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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세계는 굉장히 화려하면서 사회적으로 미치는 힘과 영향력 역시 상당하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방송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는데, 이번 일터가 만난 한별님도 방송을 연출하는 PD(Producer, 프로듀서)를 꿈꾸며 조연출 일을 하고 있다. 공중파에서 더는 예전처럼 정규직 신입 PD를 뽑지 않고 대부분 열악한 영세 외주 제작사에서 시작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이지만, 한별 님은 누구보다 즐겁게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디디고 있었다.
 
영세한 외주 제작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지만, PD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다가, 대학 때 전공하면서 습작에 불과하지만, 영상을 제작하면서 이 일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아요. 졸업하고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일을 더 배웠어요. 그러다 여행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외주 회사에 입사하면서 조연출 생활을 시작했죠. 지금은 방송사랑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고요."
 
많은 사람이 방송국 PD가 되려면 언론고시를 준비해서 방송사 공채에 합격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방송을 꿈꾸고 있는 청년들이 방송사에서 공채로 인력을 많이 뽑지 않다 보니, 외주 제작사로 들어가 방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워낙 외주 제작사에서 방송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외주 제작사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저도 처음에는 공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안정적이라는 것이 큰 장점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일을 병행하며 완벽하게 준비하기가 쉽지 않고, 외주 제작사에서도 충분히 배울 기회가 많아서 공채를 준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어요."
 
한별님은 지금까지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아침 방송을 거쳐 현재 동물 관련 '쇼양(쇼 + 교양)'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 프로는 제가 처음 입사한 외주 제작사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0년 차 이상의 경력이 있는 분만 PD를 할 수 있었어요. 평소에 해보고 싶던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이라 아주 즐겁게 일했는데 회사 사정상 제가 '입봉'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결국 이직을 해야 했죠. 그래서 입봉이 빠르다는 아침방송을 하는 제작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제작되는 시스템이 제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달랐어요. 솔직히 말하면 못 버텼다고 할 수 있겠죠? (웃음) 그래서 이대로는 방송이라는 자체에 흥미를 잃을 것 같아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죠. 다행히 지금은 재밌게 일하고 있죠. 그래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방송국 일은 늘 월화수목금금금이다

"매일 매일 다른데 촬영하는 날은 하루 종일 촬영만 해요. 얼마 전에 촬영 팀이(PD, 카메라 감독, 조연출) 지방으로 1박 2일 출장 다녀왔는데, 아침 6시 반에 출발했어요. 전 그 전날 미리 장비 챙기고, 숙직실에서 자는 거죠. 그리고 새벽에 출발해서 지방에 도착하자마자 종일 촬영했죠. 밥은 밤 10시에 촬영 마치고 먹거나,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질 때 먹곤 해요.

촬영을 다 마치면 숙소 들어와서 종일 촬영한 메모리카드 파일을 컴퓨터나 외장하드에 백업해요. 그리고 메모리카드 포맷하고, 다음날 다시 촬영하고 백업하는 걸 반복하죠. 사실 촬영하고 돌아오면 이제부터 제 일이 시작되는 거나 마찬가지죠. 백업한 파일들을 영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변환하는데 이게 시간과의 싸움이거든요. 그리고 같은 시간에 촬영한 부분을 맞추는 작업인 '싱크 맞추기'를 시작해요. 가끔 박수를 치거나 슬레이트를 치는 게 다 이것 때문인 거죠. 그리고 이제 PD님이 편집을 시작하고, 편집이 끝나면 작가님들이 그 영상을 가지고 자막과 내레이션용 원고를 쓰기 시작하죠. 그 뒤에 자막과 더빙, CG 등 모든 후반작업이 끝나면 방송 전에 심의위원이 최종 검토하고 방송이 나가게 되요."
 
한별님이 하는 방송은 총 5팀이 팀당 4명 (PD, 메인작가, 서브작가, 조연출)씩 구성해서 5주에 1번 방송을 담당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꽤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첫째 주는 기획회의를 하고 아이템을 찾아요. 그럼 서브 작가님이 몇백 통 전화할 걸요. 둘째 주에는 그렇게 섭외가 된 사례자 가정들에 답사를 가게 되죠. 가서 방송이 가능하겠다 싶으면 촬영을 시작하죠. 이렇게 촬영을 시작했다가도 중간에 파토 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다행히 촬영이 끝나면 메모리카드를 백업하고 싱크를 맞춰요. 셋째 주는 PD님이 편집을 시작하시는데, 이때 추가로 촬영을 나기기도 해요. 그리고 넷째 주에는 저는 서브 작가님과 예고편을 만들고, 피디님과 작가님이 편집하신 영상으로 전체 팀 시사를 합니다. 이때 나온 의견들로 수정과 보완을 해서 가 편집본을 만드는 거죠. 다섯째 주는 가편집 끝내놓고 자막 넣고 최종 수정해서 방송 나가는 거죠. 그러면 다시 첫째 주로 돌아가죠. 인터뷰 하는 지금이 넷째 주인데 이틀 동안 밤새서 예고편 만들고, 다섯째 주 넘어가기 전에 잠깐 틈이 있는 날이에요."
 
