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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는 오래 전부터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해오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오래 전부터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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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 전인 2014년 4월, 헌법재판소는 선거권을 비롯하여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안타까운 결정을 내렸다. 청소년들이 "정치적 판단 능력이 미약"하고,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하다면서, 청소년들에게 선거권과 정당가입 등을 불허한 것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던 것이다. 국회에서 18세 선거권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것도 결국 비슷한 이유에서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하기에 미성숙하다는 논거다.

하지만 과연 만 18세는 정치적 판단을 하기에 미성숙한, 선거권을 보장받아서는 안 되는 나이일까? 이는 다른 나라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계를 둘러보면 만 18세 또는 그 이하의 나이에도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는 나라들이 다수다. 그런 나라의 청소년들보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특별히 더 늦게 성숙해진다거나 더 미성숙하다고 할 이유는 없다. 만약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특별히 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교육제도나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헌법재판소나 국회에서는 청소년들의 성숙함을 따졌지만, 선거권 연령 논의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지금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할 길이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청소년에게도 선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선거제도 등 지금의 정치 제도가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불합리하고 모순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선거철에는 각종 교육공약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교육의 당사자 중 하나인 청소년은 그 공약의 구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교육정책이든 청소년정책이든 무엇이든 결정은 어른들이 한다. 나 같은 고등학생이 가장 체감하는 교육정책이나 대학입시제도 등도 어른들의 결정으로 오락가락한다. 청소년을 위한,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하겠다는 정치인들은 많지만 청소년들의 의견을 묻고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들은 별로 없다.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어른들의 결정에 의해 청소년들의 인생이 좌우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은 어차피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니까 어른들이 결정한 것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지금은 공부나 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말을 안 해도 이미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학습시간은 세계에서 1위를 다투고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대학 가는 일에 투자를 하더라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어른들의 말대로 따른다고 해서 과연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게 현실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행동 나선 청소년들의 모습. 그들은 어른들이 결정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국정교과서 반대 행동 나선 청소년들 국정교과서 반대 행동 나선 청소년들의 모습. 그들은 어른들이 결정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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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우리도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개혁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나는 선거권 연령이 현재 고등학교 1학년 정도, 즉 만 16세까지는 내려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사회 교과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사회나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충분하다. 또한 스마트폰의 보급과 인터넷의 상용화 등으로 정보를 쉽게 빨리 얻을 수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질적인 '권리' 확보를 위한 방안

18세 선거권이 입시 공부에 방해가 된다거나, 선거권을 갖게 되더라도 입시 때문에 제대로 관심 갖고 행사하지도 못할 거라는 우려가 있다. 초점이 잘못된 이야기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매우 바쁘게 일을 한다고 해서 선거권이 업무에 방해가 된다거나 일하느라 바빠서 정치에 관심도 못 가질 거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선거일 휴무를 보장하는 일 등, 어떻게 하면 선거권을 잘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인지 고민한다. 청소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일전에 우리 반에서 성적으로 2, 3등을 다투는 친구가 나에게 요즘 시국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친구만이 아니라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 등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서 뉴스를 자세히 볼 여유도 없이 지낸다.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잘 행사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여가시간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정당이나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하고 알아보기 위한 시간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줄이듯이 학습시간과 학습 부담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나 학원에서의 야간 학습을 없애는 것이 우리의 여가시간 확보 및 실질적인 참정권 보장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2015년 2월, 광주 관내 고등학교의 '방학 중 자율학습' 지침 위반이 문제가 됐다. 이에 광주 지역 인권·교육·청소년·시민사회단체들이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시교육청이) 학력지상주의에 적극 편승해 노골적으로 장시간 자율학습 지침을 내리고, 나아가 방관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통탄할 만한 일이다"고 발표했다.
 2015년 2월, 광주 관내 고등학교의 '방학 중 자율학습' 지침 위반이 문제가 됐다. 이에 광주 지역 인권·교육·청소년·시민사회단체들이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시교육청이) 학력지상주의에 적극 편승해 노골적으로 장시간 자율학습 지침을 내리고, 나아가 방관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통탄할 만한 일이다"고 발표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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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학교에서는 지금 민주주의와 정치, 선거 등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사실 지금 어른들도 모두 이런 것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함께 토론하면서 우리의 권리를 잘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학교에서부터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왜곡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검증하는 방법이나 선거권의 중요성,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인권의식 등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이처럼 단지 민주주의가 어떤 것이라고 교과서로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우리가 민주주의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선거권 연령에 대한 논의는 청소년이 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실질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말로만 '청소년이 미래다' 하지 말고, 우리들이 현재와 미래를 바꿔 나가는 것이 가능하도록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대선에서든 총선에서든, 적어도 청소년들의 표를 의식하여 청소년들의 의견이 반영된 정책들을 내놓을 것이다. 물론 청소년들이 선거 결과를 다 좌우할 수도 없고, 그 영향력은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에 전부 개혁할 필요는 없다. 공약을 내세워 한 가지씩이라도 토론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미래는 서서히 바뀔 것이다. 개혁을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된다. 개혁은 이런 당연한 권리들을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태그:#18세선거권, #선거권, #청소년, #청소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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