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은 아직 유효한 개념일까. 인류는 탄생과 동시에 자신들을 빨아들이는 사고의 소용돌이에서 대응책을 학습해 나갔다. 지식이 쌓이고 기술이 발달하는 동안 천재지변이라는 말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예측과 대비까지 어느 정도 가능해진 시대가 왔지만, 아직도 자연재해로 스러지는 목숨이 존재한다. 여기에 전쟁이나 거대한 구조물, 핵과 같은 문명의 총아마저도 인명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인간은 신의 영역에도 손을 댈 수 있게 됐지만, 자신을 살리는 일에는 여전히 서툴렀다. 천재지변보다 인재(人災)라는 말이 이 같은 재난들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로 다가오는 이유다.

지난 2011년, 일본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했다. 일본 동북부 연안에서 발생한 9.0 규모의 어마어마한 지진은 쓰나미를 불렀고 이 거대한 파도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켰다. 천재지변보다 더한 인재가 사람들을 덮쳤다. 좀 더 튼튼하게 내진 보강을 했더라면, 차라리 국가가 이 시설을 책임졌다면, 애초에 그곳에 발전소를 짓지 않았다면, 따위의 사후약방문들이 세계 곳곳을 유령처럼 배회했다.

'만일이랬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속 혜성 충돌 위로 이 동일본 대지진이 겹쳐 보인다. 1000년 만에 찾아온다는 혜성은 기대했던 기적의 순간 대신 재앙을 내놓았다. 극 중 미츠하가 살던 작은 마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됐고, 사람들은 섬광과 함께 세상으로부터 사라졌다. 이후 아무도 찾지 않게 된 마을은 이토모리라는 이름조차 잃은 채 잊혔다.

낭만적 설정, 화려한 외피

 혜성 그리고 천재지변…. 그러나 <너의 이름은.>은 이런 재난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린다.

혜성 그리고 천재지변…. 그러나 <너의 이름은.>은 이런 재난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린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너의 이름은.>에서 이 같은 설정은 '무스비(結び)'로 대표되는 인연의 정서를 극대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도쿄 소년 타키와 시골 소녀 미츠하를 만나게 하는 것은 인연이고, 두 사람을 만날 수 없도록 하는 장벽은 운명이다. 그저 '얽히고설켰다'는 말 말고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흐름 속에서도 별안간 타키와 미츠하 사이에 사랑이 싹텄다. 그리고 서로서로 향해 손을 뻗게 하는 간절함은 혜성 충돌이 만들었다. '너의 이름을 영원히 잊어버리게 되더라도 너를 살려야만 하는',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지금부터 찾으러 가야 하는' 애틋함은 이로써 조성됐다.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 및 변화가 외부 세계의 상황과 줄이음되는 '세카이계' 작품의 특성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멀지 않은 현실이 오버랩되는 재난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흥행 포인트다. 여느 재난물들처럼 사랑으로 말미암은 희생이 강조된다는 점은 <너의 이름은.>에 대중성을 부여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 시공간을 초월한 인연의 붉은 실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으로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이처럼 몇 가지의 굵직한 설정들이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냈고, 그 결과 <너의 이름은.>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한국에서도 연일 기록적인 흥행 스코어를 경신하는 중이다. 덕분에 다소 진부한 스토리 위에 듬성듬성 놓인 설정과 설정 사이 거대한 틈들은 임시로 메워졌다. 극 중 대부분의 인과 관계를 운명 말고는 이해시킬 길이 없다는 점은 이 영화의 세계관이 치밀하게 짜여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가장 큰 약점은 단지 몸이 바뀌었을 뿐인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를 갈구하는 이유가 사랑이었다는 점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무의식이 절대적인 힘을 갖는 꿈속을 몸이 바뀐 두 사람의 행동반경으로 삼는다든가, 미츠하를 신녀(神女)로 만드는 등 상당히 경제적인 방법으로 우연의 남발을 가리려는 시도도 목격된다. 사람의 마음, 신의 영역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로 내러티브를 진행하며 외려 결정적 순간에 현실은 소거되다시피 한다. 막상 운석이 이토모리를 덮칠 적에는 그간 쌓아온 이야기들이 무색할 만큼 단번에 모든 것이 해결된다. 언급했듯 그렇다고 우연의 연속이 매끄러워 보일 만큼 조밀한 세계관이 짜여 있지도 않다.

