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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출발할 때부터 최강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끊었다. 송파 세모녀도 절망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사고로 삶을 잃었고, 구의역 김군을 비롯하여 한 해 2400명이 산재로 죽었다.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사회를 만들지 말자는 다짐이다.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들이 왜 죽었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에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박근혜 정권과 싸워온 사람들' 기획을 내보낸다. - 기자 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 중 하나는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생명권 보장' 위배다. 세월호가 침몰한 10시 30분부터 재난 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말했던 5시 15분 사이의 7시간. 국민 304명의 생사가 걸려 있던 시간 박 대통령의 구체적 행적은 1000일이 흐른 지금도 흐릿하다.

시민의 촛불은 진실을 밝히려는 유가족들의 발걸음에도 새 국면을 가져다주었다. 7시간 동안 청와대를 드나든 사람들, 박 대통령이 했던 일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귀족 유가족'이라 손가락질 받던 유가족들의 지난한 싸움의 흐름도 달라졌다.

박 대통령 탄핵 이후 달라진 상황에 대해 유가족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묻고자, 지난 19일 단원고 2학년 10반 故 권지혜양의 어머니 이정숙씨를 만났다. 아래는 이씨와 나눈 일문일답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달라진 언론... 서운한 반, 고마움 반

단원고 2학년 10반 故 권지혜 양의 어머니 이정숙씨
 단원고 2학년 10반 故 권지혜 양의 어머니 이정숙씨
ⓒ 조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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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농단 사태 이후 세월호를 향한 여론도 달라졌습니다. 변화를 느끼시는지?

전에는 서명받으러 다니면 추태 부리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서명해달라고 말 안 해도 와서 서명해주시고 음료수도 사다 주세요. 애기엄마들은 애기 손잡고 와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봐요. 관심을 가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서 얘기해달라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다 저희들 힘나게 하거든요. 우리 아이들 널리 알리러 다닐 힘이 나요. 시민들이 어떻게 해 주느냐에 따라서 용기가 많이 나요. 사실 시민들 도움 없으면 오래 갈 수 없어요. 자식 잃었으니 싸우긴 하겠지만 끝까지 가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오히려 기운 빠지게 하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엔 시민들한테서 다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얻어요.

- 언론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어요.

그렇죠. 많이 달라졌죠. 예전엔 TV 틀면 정부 입장에서 세월호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요즘은 어딜 틀어도 다 세월호 7시간 얘기를 해요. 다시 우리를 받아들여 주는 것처럼 느껴져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계속 버텨준 덕분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전되었다는 이야기도 해주니까 저희로서는 고맙죠.

- 여론에 따라 언론의 태도가 바뀐 것이 혹시 서운하지는 않나요?

서운함 반, 어쨌거나 다시 이야기해주는 거에 대한 고마움 반이에요. 언론의 태도가 바뀐 걸 보면서 정부의 권력이 참 무섭긴 하구나 생각도 해요. 갑자기 다시 재수사를 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해주니까. 그래도 어쨌거나 언론이 다시 짚어주고 꾸준히 조명을 해주잖아요. 그건 고맙죠.

인터뷰는 안산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화랑유원지 내 '기다림의 성당'에서 진행됐다. 故 권지혜양은 천주교 신자였다.
 인터뷰는 안산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화랑유원지 내 '기다림의 성당'에서 진행됐다. 故 권지혜양은 천주교 신자였다.
ⓒ 조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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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이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심판에 불출석하는 등 여전히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촛불집회가 몇 달째 계속되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잖아요. 출두하라고 해도 계속 자기 자리만 지키고 있고.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통 사람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거 아니에요.

사실 박근혜 정권 이전엔 그래도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박근혜 정권 들어서고부터는 마법에 빠졌다고 해야 하나. 나쁜 마법에 걸려 있는 게 아닐까,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게 진짜 현실일까.

- 7시간은 많이 조명되고 있지만, 실제 인양작업 등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1월 16일) 해양수산부에서 인양 관련 설명회를 했어요. 이미 여러 번 연장됐는데 다시 4월로 미뤄졌어요. 업체랑 재계약도 6월까지로 연장됐고요. 인양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꼭 해야 하는 과제물인데 계속 미뤄지고 있어요.

TV에는 7시간에 대해서만 계속 나오잖아요. 사실 저희는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 했는지 안 궁금해요. 미용을 하든, 성형수술을 하든 그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거든요. 다만 그 7시간 동안 왜 구하지 못했는지가 알고 싶어요.

- 박근혜 정권과 싸워온 다른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투쟁 과정은 다른 이들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했을 텐데요.

처음엔 우리 아이밖엔 생각이 안 났어요. 광장에 나가게 된 것도 우리 일 때문이었잖아요. 그런데 나가 보니까 우리나라엔 밑에 있는 사람, 어려운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삼성 백혈병 사건의 피해자들, 사드가 동네에 배치되는 사람들... 우리도 우리지만, 솔직히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들과 연대해서 나라를 바꿀 수만 있다면 확 뒤집어버리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권력에 맞부딪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낮은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뭉쳐도 안 되는 게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로지 어려운 사람들밖에 없으니까,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생각, 발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좌절밖에 안 생기더라고요.

"그만하라는 소리 안 하고 노란 리본만 달아준다면..."

안산 화랑유원지 내에 위치한 합동분향소로 가는 길
 안산 화랑유원지 내에 위치한 합동분향소로 가는 길
ⓒ 조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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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 정국을 통해 좌절이 긍정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시민들을 보면 이번에 뭐라도 바뀔 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면에 사건을 찔러만 놓고 다시 스르르 제자리로, 권력의 시대로 돌아갈까봐 걱정도 돼요. 사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계속 그랬잖아요. 문제를 부각만 시켜놓고 다 해결되지 않았는데 흐지부지 되고. 오늘도 이재용 삼성 부사장 구속영장이 기각됐잖아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마음이 흐려지더라고요. 다시 하나하나 덮어버리진 않을까. 힘센 사람들 쪽으로 흘러가버리지 않을까.

- 그래도 정권이 바뀌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면 해결된다고 보더라고요. 많이는 안 바뀔 것 같아요. 권력 가진 사람들은 거기서 거긴 것 같아요. 그래도 진짜로 나라를 걱정하는 대통령이 나온다면 50%는 바뀌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만 해도 성공이라고 봐요. 누구도 100% 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정권 교체가 된다면 아무래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 밑바닥인 것 같아요. 기본만 잘해도 지금보단 낫겠죠. 오히려 밑바닥까지 갔으니까 새로운 사람이 나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월호 진실을 밝혀내는 건 저희만의 일은 아니라고 봐요. 저희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해야 다음 세대가 제대로 살 수 있잖아요. 시민들이 저희랑 끝까지 함께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만하라는 소리 안 하고 노란 리본만 달아주셔도 저희는 싸울 힘과 용기가 생겨요.


태그:#세월호, #박근혜, #세월호유가족, #노란리본, #세월호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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