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14년 5월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가만히 있으라'가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인 용혜인씨.
▲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지난 2014년 5월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가만히 있으라'가 적힌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인 용혜인씨.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2014년 4월 16일, 304명을 품은 채로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았고, 대한민국은 슬픔에 빠졌다. 전 국민적 슬픔을 표현하고, 함께 추모하기 위해 "가만히 있으라"라고 적힌 손피켓과 노란 리본을 묶은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서울 시내를 걸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 행진을 막아섰고, 5월 18일 97명, 6월 10일 69명의 사람들이 경찰서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후 세월호참사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의 아픔에 함께했던 많은 시민들은 경찰에 연행, 소환되고 기소되는 등 탄압을 받아야 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14년 5월 18일 침묵행진, 6월 10일 청와대 만인대회, 6월 24일 세월호추모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불구속 기소되었다. 세월호특별법 여-야 합의가 이루어진 10월 31일이었다. 검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그렇게 3건의 사건으로 시작된 재판은 이후 집회에 나갈 때마다 추가 기소되어 10개의 사건이 되었고,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지만, 1심만 2년 동안 진행한 끝에 2017년 1월 11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및 집회참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되면서 마무리되었다. 2014년 5월 3일 침묵행진의 경우에는 '구호를 외치지 않았기 때문에' 집시법상 신고대상에서 제외되는 '관혼상제'에 대한 집회라고 인정되어 무죄가 선고되었다. (관련기사: '가만히 있으라' 용혜인씨 유죄 선고, "끝까지 싸울 것")

경찰과 검찰의 '꼼수'

지난 2015년 4월18일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지난 2015년 4월18일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2015년 경찰이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세월호참사 이후 2015년 2월까지 총 368명이 연행되었다. 이 중 9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7명의 시민들이 실제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러한 연행 및 구속 말고 소환의 형식으로 집회참가자들을 탄압한 사례 역시 많다. 같은 기간 동안 경찰은 총 352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 368명의 연행자를 포함해 총 720명이 1년 미만의 기간 동안 세월호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다. 경찰은 이 중 426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5년 4월, 세월호참사 1주기를 전후로 있었던 "쓰레기 시행령 폐기" 집회에 참석했다가 연행, 소환된 사람들의 숫자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1주기 당시에는 경찰의 대응이 더 강경했던 만큼 시민들의 저항도 거셌기 때문에 2014년 참사 직후에 사법처리 된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을 것이다.

또한 2014년 집회 당시 참석했던 사람들이 2016년 말까지도 소환되고 기소되었다는 사실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의 숫자까지 합한다면 최소한 1000명의 사람들이 세월호참사 이후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사법처리를 받게 된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을 기소하는 주된 죄목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와 일반교통방해 혐의다. 이 중 일반교통방해죄는 형법 제185조에 따른 것으로, "육로 수로 또는 교량을 손괴 또는 불통하게 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한 자"에게 "10년 이하의 징역,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중범죄다. 집회 참가자들에게 이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까? 언제부터 이러한 죄목으로 집회참가자들을 처벌해왔을까?

미신고집회라고 하더라도 평화로운 집회 시위를 해산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있기 때문에,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하더라도 처벌하기가 어려워지자 경찰과 검찰이 고안해 낸 것이 집회 참가자에게 '일반교통방해'를 적용하는 것이다. 특히 2008년 촛불 이후 야간집회금지 규정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고 나서 집시법 적용의 여지가 줄어들자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하는 사례는 더욱 늘어났다. 평화로운 집회 및 시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집시법보다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법적용과 처벌에 더욱 용이하다.

일반교통방해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집회신고의 내용을 알기 힘든 단순참가자들에게 적용된다는 점이며, 공소장에 "수천 명과 공모하여 육로의 교통을 방해하였다"라고 적힌다는 점이다. 교통에 방해가 될 정도의 큰 규모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집회신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지금 행진의 경로나 집회진행 시간이 집회신고범위를 벗어났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경·검과 사법부는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통해 이러한 단순참가자들까지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수천 명과 공모했다는 검찰의 공소내용 또한 부당하다. '수천명과 공모했다'는 문구만 보면 피고인이 어마어마한 중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집회에 참석해 행진이 진행되는 흐름대로 도로에 서 있었을 뿐이며, 그 집회와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 수천 명이 같은 공간에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소된 사람들은 적게는 2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의 벌금, 혹은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기소와, 그에 수반되는 수백만 원의 벌금은 집회참가자들을 현실적으로 압박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경찰서는 자신이 피해자여도 찾아가기에 부담스러운 곳이다. 하물며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고 과태료가 아닌 '벌금'을 받아 전과가 남는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온다. 경찰이 집회 단순참가자들까지 광범위하게 일반교통방해로 처벌하는 것은 단순히 벌금 수백만 원의 효과를 넘어서 많은 시민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 자체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불러온다.

벌금 300만 원의 '효과'

세월호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세월호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번에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선고된 벌금 300만 원은 벌금 자체만 놓고 보면 큰 금액은 아닐지 모른다. 한 건에 수백만 원의 벌금이 선고되는 것을 고려하면 10건의 사건을 300만 원으로 막은 것처럼 보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집시법 적용과 일반교통방해혐의 적용에 대해 피고인 측이 주장한 모든 것이 기각되고, 검찰 측 주장이 그대로 인용된 것은 여전히 사법부가 검찰의 의도대로 집회 참가자들을 탄압하는 것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속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2016년 한 해 동안 1천 만의 촛불이 타올랐고, 언론에서는 이번 촛불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된 점을 강조하며 성숙한 시민의식이 드러난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한껏 추켜세웠다.

하지만 전 국민적 관심사인 박근혜퇴진 촛불집회가 아닌 생존권을 위한, 민주주의를 위한, 불의에 맞서는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런 사법적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권력과 정권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말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어제(1월 11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선고된 벌금 300만 원의 유죄 선고는 한 사람의 재판이긴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대한 탄압을 의미한다.

이후 진행될 항소심에서도 우리의 추모는 죄가 될 수 없음을, 그리고 진실을 위한, 인간다운 삶을 위한, 부정의에 맞선 싸움이 정당했음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할 것이다. 항소심 결과가 한 사람의 재판 결과를 넘어 비슷한 이유로 탄압받고 고통받는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희망이 되는 결과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목소리는 누를수록 더 높이 튕겨오르는 스프링처럼 탄압하고 억압할수록 더 크게 터져나올 것이다.


태그:#세월호, #가만히있으라, #침묵행진, #용혜인, #박근혜
댓글1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윤보다 인간인 사회를 꿈꾸며, 발딛고 서있는 곳을 바꾸고자 합니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