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긴 줄을 형성하고 있는 관객들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긴 줄을 형성하고 있는 관객들 ⓒ 성하훈


24일 저녁, 체감 기온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어스름 저녁 광장은 을씨년스러웠다. 6시가 넘어 어둠이 내리깔라며 천막 앞으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더니 줄이 생겨났다. 한적하던 광장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6시 반을 지나니 줄이 조금씩 길어진다. 연극 표를 받기 위한 사람들이다.

공연 시작은 8시. 하지만 입장권 배부는 공연 1시간 전부터다. 무료공연이지만 표를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선착순이다. 매서운 추위에도 연극을 보기 위해 1시간을 버티는 사람들에게서 열정이 느껴졌다. 뒤편으로 긴 줄이 형성됐다.

'광장극장 블랙 텐트'. 임시방편 천막으로 만들어진 극장은 지난 8일 생겨났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 파문이 커지면서 뿔난 연극인들이 광장에 극장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공연은 큰 무대에 서기 어려웠던 현실. 공적인 지원도 생각할 수 없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권이 문화예술을 통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으려 했던 공연은 세월호와 위안부, 비정규직 등 소외되고 억울한 자들의 이야기였다. 이런 작품들을 상영하기 위해 아예 단 하루 만에 모두가 달라붙어 극장을 지어냈다. 빼앗긴 극장은 그렇게 세워졌다. 광장은 극장이 됐고, 극장이 광장이 됐다.

세월호 위안부, 비정규직을 삭제했던 박근혜의 공공극장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뒤늦게 온 관객들이 입장을 위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뒤늦게 온 관객들이 입장을 위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 성하훈


7시 정각. 입장권 역할을 하는 번호표가 본격적으로 나뉘었다. 긴 줄이 줄어드는가 싶었는데, 손에 쥔 번호표에는 90번이 찍혀 있었다. 정원 80석 극장은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만석을 예고하고 있었다. 긴 줄은 사라졌지만, 표를 받아가는 손은 계속 이어졌다. 이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으려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연극인들은 이곳을 임시공공극장이라 규정한다. 이 극장에서 연극의 공공성과 예술의 공공성, 극장의 공공성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자 한다는 의미다. 공공극장은 공적인 성격을 띤 곳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공공극장은 공적 재원으로 운영될 뿐 연극과 극장이 동시대 국가와 사회 인간에 대해 묻지 않는다고 연극인들은 한탄했다. 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는 국공립극장에서는 세월호와 위안부 공동체가 함께 나눠야 할 이야기들이 추방됐다. 제대로 된 공공극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7시 40분. 어둠이 짙은 광장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공연 20분 전부터 입장이 시작됐다. 공연 10분을 앞두고 극장 안은 관객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도 입구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중이었다.

개관공연이 있었던 10일을 비롯해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 16일 이후 극장은 연일 만석이었다. 첫 공연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빨간시>. 지난 16일부터 1주일간 공연됐는데, 만석은 기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관객에 연일 보조 의자가 늘어났다. 지난 금요일에는 모두 140명 이상이 들어섰을 만큼 정원을 한참 초과했다.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이날 낮에는 포럼이 열렸다. 극장의 공공성에 대해 연극인들의 고민과 답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국공립극장들이 외면한 극장의 공공성을 향후 구현하기 위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광장극장 블랙 텐트 운영위원인 임인자 연출가는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고 말했다. 극장을 세운 정신이 잘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는 것도 연극인들의 바람이었다. 극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무대 양 옆까지 들어찬 관객

 24일 공연을 보기위해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찾은 관객들

24일 공연을 보기위해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찾은 관객들 ⓒ 성하훈


8시. 공연시간이 지났지만, 관객들은 계속 입장했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스태프들의 발길도 분주해졌다. 빈 공간에는 보조 의자가 놓였다. 무대 양쪽 구석에 자리를 마련했다. 배우들의 움직임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정도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극장 관계자가 앞으로 나와서 시간이 다소 늦어지는 데 대한 양해를 구했다. 관객들이 박수로 호응했다.

그리스 연극은 야외연극이었다. 야성이 강한 연극으로 알려져 있다. 아고라(광장)를 통해 펼쳐졌고, 민중들의 목소리가 담긴 소통의 도구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연극도 사람들이 모인 장터에서 해학과 풍자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80~90년대 대학가의 마당극도 그랬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시대 풍자를 통한 비판으로 웃음이 가득했다. 배우와 관객이 한데 얽혀 함께 구호도 외치고 박수도 쳤다. 얼기설기 임시로 차려진 광장극장은 그 느낌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8시 10분. 입장이 얼추 마무리됐다. 진행자가 앞으로 나와 연극 시작에 앞서 광화문에서 천막 농성 중인 유성기업 노동자를 소개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유성기업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해줬다. 공공극장으로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극장의 배려였다.

이날 공연된 작품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만든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그와 그녀의 옷장>. 진행자는 관객들에게 마음껏 웃고 호응해 달라고 했다. 박수로 화답하는 관객들. 관객들은 이미 마음을 열고 있었다.

조명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더니 암전. 다시 불이 들어온 순간 연극이 시작됐다. 얇은 천막으로 둘러친 공간이었지만 맹추위가 파고들 틈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극장 안은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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