지원사업 10개 정도를 수주해서 3억 원쯤 지원받았다. 정부자금을 쓸 때의 애로사항은 2가지가 있다. 용도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해서 정작 쓰고 싶은 곳에 쓸 수 없다는 점과 자금을 쓰기 위해 증명해야 할 각종 절차, 즉 행정적인 작업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컴퓨터 한 대만 있어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정부지원금 사용항목 내부규정집에 따르면 컴퓨터나 프린터 등 기자재의 경우 일정 가격 한도 이상은 구매할 수 없다. 기업의 자산으로 증여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비스 개발을 목표로 하는 초기 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항목이 400만~500만 원이 넘는 성능 좋은 컴퓨터인데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이다.

또 외주용역을 줄 때도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8~9가지를 훌쩍 넘는다. 서류준비에만 일주일이 걸리고 외주업체에 서류를 보내 내용을 수정하다 보면 200만~300만 원 규모의 자금을 집행하는데 2~3주씩 걸리기 일쑤다. 시즌을 타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경우 개발해 놓고도 불필요한 행정절차 때문에 타이밍을 놓쳐 제때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경우 외부투자를 받지 못하면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당장 생존이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전거 안전편의용품을 제조 판매하는 지방대 창업보육기관 출신 스타트업 대표는 "자전거용품은 시즌이 정해져 있어서 판매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면 겨울 동안 제품을 묵힐 수밖에 없다. 정부지원사업은 몇 달 전부터 준비해야 하고 선정이 되더라도 행정처리 하다보면 또 시간이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제 사업이 없어질 수도 있다"며 많은 창업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 모 대학 창업보육기관장은 "정부지원금과 투자는 다르다. 투자는 재무적인 성격을 띠지만 정부지원금은 세금이다 보니 요구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쁜 창업자들에게 의전과도 같은 행정적인 양식들을 요구하니 그들 입장에서는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밖에 없다. 좀 더 쿨하게 용도를 묻지 않고 자금지원을 해주면 어떨까 생각하다가도 악용 사례를 생각하면 당국에서도 막상 규제를 풀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경영학서적으로 앙트러프러너십 가르치는 대학

대학생 창업자들은 정부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많은 준비를 거쳐 공모전 등에 지원한다. 2015년 창조경제박람회(왼쪽), 2016년 KDB스타트업 데모데이.
 대학생 창업자들은 정부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많은 준비를 거쳐 공모전 등에 지원한다. 2015년 창조경제박람회(왼쪽), 2016년 KDB스타트업 데모데이.

대학 내 창업보육기관 입주기업의 대표들은 하나같이 "창업을 대학에서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대학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유는 단지 이해관계가 맞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대학 창업교육 과정에는 기본적인 창업가정신을 가르치는 '앙트러프러너십 교육' 5주 과정 같은 수업이 포함된다. 한 대학생 입주기업 대표는 "앙트러프러너십을 5주 만에 가르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대학생들은 창업의 트렌드나 목표를 에어비앤비나 우버 같은 외국사례에서 보는데 굳이 대학 강의실이 아니더라도 앙트러프러너십의 선례를 찾아볼 수 있는 채널은 많다"는 것이다.

지방 거점대학 창업지원단의 형식적인 교육도 문제다. 창업교육 전문가가 없는 상태에서 스타트업 트렌드를 잘 모르는 기성세대들이 팀장이나 실장 등 기관의 책임자로 있으며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만 하고 있다. 50~60대 창업경험자가 10년 전 경영학서적으로 강연을 하고 학생들은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 입주기업 대표가 본 어느 지방대학 창업지원단 창업교육 현장의 한 단면이다.

"지금 20대들이 창업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고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통해서는 이룰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하고 나누기 위해 창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인드가 크기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알바하면서 번 돈으로 힘든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힘들어도 내가 이걸 왜 꼭 해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창업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가 단순히 생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6 K-GLOBAL 스타트업 공모전 시상식 장면.
 2016 K-GLOBAL 스타트업 공모전 시상식 장면.

지방대학의 경우 학교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따로 떼서 창업교육을 하는 곳은 드물다. 지방대의 경우 사실 창업관련 교육이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창업선도대학이나 링크사업 등 정부지원사업 대학으로 지정돼야 여유가 생긴다. 창업보육센터가 있어도 진정성 있는 창업가를 위한 지속적인 지원보다는 일회성 캠프나 특강 형식으로 운영되기 일쑤다.

오로지 매출이 언제 얼마 나오는지에만 관심 두는 성과주의 시스템 또한 지양해야 한다. 대학 창업보육기관이 입주기업의 매출에만 신경 쓰는 것은 마치 기업에서 영업사원에게 매출압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창업보육기관의 매니저들에게는 학생 창업자와의 진정한 소통이나 사업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겠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물론 매니저들의 변화를 요구하기 앞서 성과주의적 정책을 만든 의사결정권자들이 창업자들의 절실함을 알아야 한다.

대학 창업교육에서 '뭣이 중할까'. 대학 내에 스마트창작터나 창조경제혁신센터 같은 건물 몇 개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와 풍토를 조성해주는 일이다. 학생 창업자들이 대학에 바라는 것은 이들을 독려하고 지원하고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태그:#대학 창업교육,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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