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 찍으면 그냥 화보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의 배우 현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공조>에서 현빈은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을 맡았다. 대사 수가 극히 적다. <역린> 속 정조였던 그의 모습과 비교해서 보길 추천한다. ⓒ 이정민


배우로서 대중에게 크게 사랑받은 대표작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빈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 가든> 등에서 대중적 인기를, <그들이 사는 세상> <아일랜드> 영화 <만추> 등을 통해 마니아적 깊이를 담보했다. 이처럼 고른 영역에서 자신을 오롯이 투신했고 인정받아온 스타가 또 있을까. 그런데 1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현빈은 "인생작은 아직 못 만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독 이번 만남에서 그는 기자에게 되묻는 일이 잦았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에서 큰 재미를 못 봤다는 세간의 평에 "흥행의 기준이 뭘까요?"라 물었고, 본의 아니게 박근혜 대통령의 '길라임' 가명 사건에 오르내리는 것엔 "제 삶은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런 사건에 언급된다고) 문제가 되나요?"라 짚었다. 단, 따지는 게 아닌 자신의 궁금증에서였다. 아무래도 전 영화 <역린> 이후 3년 만에 신작 <공조>로 만났기에 층위가 넓은 질문이 오고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침착했으며, 성실하게 답했다.

줄어든 대사, 깊어진 감정 표현

<공조>에서 현빈은 북한형사로 분했다. 위조지폐 동판을 탈취해 도주한 차기성(김주혁 분)을 잡기 위해 남한형사(유해진 분)와 공조 수사를 해야 하는 인물이다.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남한형사와 모든 면에서 뛰어나나 차기성에게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북한형사가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다분히 장르적 특징이 분명하면서 동시에 오락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 <공조>의 한 장면. 두 남자의 연기는 훌륭하다. 하지만 일관되지 못한 연출 탓에 이들의 연기가 제빛을 발하지 못한다.

영화 <공조>의 한 장면. 북한형사 철령(현빈)과 태식(유해진)은 서로에게 속마음을 숨긴 채 상대의 임무를 정확히 알아내고자 한다. 그러다 부지불식간 서로에게 인간적 유대를 느끼며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 남북 대치를 소재로 한 여러 영화들이 있었던 만큼 <공조>는 준비 과정이 5년에 이를 정도로 신중하게 진행됐다. 시나리오도 도중에 많이 바뀐 걸로 안다. 그 과정을 좀 알고 있는지.
"제안 받을 당시엔 잘 몰랐다. 그저 소재가 마음에 들었고, 시나리오가 좋아서 함께 하게 됐다. 남북 최초의 공조수사를 소재로 했다는 점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부분으로 부딪히는 게 영화의 재미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간 했던 캐릭터와도 다른 면이 있었고."

- 전작 <역린>과는 또 다른 고뇌의 표정이 보여서 좋았다. 아무래도 대사가 극히 적어서 감정 표현이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맞다! 대사로 감정 표현하는 게 사실 큰데 철령은 말보단 행동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눈빛이나 행동, 단답형의 대답들이 내겐 중요했다. 72시간 동안 남한형사 진태랑 함께 임무수행을 하는데 인간적으로 유대를 느끼고 소통하는 걸 표현해내기 힘들었다. 현장에서 감독님과 많은 얘길 했고, 시나리오와 현장 분위기에 집중했다. 톤과 뉘앙스 등 평소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일지라도 철령을 보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 사실 보이는 이미지는 오히려 남한형사에 가깝다. 유해진씨가 북한형사 같고. 아무래도 이런 전복효과를 노리고 애초에 기획한 것 같은데 마음에 드는지.
"(웃음) 마음에 든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님이 다르게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인터뷰를 어디서 봤다. 나 역시 그 부분이 좋았다. 팬들을 위해 택한 게 <시크릿 가든>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달랐지. 늘 충돌한다. 관객이 내게 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을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택하는 게 맞는지 말이다. 늘 스스로 질문하는 부분이다. 이젠 다양한 작품을 해서 관객 분들 마음에 들든 아니든 선택하게 해드리자는 생각이다. 누가 원하고 원하지 않고는 중요치 않은 거 같다. (배우로서) 선택의 기회를 관객께 드리고 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거지."

현빈의 분기점


- 그 변화 계기가 있나. 20대와 30대의 작품 선택이 달라졌다는 의미인지.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20대엔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들이 사는 세상> <아일랜드> <만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작품을 보고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군 제대 후 택한 <역린>도 그런 맥락이었던 거 같다. 지금은 또 재밌게 볼 수 있는 오락 영화가 보이나보다. <공조>와 지금 촬영 중인 <꾼>이란 영화도 그렇고."

- <그사세> 같은 작품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런 작품을 할 생각이 있는지. 군 제대 후 대중의 기대만큼 결과가 좋지 않다는 평도 있다. 
"방금 전 인터뷰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웃음). 좋아하는 작품, 감독님, 작가님들이다. 개인적으론 <그사세>가 조금 더 늦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노희경 선생님이 좀 빠르시다(웃음). 가장 현실적이었던 작품 같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절 군대를 기점으로 나누시더라. 20대에 군대 갔어도 그러셨을까. 아무래도 <시크릿 가든> 이슈가 있기도 했고, 남다른 곳으로 군대(해병대)를 가기도 해서 사람들의 기대치를 올렸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기나 흥행은) 제 능력밖인 거 같다. 책임회피가 아니라 신인이든 지금이든 아니 오히려 지금 더 작품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다.

