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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적어도 몇 번쯤은 이런 질문을 듣는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누군가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나는 다소 곁으로 새는 대답을 할 것이다. "나는 강이 좋아"라고 말이다. 바다에 인접한 강도 있을 것이고 산 속을 흐르는 강도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 하류보다는 상류를 훨씬 좋아하기에 아무래도 바다보다는 산촌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무주의 금강 디지털. 무주 어디께의 금강 줄기. 산과 평지 사이를 구불구불 흘러간다. ⓒ 안사을
금강은 전북 장수(뜬봉샘)에서 발원하여 무주, 금산, 영동, 옥천 등으로 북상한 후 다시 청원, 공주, 군산으로 남하하여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그 중 하류는 나의 고장과 멀지 않은 곳이라 가끔 나들이를 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오랜만에 들른 강경의 금강변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물빛과 흙빛, 갈대의 물결이 가득했던 풍경은 사라지고 그 만큼이나 넓은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공사가 된 모습이었다. 장단점은 논하지 않겠다. 다만 그렇게 변한 풍경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자연스럽게 금강의 상류 쪽을 자주 가게 되었다.

2년에 걸쳐 금강의 상류 지역을 다섯 번 정도 찾았다. 그러면서 산이나 바다라는 양자택일의 질문지에서 강이라고 하는 동문서답이 나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곳에는 사람의 탐욕이 묻지 않은, 생명력이 넘치는 물줄기가 있었다.

적벽강 캠핑장에서의 하룻밤

가장 최근 그곳을 찾은 것은 약 2주 전, 달빛이 잠시 드러났다가 밤과 함께 사라지는, 음력 1월 3일이었다. 강줄기에 안겨 밤새도록 별들의 움직임을 필름에 기록했다. 물론 본격적인 어둠이 오기 전 산능선 뒤로 넘어가려 하는 초승달의 가녀린 모습을 먼저 담은 후였다.

'랑데부'는 프랑스어로, 본래 회합의 만남 또는 만나는 지점을 뜻한다. 또한 우주의 공간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는 우주선에 또 다른 우주선이 같은 궤도와 같은 속도로 진입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로도 쓰이는데, 비유적인 표현으로 지평선과 가까운 곳에서 초저녁에 초승달과 금성이 함께 있는 광경을 가리켜 '천문현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랑데부'라고 말하곤 한다.
별과 달 디지털. 초승달과 금성이 함께 빛나고 있다. 초승달 모양 위로 어둑하게 모습을 드러낸 달 전체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 안사을
초승달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의 빛을 덜어내어
별들이 총총히 드러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빛나지 않는 달의 부분은
겸손과 배려의 마음인 셈입니다.


달의 넉넉한 마음씨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아쉬워
지구가 살며시 빛을 나누어줍니다.


까만 어둠에 감추어있던 달의 마음이
은은한 빛으로 동그랗게 드러났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저 달은 이 밤의 주인공을
별들에게 완전히 넘겨주겠지요.


달과 지구가 주고받는 아름다운 대화를
별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더욱 더 영롱하게 빛나는 것만이
그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을.


-시덥잖은 시. '달의 마음을 본 적이 있나요?'

여기서 신기한 것은 달의 모양이다. 분명 초승달은 눈썹모양인데 위 사진에서 보이는 달의 모습은 노랗게 빛나는 부분 위로 둥그런 달의 전체 모습이 함께 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지구조'라고 한다. 초승달 모양의 부분은 태양빛이 반사되는 부분이고 나머지의 어둑한 부분은 지구의 빛이 반사되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학교의 모습 또한 이러하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어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조금 감추어 학생을 빛나게 해주는 교사. 그 교사의 마음을 알아주는 동료교사. 선생님들의 이러한 소통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학생들. 이렇게 함께 더불어 아름다워지는 공간이 되기를.
별의 이동(북서) 필름(PROVIA100F). 금강을 끼고 있는 산능선 위로 별들이 지나가고 있다. 두 시간 정도 렌즈를 열어두었다. 지구는 한 시간에 15도 자전한다. ⓒ 안사을
유려하면서도 거친 산의 검은 능선 뒤로 달이 자취를 감추자 별이 더욱 더 밝게 느껴졌다. 위 사진은 자정부터 새벽 두시까지 촬영한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장노출을 해야 하는 별 일주 사진은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방식과 필름카메라로 찍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노출시간과 조리개 및 감도의 상관관계로 상을 맺는 사진의 원리는 필름이나 디지털이나 서로 같지만 장노출의 경우 디지털 센서의 열화 문제로 노출 시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카메라는 센서에 화상을 계속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을 두고 짧게 연속해서 사진을 담고, 추후에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합성하는 방식으로 촬영한다. 그렇다보니 간혹 중간에 헤드라이트의 빛이 섞여 들어갔다거나 하는 불량한 컷이 있으면 그것을 골라내고 합성하면 된다.