즐거운 방송일이지만 늘 열악한 환경이다

"주요 방송국에서 계약직들도 그렇지만 특히 외주 제작사 쪽은 정말 열악해요. 대개 조연출 처음 시작할 때 월급을 80만~120만 원에서 시작해요. 계약서도 거의 안 쓰고 4대 보험도 안 들죠. 물론 외주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드물어요. 초봉도 많아 봐야 150만 원 정도일 거예요. 일하는 시간에 비례하면 최저시급도 안 되는 수준이죠. 예전에 선배 PD님께서 20년 전 조연출 할 때 100만 원 받았다고 하셨는데, 제가 외주에 있을 때 120만 원 정도 받았으니 20년 동안 만원 씩 오른 셈이네요."



급여만 열악한 게 아니라 제대로 쉬는 것도 어려웠다. 한별님이 1년 넘게 일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날이 작년 올림픽 때 방송이 쉬면서 이례적으로 있었다고 한다. 만일 정말 쉬고 싶으면 일을 그만두고 쉴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에서 1년 동안 얼마나 일하고 있는지 조사를 해서 결과를 발표했는데 저희 팀의 조연출들이 일하는 시간이 대략 3600시간 정도 나왔어요. 저희 팀은 촬영도 많아서 매일 밤새고 주말도 없거든요. 이렇다 보니 친구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쉴 때 만나는데, 그것도 언제 쉴지 모르니까 '너희들 되는 시간에 만나고 난 일찍 퇴근하면 갈게' 그렇게 해서 만나요. 친구들을 만나도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기도 그래요. 다음날 아침에 또 일찍 촬영하고 일하고 그래야 하니까요. 그래서 집에 가서 가족들과 술 한 잔 하거나 쉬는 편이죠. 사실 아빠는 제가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자주 안 들어와서 이 직종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세요. 그래도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시는 거죠."
 
지난 1월 7일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서 발표한 국가별 1인당 연간 노동시간 결과 한국이 2113시간으로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3위를 기록했고, 독일은 평균 1371시간으로 노동시간이 가장 짧았다. 그런데 방송 업계는 3600시간이라니 독일인 연간 2명이 일하는 시간을 방송 업계 노동자 1명이 다 해치운 거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지만 늘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일상에 박봉이다 보니 일자리는 남아돈다고 한다. 미디어잡 홈페이지나 1000명 정도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PD(조연출)를 구하는 공고가 매일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더 즐겁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힘들 때도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점에서 매일이 즐거워요. 특히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하고 스크롤(방송 제작한 사람들 이름이 자막으로 나오는 것)에 제 이름 올라갈 때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죠. 최근에는 스크롤 올라가는 것에도 무뎌지긴 했지만요. 가끔 그때 기뻐했던 기분을 생각하곤 해요. 요즈음에는 소소하지만 제가 만든 예고편 영상의 반응이 좋을 때 뿌듯하죠.

반대로 힘들었던 점까진 아니고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최근에 저보다 더 큰 개한테 바짓가랑이를 물렸어요. 사람을 물어서 문제가 된 개였는데 (웃음). 훈련하느라 줄을 풀어 놨더니 촬영하던 저를 문 거예요. 저는 촬영도 계속해야 하고, 으악! 하고 반응하면 더 세게 앙 물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어요. 다행이 멍만 살짝 들고 크게 물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모두에게 솔직한 PD가 되고 싶다

"방송이라는 것이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제작자의 의도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럼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피드백도 받을 수 있고요.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 생각을 가장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가 되겠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솔직히 지금 한국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잖아요. 지금이 5공화국 때보다 더 심한 것 같은데 이렇게 언론 탄압이 심하다 보니 방송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도 하늘을 찌르고 있죠. 그렇지만 요즘 시국처럼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다면 조금은 더디더라도 언론의 자유도, 국민의 알 권리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송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도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한낱 조연출이라 뭘 말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마디 한다면 예전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사는 청년들 취재를 한 걸 봤어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막내들조차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었죠. 솔직히 지금은 제가 뭘 바꿀 수 있진 않지만, 그래도 제가 조금 더 성장해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즈음에는, 내 뒤를 이을 후배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꿈을 펼쳐 가라고 말할 수 있게 노력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재현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연재하였습니다.



태그:#조연출,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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