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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 결정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구속된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2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문형표, 박근혜 탄핵심판 증인 출석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 결정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구속된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2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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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1호 구속, 문형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벌써 50일이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27일간 공가(공적 업무수행을 위한 휴가)와 연차를 쓰며, 천만원 가까운 월급까지 수령했다. 2월 1일부터는 결근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연금 사업을 총괄하면서, 545조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의 심의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당연직 위원까지 겸하는 중요한 자리다. 하지만 문형표 피고인은 이미 직무수행이 불가능할뿐더러, 국민연금이 삼성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그가 국민의 노후를 계속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국민이 땀 흘려 모은 국민연금기금을 검은 정경유착에 동원하고, 수천억의 손해까지 입혔으며,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신뢰까지 크게 훼손시켰다.

그럼에도 자진사퇴를 거부하면서, 이사장직을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는 볼모로 삼고 있다. 이미 메르스 사태 때도 경험했지만 무책임의 극치일 뿐 아니라, 양심마저도 유죄다.

문형표를 비호하는 적폐세력

문형표 피고인이 연금공단 이사장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의 고집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법을 무시하고, 이를 비호하는 세력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먼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이미 국민연금법(제36조)에는 "직무에 따른 의무를 위반한 때"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공단에 손실이 생기게 한 때"는 임면권자가 해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가는 논란거리였는데, 이는 주로 임명에 대한 것이다. 심지어 황 권한대행은 탄핵정국에서도 이미 20여명의 공공기관장을 새로 임명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 하에서 공공기관의 경영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경제 및 대국민서비스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더니, 정작 문형표 피고인의 해임 문제는 방조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직무유기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제35조)'에는 "의무와 책임 및 직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이를 게을리 한 경우"에 주무부처의 장이 해임하거나, 임명권자에게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부가 보인 태도는 정반대다.

50일이 넘도록 방치하고 있다. 지난 2월 15일 국회 연금공단 업무보고에서는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이 "문형표 이사장의 해임 건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가 논란이 일자 발언을 철회했다. 이후 복지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22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문 이사장을 특별면담하며 공단 안팎의 여론을 전하고 거취에 대한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문형표 이사장이 사퇴를 표명하기 전에 해임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같다.

국민연금공단 이사회 역시 해임권한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제22조)'나 '국민연금공단 정관(제37조)' 등에 따르면, 이사회는 "기관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사회 의결을 거쳐 주무기관의 장에게 기관장 해임하거나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

연금공단 이사회는 모두 11명으로, 이사장과 공단 상임이사 3명, 그리고 비상임이사 7명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에는 전경련(이승철 부회장)과 경총, 복지부도 비상임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사용자단체와 복지부는 문형표 피고인의 해임을 반대하고 있고, 상임이사들은 복지부 눈치만 보고 있다. 양대노총과 소비자단체 대표가 이사장 해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수적으로 열세다.

황교안 권한대행과 복지부 그리고 공단 이사회의 사용자단체들이 비호하는 것은 문형표 개인이 아니다. 그의 범죄행위가 곧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혐의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즉 여전히 청와대 눈치를 보면서 암묵적으로 묵인하거나, 헌재와 특검에 대한 박근혜 피의자의 공세적 대응에 나름대로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적폐를 청산할 권한을 지닌 이들이 이렇게 적폐행위를 하고 있으니, 문형표 피고인의 '이사장직 버티기'가 가능한 것이다.

문형표 즉각 해임하고, '문형표 방지법' 만들어야

지난 삼성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재무적 손실액보다 더 큰 사회적 손실은 바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된 것이다. 2월 1일 국민연금공단은 '국민과 함께하고 신뢰받는 국민의 연금'을 슬로건으로, '신뢰제고를 위한 실천결의대회'를 가졌다. 고무적이다. 하지만 신뢰를 훼손시킨 공범이 버젓이 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있는데, 이를 진정성 있게 바라볼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이번 일을 진정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면, 잘못된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 첫 단추가 문형표 피고인을 연금공단 이사장에서 해임시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연금공단뿐 아니라, 공공기관에 만연한 권력형 낙하산 인사를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애초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낙하산 인사가 이뤄진 것부터 잘못됐다. 임원선임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를 도입해 철저한 사전 검증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불법 부당한 지시가 가능했던 이유는 공공기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부의 권한과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권력에 의한 정치적 지배'가 아니라, '시민에 의한 사회적 통제' 하에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자율성과 책임성,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부여하되, 이사회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참여를 확대해 상시적인 감시와 견제, 참여와 협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경유착과 관변집회의 창구역할을 하며, 온갖 불법과 비리의 고리역할을 수행한 전경련은 이사회 뿐 아니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비롯한 모든 정부위원회에서 즉각 퇴출시켜야 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연금이다. 국민연금을 "대통령과 삼성의 사적연금"인양 인식하고, 국민연금기금을 '불법적인 정치비자금'으로 전락시킨 적폐세력을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이 나서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재훈 기자는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이자 국민연금지부 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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