하지만 필름카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렌즈를 열어놓고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필름에 기록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의 중요성이 조금 더 중요하다. 단 한 차례라도 차량의 불빛이 카메라를 스치면 그 강렬한 불빛이 필름면에 기록되어 별의 배경이 되어주는 어둠을 희뜩하게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다. 위 사진을 찍은 곳은 평소 탐방을 다니면서 미리 점찍어둔 곳이었기에 방해를 받지 않고 우주의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

두시부터 네시까지 두 시간 동안 또 한번의 촬영이 있었는데 필름을 감지 않고 셔터를 눌러놓았다. 두 시간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것이다. 카메라 기종 특성상 필름을 감지 않으면 셔터를 누를 때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왜 셔터를 눌렀다고 생각했는지 짜증이 밀려왔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카메라를 만지다 보면 이렇게 정신 나간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카메라를 세팅한다.
별의 이동(정북) 필름(PROVIA100F). 북두칠성을 찾으면 북극성을 찾기가 쉽다. 혹시 몰라 핸드폰 어플로도 확인을 한 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역시 두 시간 정도 노출된 사진이다. 빛의 방해 때문에 바탕의 하늘이 밝게 나와서 아쉬운 사진이 되었다. ⓒ 안사을
이날의 천문박명 시각은 6시 반쯤이었기 때문에 4시부터 두 시간 반 정도 렌즈를 열어두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5시 반부터 하늘에 어둠이 점점 엷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쉬웠지만 더 셔터를 열어두지 못하고 버튼을 눌러 셔터를 닫았다.

그랫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조금 밝아진 것이 고스란히 필름에 담겨버려서 별의 선이 뚜렷하지 못하다. 한 번의 실수가 뼈저리지만 한 달 뒤의 그믐밤을 기약한 채 이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먼동 디지털. 동쪽 하늘이 천천히 밝아온다. ⓒ 안사을
동이 터오면 지난 밤 부족한 잠을 보충할 새도 없이 또 다른 경치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골짜기 안에서의 일출은 아름다운 색깔을 포함하지 않기에 아침 햇살을 받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첫 번째 새로운 경치가 된다.
금강의 아침 물안개 디지털. 다소 늦게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받아 물안개가 하얗게 빛나고 있다. ⓒ 안사을
겨울 강변의 아침 디지털. 아침 서리가 내린 겨울 강변의 풍경. ⓒ 안사을
금강의 굽이굽이

야영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고 곧바로 무주 읍내로 향했다. 밤새 깨어있느라 출출한 배를 어죽으로 채운 후 금강의 모습을 조금 더 담기 위해서였다. 공룡의 화석처럼 비쭉하게 솟은 능선들 아래로 흐르는 금강의 맑은 모습은 역시 아름다웠다.
금강은 흐른다 디지털. ⓒ 안사을
겨울 금강 파란 하늘과 갈색 식물들, 맑게 흐르는 강물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 안사을
햇살과 함께 디지털. 햇살을 물결로 잘게 부수며 흘러가는 금강. ⓒ 안사을
금강의 푸른 물 디지털. 돌멩이들을 스쳐가는 여울의 모습이 아름답다. ⓒ 안사을
아래의 사진들은 모두 필름으로 담은 사진들이며, 2년 동안 몇 차례에 걸쳐서 담은 금강 상류의 모습이다. 사람의 생활이 강의 자정작용을 넘어서지 않은 곳이며 인간의 개발이 자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은 곳이다. 용담호 건설로 인해 수몰된 마을의 가슴아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구량천(진안) 필름(PROVIA100F). 천반산 및자락을 흐르는 구량천의 모습. 죽도라는 곳을 굽이돌아 금강과 합류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이다. 주민들의 발길로 보이는 흔적을 간혹 찾을 수 있었다. ⓒ 안사을
구량천(진안) 필름(PROVIA100F). 흐르는 물과 함께 살아있는 모래톱의 모습. ⓒ 안사을
구량천(진안) 필름(PROVIA100F). 금강과 합류하기 직전의 구량천의 모습. ⓒ 안사을
금강(죽도마을) 필름(AGFA200). 저 멀리 문틀처럼 서있는 큰 두 개의 절벽이 보인다. 절벽 뒤로 흐르는 물은 구량천, 눈 앞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이다. 만날 듯이 가까이 있지만 1Km쯤 남하하여 만나게 된다. ⓒ 안사을
금강(진안) 필름(PROVIA100F). 구량천과 합수하여 진안군 상전면 일대를 흘러가는 금강의 모습. ⓒ 안사을
금강(무주) 필름(VELVIA100). 필름 특성상 채도가 매우 높은데 편광필터를 끼우고 노출을 약간 덜 주어 더욱 진하게 담았다. 무주를 힘차게 흘러가는 금강의 모습. ⓒ 안사을
적벽강(금강) 필름(VELVIA100). 금강의 한 부분으로, 붉은색을 띠는 절벽들이 늘어서있다고 해서 주민들이 적벽강이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극채도의 필름을 사용한데다가 색깔을 더욱 진하게 만들기 위해 언더로 촬영하였다. ⓒ 안사을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자연은 백만년지대계일 것이다. 보잘것 없는 몇 장의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금강에는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다고. 그 물이 언제까지나 흘렀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태그:#별사진, #필름사진, #금강, #적벽강, #용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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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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