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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날 아수나로 등 청소연 단체는 '평등한 민주주의의 봄을 요구하는 청소년참정권요구 선언'을 발표했다.
 지난 총선날 아수나로 등 청소연 단체는 '평등한 민주주의의 봄을 요구하는 청소년참정권요구 선언'을 발표했다.
ⓒ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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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선거권 논의가 뜨겁다. 그러나 18세 선거권을 청소년 참정권이라 부르기에는 낯이 뜨겁다. '정치'라고 하면 오직 투표하는 것만을 떠올리는 사회 분위기 탓일까. 정치 참여 중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선거권을 18세로 낮추어도 되는가'의 질문은 종종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허락할 것인가'의 질문과 혼동되어 쓰인다.

지금의 사회는 청소년에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18세 선거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8세 선거권을 찬성하는 이유가 '18세 연령이 병역, 납세 등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고 있으면서 유독 선거 참여만 제한받는 것이 이상하다'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이 글에선 청소년들이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해 겪게 되는 불합리한 점들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시민 자격을 갖지 못한 청소년에게 일어나는 인권 문제는 '18세 선거권 논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1. '백지 동맹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시하는 교칙

누리꾼이 올린 학교 교칙
 누리꾼이 올린 학교 교칙
ⓒ 커뮤니티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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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천지부에서는 2012년에 인천 지역 중·고등학생들의 정치적 권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50개의 학교 규칙들을 조사한 바 있다. 그중 '백지 동맹을 주동하거나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시한 학교들이 절반에 이르렀다. 아마 많은 청소년들이 백지 동맹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백지 동맹이란 답안을 제대로 쓰지 않은 채 답안지를 내는 일로,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학교 당국,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 하는 단체 행동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학생일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정행위에 반대하는 뜻으로 이승만 글짓기 행사에서 백지 동맹을 이끌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정부에 항거하는 의미의 백지 동맹을 이끌었던 최순덕 여사의 일화도 있다.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교칙에 백지 동맹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생겼다는 점도 놀랍지만, 백지 동맹을 이끈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최순덕 여사를 추앙하면서 여전히 학칙에는 백지 동맹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남아있는 것이 모순적이다.

'학생 운동'으로 대표되는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는 이제 역사 교과서에만 박제되어 있고, 정치 참여와 관련된 학내 분위기는 오히려 퇴화했다. 백지 동맹을 금지하는 것은 그 예 중 하나일 뿐이다. 대부분의 학칙들이 집회나 시위와 같은 학생 집단행동을 금지하고 있고, 사회단체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경우도 꽤 많다.

대전 충남중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학교의 두발 규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인쇄물을 학생들에게 배포했다는 이유로 '학생을 선동하고 질서를 문란하게 한 죄'라고 일컬으며 교내봉사 5일의 징계를 선고받았다. 부산에서는 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사회 참여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는 이유로 동아리를 강제로 해산당하고 벌점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렇듯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학교 내에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펼칠 수 없다. 학내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교 밖의 사회 문제에 관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선동 행위', '학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정치 행위'로 취급되어 징계의 이유가 된다. '공부에 전념해야 할', '순수한' 청소년들이 사회나 정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의 말을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학생들이 학교 규칙에 반기를 들고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학교 내 절대 권력이 교사에게 치우쳐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힘을 가지는 것, 즉 정치 행위를 하는 것은 교사와 학교 관리자 입장에서 매우 위험하다. 이렇듯 학교 내의 문제들을 결정하고 해결하는 정치 행위에서 학생들을 분리시킴으로써 교사들은 학생들을 더 쉽게 강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정하는 데 관여하지도 않은 불합리한 교칙이나 상벌점 기준들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 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음

한국청소년재단, 희망의우리학교, 반딧불이 등 청소년단체들이 중심인 '1618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는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선거연령인하운동을 펼쳐왔다.
 한국청소년재단, 희망의우리학교, 반딧불이 등 청소년단체들이 중심인 '1618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는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선거연령인하운동을 펼쳐왔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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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 운동이 활발했을 당시 청소년총선대응네트워크에서는 8명의 청소년들이 '청소년의 선거 운동 금지에 대한 불복종행동' 기자회견을 했다. 선거 운동을 하는 정치인들처럼 노래를 크게 틀고,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피켓으로 만들어 들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국회의원 후보에 대해서 말하는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선거법상 불법이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전, 이들은 혹시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불려가지는 않을까, 변호사를 알아보기까지 하며 노심초사했다. 이처럼 청소년들은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권이 없을 뿐 아니라 선거운동을 하거나 특정 정당 및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한 청소년이 트위터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올렸다가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법과 정책으로 실현시킬 정치인을 지지하고 후원한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여성을 위한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들을 지지하고 투표를 독려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의 진실을 밝힐 의지가 강했던 박주민 의원의 선거 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는 엄연한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다. 대의민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에 따라 정당에 가입하고 선거 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한다. 그러나 선거권도, 선거운동을 할 권리도 없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정치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 이는 청소년들이 원하는 법이나 정책이 쉽게 통과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총선 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학습시간 줄이기' 관련 정책에 대해서 6곳의 정당에 질의 메일을 보냈다. 학습시간 줄이기는 학생들의 과중한 학업 부담을 줄이고,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제였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에서는 질의에 응답조차 보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구체적인 대책 없이 '법정 수업일수 변경을 검토해보겠다'와 같은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이처럼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의 인권과 삶의 수준은 향상되기가 굉장히 어렵다. 청소년운동에서 10년도 넘게 주장했던 두발 자유는 서울을 제외하고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3.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함

지난해 11월 19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가 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는 가운데,  청소년들이 청계천 영풍문고앞에 모여 시국대회를 열고 있다.
▲ '박근혜 퇴진' 청소년 시국대회 지난해 11월 19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가 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는 가운데, 청소년들이 청계천 영풍문고앞에 모여 시국대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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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뉴스를 보면 자신의 지역에 큰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로비를 하거나 재개발을 막기 위해 시위를 하는 지역 주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집 근처에 핵 폐기물 처리장이 생긴다면 나의 건강에는 큰 위험이 따를 것이다. 또한 집 근처에 큰 오락시설이 들어선다면 소음으로 일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결정이 행해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역 주민으로 살고 있는 청소년은 사실상 그 지역의 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마을의 반상회나 아파트 주민협의회에서 청소년의 모습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도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미성년자는 아파트 동별 대표자로 선출될 수 없다. 동별 대표자들은 입주자 대표 회의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내의 문제들을 논의하고 해결하는데, 그런 문제에 있어 청소년이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다.

청소년의 의사 결정을 제한하기 때문에 지역은 청소년이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기도 한다. 인구수가 적은 지역일수록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 시설이 부족하거나 청소년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설이 부족한 것이 그 예이다. 청소년을 위한 시설마저 청소년 당사자 보다는 학부모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놀이나 청소년 간의 교류보다는 학습과 자기계발 등이 주된 목적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정된 예산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청소년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으니 논의의 결정 방향이 비청소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정치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참정권이 없는 청소년은 자원을 배분하기 위한 과정 자체에 참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삶의 수준은 비청소년의 것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앞의 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에게 강제적으로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청소년도 현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논의 과정과 의결 과정에 배제하는 것은 청소년을 온전한 시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글에서 말하는 사회의 논의 과정과 의결 과정은 비단 '의회 정치'에 국한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지역, 또는 가정에서 논의와 결정이 이루어지는 모든 자리에 청소년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 청소년의 참정권이 보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청소년에게는 민주주의가 오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은채씨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입니다



태그:#청소년, #참정권, #18세선거권, #청소년참정권,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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