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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서울에 살면서 감당해야 할 주거비용은 대체 얼마나 될까? 주변 이들에게 물어보니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으로 사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교 앞에 사는 경우라면 월세를 50만 원 이상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님과 서울에 산다면 따로 주거비가 들지는 않겠지만 주거비 때문에 독립하지 못한다면 괴로운 일일 것이다.

마을공동체와 공유주택이라는 주제로 청년주거대안 사례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번 청년주거대안 탐사는 공동체은행을 표방하는 희년은행과 교육NGO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함께 기획했고 여기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여 시작했다. 2017년 1월 4일, 24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해방촌 빈집'이다.

"월세 부담을 늘 안고 있고 계약이 끝난 후 어디에 살지 고민이 많아요. 주택문제를 대안적으로 풀어가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해방촌 빈집은 2008년 2월 즈음 시작되었다. 거창한 목표가 있던 건 아니다. 지음과 살구 두 사람의 여행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결혼을 앞둔 지음과 살구는 그들의 친구 한 명과 함께 여행 다니면서 서로의 집에 초대받았던 것처럼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각자의 전세금을 빼어 모아보니 4천만 원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은행에서 8천만 원을 대출해 방 세 개짜리 가정집을 임대했다.

이들은 그곳을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라고 부르며 누구나 주인이자 손님인 곳으로 꾸려가고자 했다. 말 그대로 손님들의 집으로 시작했다. 빈집에는 남자방, 여자방 그리고 손님방이 있다. 여기에는 장투(장기 투숙자)와 단투(단기 투숙자)라는 구분만 있고 장기 투숙자는 남자방과 여자방에, 단기 투숙자는 손님방에서 생활한다.

빈집에서 표방하는 환대, 자치, 공유라는 가치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이런 공간을 이상이 아니라 현실로 구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찾아간 해방촌 빈집은 10년째 이상을 현실로 그려내고 있었다.

해방촌 빈집에선 '누구나 주인이자 손님'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해방촌 빈집에선 '누구나 주인이자 손님'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 기독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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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주인이자 손님인 곳, '빈'이라는 가치를 현실화하는 곳, 이런 곳은 도대체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이들은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많이 놀자는 식이다. 실제로 해방촌 빈집에선 월 22~25만 원으로 생활할 수 있다. 생활비를 최소화하니 최소 비용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남은 에너지와 시간을 다양한 창조적 활동에 쏟았다. 전혀 다른 철학으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간 것이다.

해방촌 빈집은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빈 마을로 확장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빈집에 장기투숙자가 10여 명이 되자 더는 빈집이 빈집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빈집을 만들기로 했다. 은행에서 2천만 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두 번째 빈집은 전세가 아닌 월세로 임대했다. 적은 돈으로 새로운 생활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세 번째 집은 빈집의 가치를 공감하는 세 사람이 근처에 집을 얻으면서 시작됐다. 그 집도 빈집처럼 운영되었다. 네 번째 집의 경우 두 사람이 전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이사하게 되어 전세금을 빼줘야 하는 상황, 빈집의 다른 이가 이를 부담해줬다. 빈집은 빈집들로 확장되었는데, 이는 자본의 증식과 달리 철학의 공유를 통한 전염이었다. 빈집들은 긴밀히 교류하고 서로 도우면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갔다.

해방촌 빈집은 2008년 봄에 시작해 일년 만에 마을공동체로 확대되었다.
 해방촌 빈집은 2008년 봄에 시작해 일년 만에 마을공동체로 확대되었다.
ⓒ 기독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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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서로 비교하며 맘고생 하는 것도 삶일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찾아 놀면서 일하며 우정의 연대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 이런 삶에는 예측하지 못한 창조성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공동체은행 빈고는 빈집들의 전세금을 서로 돌려 막아주면서 생겨났다. 해방촌 빈집에서 누군가는 더 많은 전세금을 내기도 했다. 그런 차이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생기는 것을 감지했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해결점은 공동체은행 빈고를 만들면서 빈집의 안정성과 함께 상징적이더라도 평등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빈가게는 빈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했다. 빈가게는 카페이자 술집이자 생협이고 도서관이었다. 빈가게에서는 지역의 여러 주민들과 어울리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고 다양한 동아리들의 공간이 됐다. 빈집 투숙자들끼리 즐겁게 사는 것을 넘어, 해방촌 지역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해준 것이 빈가게였다.

대안화폐 실험도 이어졌다. 국가와 자본을 넘어서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공동체화폐로 시작한 해방화폐는 바자회 수익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에서 구체화되었다. 해방화폐를 통해 빈집이 해방촌의 주민들, 상인들과 교류하고 가능하다면 지역의 상인들을 돕고자 했다. 해방화폐 가맹점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해방촌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 한몫을 해냈다.

상임활동가 서원 님이 해방촌 빈집, 빈고, 빈가게 등을 설명하고 있다.
 상임활동가 서원 님이 해방촌 빈집, 빈고, 빈가게 등을 설명하고 있다.
ⓒ 기독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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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빈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려주는 상임활동가 서원 님을 마치 외계인을 보듯 신기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면서도 이런 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경이롭기만 했다. 상임활동가 서원 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초기에 시작했던 3명은 아직도 해방촌에 있나요?"
"여기 대표는 누군가요?"
"어떤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나요?"