타키와 미츠하의 '무스비' 때문에 발생한 상황들은 혜성 충돌을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는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로 탈바꿈시킨다. 운석이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를 듣고도 주민 대피를 주저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그저 '가만히 있으라'던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도 한다. 그러나 운명과 사랑의 합작은 사건을 로맨틱하고 간단하게 해결해 버린다. 이처럼 극의 흐름을 관장하는 권력은 맥락 없이, 반복하여 바뀐다. 그러는 사이 끔찍한 피해를 낳을 수도 있었던 인재는 낭만적인 설정과 화려한 연출이라는 외피를 입을 따름이다.

물론 이 같은 낭만화가 잘못됐다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재난을 그린 작품으로서 보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미츠하에 대한 아쉬움

 영화 <너의 이름은.>의 흥행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하지만….

영화 <너의 이름은.>의 흥행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하지만….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러나 이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가 그럴싸하게 접붙인 변종 장르로서 소비된다. 그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뻔하지만 필요한 희망의 메시지는 희미한 대신 전형성을 띠는 오락적 측면들이 주목받는 탓이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미츠하로 대표되는 여고생에 대한 망상들이 몹시도 순수한 상상처럼 표현된다. 이는 몸이 바뀐 후 타키와 미츠하의 반응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난데없는 상황에도 덮어 놓고 가슴부터 주무르고 보는 타키에 비해 미츠하는 화장실 갈 때마저 얼굴을 붉힌다. 남성향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여고생 팬티 서비스컷에 출렁이는 가슴은 되레 몰입을 해친다. 타키가 미츠하의 얼굴로 과격한 말투를 사용한다거나 타키의 몸에 들어간 미츠하가 딸기와 생크림이 잔뜩 얹힌 팬케이크 앞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 광경을 볼 때는 "남자색은 파랑, 여자색은 분홍이야!"라며 떼를 쓰는 유치원생이 겹친다.

타키의 행동이 현실적이고 충분히 공감과 이입이 가능한 것과 다르게 미츠하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미츠하 캐릭터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여고생 모에물(모에는 문화 콘텐츠 속 캐릭터에 대한 사랑을 일컫는 말로, 일반적으로 귀여워 할 만한 구석이 있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에서나 볼 법한 설정들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순진하고 순종적이지만 가끔은 적극적으로 돌변해 남자들을 놀라게 하며, 특정 신체 부위가 타의에 의해 부각되곤 하는 미소녀들이다.

다시 타키와 미츠하의 몸이 바뀐 직후로 돌아가 보자. 놀란 마음이 진정될 즈음 겨우 타키의 몸을 확인하는 미츠하의 모습은 멀리서 풀샷으로 비친다. 여고생에게 삭제된 성적 호기심의 영역을 단적으로 조명하는 부분이었다. 보통의 실제 여고생에게 호기심 이상으로 부끄러움이 클지를 반문하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궁금하니 만지고 보는 타키의 모습과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미츠하 캐릭터는 현실 감각의 불균형에서 오는 찜찜함만을 남겼다.
'귀여우니까 대상화된다'는 여고생 모에 정서의 바탕에는 실제 사람에 대한 이해보다 만드는 사람과 이를 원하는 사람들의 망상이 앞선다. '연애를 글로 배웠다'는 시쳇말처럼 만화만 보고 만화를 만들었다는 인상이 남는 이유다. 그리고 <너의 이름은.>의 미츠하는 이 같은 하나의 대상으로서 극 속에 머무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너의 이름은.>이 일본과 한국 관객들에게 소구하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크고 작은 재난들을 직격타로 맞은 후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과 기적에 대한 갈급함을 자극했다는 것이 첫 번째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청춘물이라 봐야 교복 입은 어른들의 연애를 비추는 데 그쳤던 터라 순수한 로맨스에 대한 갈증도 있었을 터다. 여기에 '빛의 마술사'라고 불릴 만큼 풍경 작화에는 정평이 나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성이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항마로 떠오른 것 역시 성공 요인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 깊은 아쉬움이 남는 까닭은 무엇인가. 영화는 인연과 운명을 무기 삼아 인재를 엉성하게 낭만화했다. 그리고 망상 속의 여고생이라는 몇 개의 익숙한 설정만이 영혼을 갈아 넣은 듯한 풍경 위로 나뒹굴 뿐이었다.

 영혼을 갈아넣은 듯한 풍경이 아름다웠지만, 그 위에는 진부한 설정만 쌓여 있었다.

영혼을 갈아넣은 듯한 풍경이 아름다웠지만, 그 위에는 진부한 설정만 쌓여 있었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