흥행의 기준이 뭐라 생각하시나? 손익분기점? <역린>도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기준이 서로 다른 거지. 물론 관객 분들이 판단한 결과겠지만 <역린>에 대한 아쉬움이 있긴 하다. 그때 워낙 큰일(세월호 참사)이 발생하지 않았나. 극장 자체에 관객이 없을 시기였다. 그때 개봉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분들이 영화에 접근하셨을 거다. 나로선 카메라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 선택에 있어 길게 고민하는 편인가. <역린>은 개혁군주 정조를 다뤘다는 점에서 현빈씨와  연결지어 생각해봤다. 그런 지도자 상을 고민한 건 아닌지.
"선택까진 많이 고민한다. 안 해본 걸 찾고,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생각한다. 잘 할 수 없는데 달려드는 건 아니라고 본다. 신중하게 오래 고민하다가 일단 결정하면 빨리 몰입한다. <역린>은 한 중화권 호텔에서 책을 읽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과 상황들이 재밌었다. 정조 자체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분 아닌가. 그에 대한 여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임금 정조가 아닌 인간 이산을 보이고픈 마음이 컸다. 멋있는 분이다. 개혁군주로서도 그렇고, 그 분 주변에 있는 인물들도 그렇고."

길라임 논란 그리고 미래에 대해

현빈, 찍으면 그냥 화보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의 배우 현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금껏 출연한 작품 자체가 그에겐 훌륭한 교재였으며 스승이었다. ⓒ 이정민


- 많이들 물어봤겠지만 배우 현빈에게 <시크릿 가든>은 어떤 의미인가. 아무래도 인생작이 아닐까. 20대에 그런 인기의 정점을 찍어서 지금 기분이 좀 남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작은 아직 없다. 계속 찾아가고 있다. <시크릿 가든>이 많은 분들께 사랑받았다. 하지만 그 작품이 있기까지 여러 마니아 층 드라마가 있었다. <그 사세> <만추> <나는 행복합니다>도 있고…. 인기는, 음. 오히려 더 여유로워졌다. 뭔가 내 인생에 (인기가) 불쑥 들어온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이상으로 뭔가가 왔지.

인기는 언젠가 없어질 선물처럼 받아들인다. 이미 겪었기에 알고 있다. 언젠가 그건 없어진다. 작품에 대한 여운도 점점 빨리 없어지지 않나. '<역린>이 저조했고, <하이드 지킬, 나>도 저조했으니 <공조>가 현빈의 분수령 아니냐' 이런 말이 나오는데 전 아무렇지 않다. 성공하면 좋지만 어쨌든 난 다음 작품을 해나갈 것이다. 지금껏 배운 걸 바탕으로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갈 건데 인기야 뭐 어때? 하는 생각은 있다."

- 다른 매체처럼 따로 꺼내 쓰지 않겠다는 전제로 물어본다. 안 물을 순 없을 거 같다. <시크릿 가든> '길라임 사건'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현빈씨를 매우 애정하고 있는 거 같다. 그 애정의 깊이를 알고 있었는지.
"어유~! 그걸 제가 어떻게 아나(웃음). 그 이야기가 막 나왔을 당시 뉴스 보도는 못 봤다. 촬영장에 있었으니까. 관련해서 제게도 이런저런 문자들이 왔다. 그래서 나중에 뭔 일인가 찾아봤고, 하지원씨에게도 (안부) 문자를 보냈지. 제겐 하나의 해프닝이다."

- 2015년 현충일 행사 때도 부르지 않았나. 당시 추념식에서 시낭송을 했던 걸로 안다. 아무래도 작품이 아닌 정치인과 함께 언급되는 게 부담스러울 법하다.
"(웃음) 뭐, 그 분이 절 부른 건 모르겠고 보훈처에서 부른 거였다. 최근 보니 <시크릿 가든>을 다시 방송하더라. 못 본 분들이 다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 제가 느끼는 것과 대중 분들이 (뉴스를) 접했을 때의 온도차가 좀 있는 거 같다. 그 상황이 심각한 건가? 물론 시국은 심각하다. 제가 묻는 건 그렇게 엮여서 언급되는 상황에 제게 심각한 문제가 되냐는 거다. 그건 아닐 것이다. 저도 별 신경 안 쓴다. 크게 생각한 적도 없고. 그래서 해프닝이라고 표현한 거다. 전 변한 게 없으니까."

- 관심이 집중된 삶, 연예인으로 살면서 쌓이는 심리적 압박을 어떻게 해소할까 궁금하다.
"가급적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으려 하고 자극을 태연하게 넘기려 하는 것도 있다. 운동하면서 가장 많이 푼다. 자연스럽게 혹은 좀 노력해서 넘기는 거다. 지금까진 잘 흘러 넘어갔다. 다만 스스로 조이는 건 있다. <공조>라는 작품 자체도 매우 많은 분들과 함께 하지 않았나. 일단 그 분들을 1차적으로 실망시키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옥죄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주변에선 좀 놓으라고 하는데 성격 상 잘 안 된다.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는데 그분들께 미안하고 싶지 않아서다."

현빈, 찍으면 그냥 화보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의 배우 현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반듯함 속에 담긴 깊이. 현빈이 앞으로 보일 모습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새로움에 대한 몸부림의 결과일 것이다. ⓒ 이정민



현빈 공조 유해진 박근혜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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