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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없고, 1회용 그릇도 없는 페스티벌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서의 1주일은 정말 이상했다. 행사 기간 내내 플라스틱 제품을 구경도 못했고, 태양열로 데운 물로 샤워했다. 행사 기간 내내 아몬드 우유, 무설탕 유기농 스무디 같은 웰빙 음식을 먹었다. 아침에는 요가를 하고, 점심에는 황토로 집 만드는 강의를 들었다. 저녁에는 술 한 방울 안 마시고 맨정신으로 히피들과 춤을 췄다. 한국에서 20대 초반에 다녔던 일회용 쓰레기 많고, 기업들의 광고판으로 가득한 록 페스티벌과는 너무 달랐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원래 여행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뉴질랜드에 가기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원래 뉴질랜드 남섬, 넬슨에 있는 리버사이드 공동체에서 3주를 머물며 공동체 생활 체험을 계획했다. 공동체에 도착한 첫날, 공동체 사람들이 "루미네이트 페스티벌 가요? 마을 사람들 전부 다 가니 같이 갑시다"라고 했다. 무슨 행사길래 사람들이 전부 다 간다는 걸까.

루미네이트 페스티벌 안내 브로셔를 읽어보니 믿을 수 없는 말이 쓰여 있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음악, 예술, 춤, 창의성, 자본 지상주의 탈피, 그리고 자연을 보호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행사입니다. 페스티벌에서 술을 팔지 않습니다. 음식 판매대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을 주지 않습니다. 개인 식기 들고 오세요. 물을 사용하지 않는 재래식 화장실만 있습니다. 쓰레기통도 없습니다. 대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퇴비 구덩이는 있습니다. 저희는 대형 기업 후원을 받지 않습니다. 페스티벌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만든 물건만 팝니다."

정말 이런 페스티벌이 있다고?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참여 예상인원은 5000명인 작은 축제였다. 행사 기간은 2월 1일부터 8일까지이고, 입장료는 305 뉴질랜드 달러(약 25만 원)였다.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 비싼 가격이었지만, 브로셔에 쓰인 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페스티벌을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2008년부터 2년마다 뉴질랜드 남섬의 아벨 타스만 국립공원에 위치한 타카카힐에서 열렸다. 타카카힐은 해발 790m에 위치한 분지이며, 뉴질랜드 토착 부족인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장소다. 페스티벌에 가기 위해서 구불구불한 산자락을 따라 구름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했다.  

수백 년 동안 목초지로 사용된 타카카힐 분지는 방대했다. 원시림에서나 볼 법한 고목들이 드넓은 광야 같은 분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무대들은 커다란 나무들 사이에 듬성듬성 있었다. 6개의 워크숍 천막 강의실 안에 사람들이 땅바닥에 주저앉거나 담요를 깔고 누워 강의를 들었다. 1개의 천막 강의실은 대략 3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

오전에는 줌바, 요가, 댄스 등의 몸을 움직이는 워크숍이 많았다. 오후에는 가정용 버섯재배, 세계 곳곳의 공동체 안내, 자가 치아 관리, 천연 비누 만들기, 흙집 건설, 스트레스 줄이는 방법 등의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는 워크숍이 열렸다. 밤에는 또 다른 5개의 무대에서는 락, 일렉트로닉 음악이 울려 펴졌고 사람들은 맨정신에 춤을 췄다.

페스티벌 사이트 곳곳에 인공 조형물보다 높다란 고목들이 많았다. 이따금 있는 인공 조형물은 나무 조각상이나, 나무로 만든 드림캐처(미국 원주민의 장식용품)였다. 페스티벌 곳곳에 놓인 6개의 모닥불 근처에는 전부 나무로 된 의자만 있었다. 무대나 워크숍 장소보다 잡풀이 자라고 나무가 있는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 더 넓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관객에게 자연과 일치되는 경험을 선사하는 듯했다.

1회용 플라스틱 밧줄, 케이블타이도 사용 금지

무대, 화장실, 음식 판매 등의 모든 공간을 만드는데 쓴 재료는 거의 고물상에서 찾았다. 기둥을 세우고, 무대 설치하는 데 필수라고 여겨지는 1회용 플라스틱 밧줄, 케이블타이는 주최측에서 사용을 금지했다. 대신 재사용 가능한 밧줄이나 고무줄을 사용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최대한 자원을 재활용하고, 적게 사용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뤘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는 정말 쓰레기통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개인 컵과 접시를 가지고 다니거나 음식 판매자들에게 5달러의 보증금을 내고 그릇을 빌렸다. 한국에서 음악 페스티벌에 가면 산더미 같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 쓰레기를 본 기억이 났다. 지속가능한 삶에 눈뜨게 축제 현장의 쓰레기 더미가 불편했었다. '왜 한국에서는 대안적인 방법을 실행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릇 대여 말고도 하나의 해결책이 더 있었다. 그릇을 씻을 수도꼭지가 곳곳에 있었다. 수돗가에는 계면활성제가 없는 친환경 세제가 있었다. 그릇 씻은 물은 페스티벌 주최 측이 설치한 물 정화 시스템을 거쳐 도시의 수도관이 아닌 흙으로 돌아간다. 그릇 씻는 물까지 아끼고 재활용하다니. 수돗가와 샤워부스에서 나오는 온수는 태양열로 데운 것이었다. 일상에서도 하기 힘든 일을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서 겪었다.