서원 님은 초기 3명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대표도 조직도 없다고 답변했다. 특정한 사람이 해방촌 빈집을 대표하지 않으며, 대표가 있다면 다수이고, 조직이 있다면 대단히 유연하고 유동적이고 복잡한 조직이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해방촌 빈집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공동체은행 빈고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전혀 다른 철학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는 것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어떤 철학을 표방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없다고 답변할 것이다.

성공회 용산 나눔의집에서 운영하는 해방촌 이야기에서 해방촌 빈가게 자리를 이어서 운영하고 있다.
 성공회 용산 나눔의집에서 운영하는 해방촌 이야기에서 해방촌 빈가게 자리를 이어서 운영하고 있다.
ⓒ 기독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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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야기했듯이 삶은 현실이다. 다양하고 창조적인 꿈을 꾸더라도 우리의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해방촌 빈집의 자랑이었고 사랑방 같은 곳이었던 빈가게는 더이상 없었다. 그곳엔 해방촌 이야기라는 간판이 걸렸다.

빈가게는 여러 부침을 겪다가 작년 3월에 문을 닫았다. 2010년 하반기에 시작해 2012년 협동조합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으니 6년을 운영한 셈이다. 애정이 큰 만큼 아쉽고 속상한 마음이 컸으리라. 그런 마음이 공감되었는지 해방촌 빈집을 지지하는 성공회 용산 나눔의집에서 공간의 연속성을 보존해주고 있다.

"빈가게는 왜 문 닫게 되었나요?"

상임활동가 서원님은 함께 운영하는 것이 빈가게의 큰 장점이면서 동시에 한계였다고 들려주었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다섯 명의 손맛이 다르다 보니 먹을거리 사업으로는 실패했다고 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사업한다고 할 때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공동체화폐인 해방화폐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증이 들어 질문을 던졌다. 상임활동가 서원 님은 해방화폐가 일종의 상품권 그 이상이 되지 못했고 현재 모두 회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해방화폐는 한때 해방촌의 상점 60~70%가 가맹점으로 확대 운영되었으나 지엽적인 활용 수준에 그쳤다. 화폐가 회전되지 못하고 환전소에서 환전되곤 했었다. 이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갈 여건이 되지 못했던 것이 한계였다고 한다.

해방촌 빈집과 빈마을이 처한 보다 더 큰 위기는 해방촌 일대에 불고 있는 부동산 시세 폭등이었다. 용산미군기지가 이전하고 공원이 조성된다면 엄청나게 요동칠 것이다. 여기에 이미 기획 부동산이 개입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신흥시장이 도시재생사업 지역으로 선정됐는데, 이 결정이 나기 전후에 임대료가 상당히 올라가기도 했다. 신흥시장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합의가 이뤄져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았다는 소식은 이미 임대료가 올랐기 때문에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해방촌 빈집에서도 이 문제에 조심스럽게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청년이 서울에서 살기엔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청년주거대안 사례를 탐방하는 것에 24명 청년들이 참여했다.
 청년이 서울에서 살기엔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청년주거대안 사례를 탐방하는 것에 24명 청년들이 참여했다.
ⓒ 기독청년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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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빈집은 지속 가능한지 물었다. 상임활동가 서원 님은 유쾌한 목소리로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고 있고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부동산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새로운 지역에서 다른 가능성을 실현해가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무기력하지 않은가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상임활동가 서원님은 "도시에 산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일정 정도의 무기력함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대안의 길은 막혀있지 않고 열려있다"고 답변했다. 공동체은행 빈고는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고 '빈땅 프로젝트'를 추진해가고 있다. '빈땅 프로젝트'는 서울의 집값이 빠르게 오르는 현실을 고려해 나의 땅이나 너의 땅이 아닌 모두의 땅을 찾아 매입하는 것이다. '빈땅 프로젝트'를 통해 임대료를 안정화하고 공유지를 넓혀가고자 한다.

"해방촌 빈집 이야기 들으며 단기투숙객, 장기투숙객이 특별한 규율과 약정 없이도 잘 어울려 생활하고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비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빈의 가치'를 10여 년 간 지속하게 하는 힘, 10여 년 간 이 공동체를 이끌어 온 강한 결속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생활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데, 해방촌에도 불어닥친 기획부동산을 잘 막아내고 극복해가길 바랍니다. 이미 10여 년 간 보여준 빈집, 빈가게, 대안화폐, 빈마을, 빈고… 등이 자본에 의해 무기력한 이 사회에 울림을 준 소중한 실험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잘 헤쳐나가며 단단한 공동체로 새로운 실험들을 해나가길 응원합니다."

탐방에 참여한 윤은주 님이 남긴 소감이다.

장기적 전망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창조적 실험을 쉽게 재단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 지속되는 것만이 가치있다,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논리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인질 삼아 살아간다면 그렇게 기다리던 미래는 좀처럼 현재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를 현재로서 경험하고 현실을 그 자체로 향유하는 것은 아무래도 낯선 것일 수도 있으나 우리들이 진정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해방촌 빈집에서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해왔고 몇가지는 중단되기도 했으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끊임없는 꿈을 꾸고 실험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방촌 빈집은 하나의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여전히 시도되고 있는 창조적 실험의 보통명사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아름다운마을신문(http://admaeul.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해방촌 빈집, #공동체은행 빈고, #기독청년아카데미, #희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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