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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김광석 거리 입구에 설치된 그의 동상
▲ 김광석 거리에서-1 대구 김광석 거리 입구에 설치된 그의 동상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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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해 평온한 적이 있었겠느냐마는, 2016년은 그 중 최악이었다. 최순실이라는, 사이비 종교인으로 대표되는 비선실세들에 의해 오랫동안 국정이 농단된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은 결국 탄핵의 절차를 밟고 있다. 이민 가고 싶다,는 탄식이 허투루 내뱉는 말이 아닐 정도로 국민들은 좌절과 허탈감에 빠졌다. 대통령의 개념 없는 말들에 온 국민은 자괴감이 들었다. 이럴 때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는 우리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불러 주지 않았을까?

김광석.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21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내던 까까머리가 이제는 머리가 희끗한 중년이 되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에도, 실연의 상처에 힘겨워하던 때에도,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던 그 모든 순간에 그는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의 노래와 더불어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장되지 않는다.

그의 노래는 대체로 어둡고 슬프다. 물론 밝은 노래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두운 노래를 좋아한다. 오랜 시간 곱씹으며 듣다보면 그 어둠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맥박이 안정되며,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싶을 때, 바닥을 쳐야 올라갈 수 있겠다고 느낄 때, 그의 노래는 나를 이끌어 준다.

김광석 21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노래들 중에서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법한 몇 곡을 정리했다. 추모의 분위기가 더 이상 슬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유쾌하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는 글이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그가 저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면 모두가 즐겁고 흥겨운 인생을 살기 바랄 것이다.

나의 영원한 애창곡을 소개합니다

그가 웃는 모습을 그린 벽화
▲ 김광석 거리에서-2 그가 웃는 모습을 그린 벽화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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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나의 영원한 애창곡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몇 년 전 버킷리스트의 목록을 뽑으면서 1호로 적었던 것이 이 노래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 부르기였다. 그리고 한 달간의 피나는 연습으로 마침내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수백 번 다시 들었던 노래지만 여전히 좋아하고 아끼는 곡이다. 이 곡이 2016년을 보낸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위로는 다음과 같다.

너무 나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자.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기 전에 빨리 갈아치우자. 이제 우리 다시는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로 세상에 오지말자. 그래야 국민들 정신 건강에 이롭다. 하루 빨리 그대를 죗값 치르러 아주 멀리 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건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시대의 명곡을 일부 개사하여 오염시키고 혼탁하게 만든 점에 대해 우선 사과드린다. 하지만 요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오롯이 드는 생각이다. 대통령 잘못 뽑았다고(물론 내가 뽑은 건 아니지만) 후회 말고, 너무 나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었다고 인정하자. 이번 기회에 이상한 대통령 만드는 배후세력까지 싹 정리해서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보자. 고인의 서정적인 노래가 요즘에는 가열 찬 투쟁가에 준하게 들려오는 게 비단 나만일까?

두 번째 노래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고인이 동물원 시절에 불렀던 노래다. 중학교 때부터 아껴 듣고 부르던 노래이니만큼 더 이상 가사에 먹칠할 생각은 없다. 제목 자체만으로도 감흥에 젖게 만드는 노래.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 싶을 때마다 목청 높여 불렀던 노래였다.

애국가에 준거하면 가을하늘은 높고 구름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가을 하늘이 흐리다? 아,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 어디선가 꼬이기 시작했고, 잘 안 풀리는 거다. 그럴 땐 마음을 다잡고 편지라도 써보라는 의미다. 조금 더 확대 해석해 보면 가을 하늘이 흐리고, 나라의 앞날도 흐릴 때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하라는 뜻이다. 편지 쓰기 귀찮으면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을 하거나 촛불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가자는 거다.

후렴구에 광석이 형님께서 쭉 뻗어나가는 부분을 듣다보면 저절로 힘이 생긴다. 서글픈 상념과 허위의 길들을 지워버리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라 말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저절로 씻겨 내려가지 않을 거라면, 읽던 책을 접어두고 행동에 나서라는 그의 음성은 현 시대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세 번째 곡은, 듣는 순간 천만 촛불 시민이 떠오르는 노래다. 만약 그가 살아있어 광화문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면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나무'라는 곡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 않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켰던 나무 같은 시민들. 노래의 가사처럼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 없이, 하늘을 찌를 때까지 커지고 자라서 이 땅에 정의와 상식을 세우려는 평범한 시민들. 마치 그들을 위해 만든 노래처럼 들린다.

이 노래의 백미는 바로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오.'라는 가사에 있다. 자부심이자 아름다움이다. 뿌듯하고 칭찬 받아 마땅하다. 백만 명이 넘게 모여도 부상자 없고, 연행되는 이 하나 없는 평화로운 집회. 백만이 지나간 자리에 쓰레기 한 조각 남지 않는 성숙한 집회. 누적 인원 천만의 꾸준한 집회. 나는 촛불을 든 주위의 다른 나에게 황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대도 나와 같지 아니한가?

마지막 노래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김광석을 좋아하는 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노래다.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에 김광석의 애절한 목소리와 피아노 선율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는 보석 같은 명곡이다. 비오는 날에도 잘 어울리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들으면 오히려 더욱 찡하게 가슴에 남는다.

가사의 일부다. '빗물에 꽃씨 하나 흘러가듯 마음에 서린 설움도 떠나.' 그렇다. 작년 한해 분노하고, 절망하고, 부끄럽고, 안타깝던 모든 설움들은 빗물에 꽃씨 하나 흘러가듯 흘려보내자. 잊어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마음에 담아두면 울화병이 될 만한 것들은 하루 빨리 비워버리고 그 자리에 맑은 기운을 채워 다시 싸워나가자는 의미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지 않은가?

분개하여 일어선 감정은 지치기 쉽다. 물론 감정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뜨거운 심장과 더불어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냉철한 이성도 필요하다. 온 국민의 열망인 정권 교체를 위해 격정적인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이 노래를 추천한다. 그녀들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촛불 지킨 국민들에게 그의 노래를 전합니다

김광석 거리에서 기자가 제일 좋아하는 벽화. 담배를 문 그의 젖은 눈빛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 김광석 거리에서-3 김광석 거리에서 기자가 제일 좋아하는 벽화. 담배를 문 그의 젖은 눈빛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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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노래 이외에도 김광석의 노래들은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데 제격이다. 늦가을부터 시작된 촛불 집회에서 추위에 떨며 촛불을 지킨 모든 국민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하고 싶다. 여건상 일일이 찾아뵙고 마음을 전할 수 없기에, 대신 그의 노래를 전한다. 그의 목소리는 절망과 무력감으로 얼어붙은 우리의 영혼을 녹여줄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의 기일에는 술잔 앞에 앉게 된다. 그의 노래를 틀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주인장이 알아서 틀어주는 곳도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우리 가슴속에 진하게 흔적을 남기는 사람, 김광석. 그의 노래는 세상일로 힘들어하는 모든 이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태그:#김광석, #김광석 21주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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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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