쓰레기통이 없는 대신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 더미에 버릴 수 있었다. 음식 판매 공간의 구석진 곳에 옥수수 껍질, 빵 조각 같은 음식물 쓰레기 더미가 해충 방지를 위한 건초와 섞여 쌓여 있었다. 행사의 마지막 날, 5000명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 더미는 1m 높이였다. 주최 측은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퇴비로 재활용한다고 했다. 쓰레기 더미의 해충 방지를 위한 건초는 숲에서 가져왔다. 건초를 숲에 내버려 두면 자연 발화가 되어 산불로 번질 수 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작은 건초 하나까지도 활용하며 지속가능성을 추구했다.

음식 판매자들은 술을 팔지 않았다. 대신 버섯 차, 공정무역 핫 초콜릿, 무설탕 스무디를 팔았다. 재료들은 90% 이상 지역 생산품이었고, 육식 메뉴는 하나도 없었다. 두부 햄버거, 채식 피자, 아몬드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 건강에 좋은 음식이 가득했다. 주최측은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의 기본정신 중 하나가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예요. 술, 콜라, 감자튀김같이 몸에 해로운 음식은 판매 금지예요"라고 했다.

화장실은 전부 재래식, 물 내리는 버튼 대신 톱밥 있어

화장실은 전부 재래식이었다. 수세식 화장실은 한정적이고 비싼 자원인 물을 사용하여 오물을 치우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신조로 한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변소에는 물 내리는 버튼 대신 톱밥이 있었다. 일을 본 후 분뇨 위에 톱밥을 뿌리니 냄새가 나지 않고 파리가 꼬이지 않았다. 주최측 오줌과 인분을 모아서 발효 과정을 거친 후 지역 농부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의 시스템은 내가 알던 기존 페스티벌과는 딴판이었다. 기존에 가본 페스티벌은 사방이 기업들의 광고판이었다. 기업들은 화장품 샘플과 브로셔를 비닐봉지에 담아줬고, 손가락보다 작은 화장품 병을 제외한 것들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는 쓰레기통이 없으므로 아무도 그런 식으로 물건을 팔지 않았다. 판매자들은 물건을 봉지에 담지 않고 소비자의 손으로 넘겼다.

페스티벌에 오기 전부터 쓰레기를 최대한 적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포장이 많은 음식을 가져오면 포장지를 행사 기간 내내 보관했다가 집으로 가져 가야 했다. 과대포장 상품은 짐이 될 뿐이었다. 1주일 동안 캠핑하면서 먹으려고 빵과 잼을 만들었다. 손수 음식을 만드니 포장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었다.

주최 측이 마련한 루미네이트 에코 투어 워크숍을 들으니 내가 한 행동들이 주최자들이 목표했던 바였다.

"많은 사람이 우리는 변화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했고 우리는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으로 보이죠. 우리가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 움직여야 해요. 탑 다운 방식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우리는 참가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쓰레기 버리고 대기업 상품을 소비하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경험을 페스티벌을 통해 선사합니다. 음식 판매대에서 파는 채소 위주의 지역 생산 음식만을 먹으며 몸의 변화를 느껴볼 수도 있지요. 대안적 삶의 기술을 알려주는 워크숍을 통해 관객들이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의 친환경 시스템을 집에서도 실행할 수 있게 돕습니다. 삶의 변화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페스티벌이 끝난 후에도 지속가능한 삶, 친환경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하는 셈이죠. 우리는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 풍성한 삶을 누리기 원해요."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서 내가 2~3년 동안 꿈꿔왔던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실제로 경험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자연으로 돌려보내며, 핵발전소가 아니라 태양열로 만든 온수로 샤워했다. 진흙을 이용해 스스로 친환경 주택을 짓는 방법도 배웠다. 방법을 몰라 몇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됐고,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지 기술 교육도 받았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내게 라이프 스타일의 혁명적 전환을 선사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는 나같이 대안적 삶, 환경문제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유키와 얘기를 했다.

"저는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 음악을 즐기려고 왔어요. 쓰레기통이 없다거나 자기 컵과 접시를 가져와야 한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유키에게 머그컵을 5달러의 보증금을 내고 빌릴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 더미에 버리면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농사용으로 재활용한다고 알려줬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지속가능한 생활 시스템에 문외한인 사람마저 새로운 삶의 방식에 자연스럽게 노출 시켰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내게 다른 삶의 방식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줬다. 더불어 그 다른 삶의 방식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지 비전까지 알려줬다. 지속가능성이란 주제를 유쾌한 축제의 형식으로 기획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삶이란 주제를 받아들이고 실천하게 하는게 그 비결이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서의 이상한 1주일은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거대 자본에서 해방된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변환은 어려운 듯 보였다. 일상에서는 동네 주민이 만든 음식보다 맥도날드의 햄버거가 더 구하기 쉽고, 저렴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에서는 5천 명이 1주일 만이라도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려고 마음을 모았다. 그 결과, 너무나 간단하게도 삶의 형식을 바꿀 수 있었다. 루미네이트 페스티벌은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변환은 우리의 결심과 행동만 있다면 어렵지 않음을 보여줬다. 


태그:#지속가능성, #세계일주, #뉴질랜드 , #페스티벌,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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