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미인도>는 10.26 사태 이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집에서 압류되어 국립 현대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으로 화가 본인은 본인 작품이 아니라 주장했지만 미술관 측에서는 진품이라 주장하는, 약간은 우스운 상황에 놓여있다. 위작 논란 이후 천 화백은 절필 선언을 하고 미국으로 떠났는데 "자기 작품도 분간하지 못하는 화가"라는 세간의 조롱을 견디기 어려워했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천 화백은 본인 작품이 아니라하고 미술계에선 천 화백 작품이 맞다고 주장한다
▲ <미인도> 천 화백은 본인 작품이 아니라하고 미술계에선 천 화백 작품이 맞다고 주장한다
ⓒ 나무위키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런 논란은 비단 <미인도>에만, 혹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은 아니다. 화가의 이름값에만 집중하는 분위기와 하나의 작품을 놓고 벌어지는 화가와 미술관, 화랑협회와 미술학계 등을 아우르며 벌어지는 파워게임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자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이에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위작 논란 중 유명한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판 메이헤렌, 일명 베르메르 맨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의 권력자들이 약탈한 다량의 미술품들이 한 소금 광산에서 발견된다. 네덜란드에서 유출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도 그 중에 있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 작품을 적국인 독일에 넘긴 판 메이헤렌을 체포해 전범 재판에 넘겼는데 그의 진술은 당국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실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는 자신이 그린 위작이며, 자신이 만들어낸 베르메르의 위작은 이 작품 하나가 아니라는 것.

당시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알려지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 당시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알려지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그의 진술은 대독 협력죄라는 중죄를 벗어나기 위한 거짓 진술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판 메이헤렌은 법정(정확히는 옥중)에서 직접 그림을 그려보이며 자신이 판 그림이 자기가 그린 위작이었음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위작을 만든 쪽에서는 자신이 위작을 만들었음을 주장하고, 판정하는 쪽에서는 위작이 아닌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때 그려진 그림이 바로 <학자들 사이에 앉은 그리스도>이며 그는 이 그림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인 덕분에 전범 재판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 국보급 명화를 팔아넘긴 매국노에서 나치를 물 먹인 애국자로 그의 위상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는 옥중에서 <학자들 사이에 앉은 그리스도>를 그려보였다.
 그는 옥중에서 <학자들 사이에 앉은 그리스도>를 그려보였다.
ⓒ creativecommons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판 메이헤렌의 작품들은 유명 미술품 콜렉터들은 물론이고 네덜란드 정부도 거금을 주고 구매했기 때문에 위작임이 밝혀진 후 여러 사람들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전문가들조차 깜빡 속았다는 점과 큰 금액을 지불하고 구매한 작품이 위작이라는 점은 쉬이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관련 소송이 줄을 잇는 등 혼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1987년,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빈센트 반 고흐(이하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4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일본의 야스다화재해상보험(지금의 손해보험재팬)에 낙찰되었다. 반 고흐는 래플리카(화가 본인이 원작과 똑같이 만들어낸 것)를 포함해 <해바라기>를 여러 차례 그렸는데 경매에 나온 <해바라기>는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해바라기>의 래플리카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 그림이 사실은 래플리카가 아니라 그저 위작이라는 의견이 대두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화병에 서명이 있는 쪽이 런던, 없는 쪽이 일본이다
▲ 런던의 <해바라기>와 일본의 <해바라기> 화병에 서명이 있는 쪽이 런던, 없는 쪽이 일본이다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해당 <해바라기>가 위작이라고 의심을 받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은 반 고흐의 편지에 해당 <해바라기>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죽은 뒤 그의 작품을 모두 물려받은 요한나(테오의 아내)의 리스트에도 이 작품이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은 행방이 묘연했다가 아메데 슈페네커라는 화상을 통해 어느날 갑자기 파리에 나타났는데 아메데 슈페네커는 다른 위작 사건에도 많이 연루된 인물이어서 의심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이 <해바라기>의 원본으로 불리는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를 보수작업한 사람이 하필이면 그의 형인 에밀 슈페네커라는 점도 순수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미심쩍다.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를 보수하는 동안 이를 바탕으로 위작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다른 <해바라기>들과 달리 유독 이 <해바라기>만 물감의 색감과 광택이 다르며 화병에 "빈센트" 라는 서명이 없는 등 자잘한 의문들도 제기되면서 의심은 더 커졌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2002년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 측에서 나서 이 <해바라기>는 진품이라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의문점들은 남아있어 아직도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위작을 가려내려는 쪽과, 들키지 않으려는 쪽의 싸움은 갈수록 치밀하고 치열해지고 있다. 위작을 가려내는 일에 절대적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감정사의 연륜과 양심, 당시의 과학 기술 등에 크게 좌우된다.

화가 본인의 의사 또한 위작 판별에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도 조금은 조심스러운 문제다. 헝가리의 위조 작가 엘미르 드 호리의 경우, 자기가 그린 위작을 해당 화가에게 보증하도록 만든 적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90세의 노인이었던 키스 판 동언은 드 호리가 베껴 그려온 그림을 보고 자신이 그린 것이 맞다며 서명했고 이후 이 위작은 진품으로 둔갑됐다.

판 메이헤렌을 포함한 몇몇 위작 화가들은 "재능이 있으나 빛을 보지 못한 무명 화가들이 보수적인 미술계에 복수하기 위한 방법으로 위작을 택한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사실 위작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제작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그 이익은 부당한 성격일 경우가 많다. 천 화백의 <미인도>가 논란의 정가운데 놓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미술계가 성장할수록 위작 산업이 성장하는 일 또한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빛보다 그림자가 커져 빛을 가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미인도> 또한 누군가의 목적과 이익에 맞춰 정해진 결론이 아니라, 공정하고 명확한 결론이 도출되어 오랜 기간 이어져온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라본다.

[참고 사이트 및 도서]
http://nuctom.blog.me/220886348496
http://nuctom.blog.me/220457318409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_%ED%8C%90_%EB%A9%94%EC%9D%B4%ED%97%A4%EB%9F%B0
<미술품 속 모작과 위작 이야기>(이연식 저)


태그:#미인도, #위작, #반고흐, #베르메르, #해바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