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한 얼굴의 피아니스트 김선욱. 음악을 말하기도 전에 음악가의 외모부터 말하는 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가 보여준 '반전'을 부각하려 함이다. 귀티 나는 외모의 이 피아니스트는 마치 회사원 같은 말들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애쓰고 있다"고.

세계를 누비며 연주를 하고 무대 위에서 박수갈채를 받는 '젊은 거장' 김선욱도 자기 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니. 불안해하고 있다니. 그 말을 들었을 때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인간 김선욱'으로 보였다. 그의 피아노가 더 잘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에서 나눈 말들을 전한다.

김선욱은 맨날 베토벤만 친다?

김선욱 피아니스트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선욱은 최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실은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달 18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한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빈체로


김선욱하면 자동반사로 베토벤이 떠오를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는 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자기 모순적이게 들리겠지만 싫으면서도 좋다"고 답했다. 무슨 말일까.

지난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스타덤에 오른 김선욱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첼로 소나타 전곡을 완주했는데, 이 때문에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불리게 된 듯하다. '싫으면서도 좋은' 이유 중 싫은 이유는, 자신은 다양한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데 베토벤만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때문이다. 좋은 이유는, 베토벤에 대한 오랜 천착이 있었던 만큼 베토벤을 '제대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는 걸 인정받은 셈이기 때문.

김선욱은 최근 리스트와 드뷔시 등에 몰두해 있다. 해외 연주를 돌며 베토벤 외에도 드뷔시, 헨델, 바흐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하고 있다. 그는 "매년 다른 프로그램을 한다"고 했는데, 쇼팽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조만간 할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렇듯 김선욱이란 피아니스트가 여러 작곡가를 사랑하고 연주하고 있단 사실과, 여기에 더해 그가 베토벤을 특히 잘 이해하고 있단 또 하나의 사실도 포갤 수 있겠다.

김선욱은 최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실은 앨범을 발매했다. 또 다음 달 18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앨범에 실린 곡들을 연주한다. 왜 또 베토벤이냐고? 그것도 가장 대중적인 선곡으로. 이런 질문에 그의 답은 명료했다. "클리셰를 걷어내기 위해"서. '비창', '월광', '열정' 같이 대중적인 레퍼토리는 워낙 명연주자들의 것이 많으므로 이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 꾸미고 과장하는 연주가 많다는 것. 김선욱은 "그래서 이 곡들을 해보고 싶었다"며 베토벤의 본질적인 가치를 탐구해 있는 그대로의 베토벤을 나누고자 했다.

김선욱 피아니스트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선욱은 최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실은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달 18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한다.

지난 10년 간 베토벤에 천착해온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베토벤 3대 피아노 소나타를 담은 앨범을 발매했다. ⓒ 빈체로


이날 김선욱은 베토벤에 관한 깊이 있는 접근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옆에 놓인 피아노로 이동해 직접 일부를 연주하며 설명했다.

"'월광' 소나타 악보를 보면 페달 기호가 없어요. 베토벤 당시의 피아노와 현대의 피아노가 (기계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연주해야 지저분하게 들리지 않을지 등을 고민해요. 여러 페달을 밟아도 한 페달로 들리는 착각이 들게끔 하는 식으로요. 또, 베토벤이 좋아하고 즐겨 쓰던 모티브들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베토벤의 경우 처음 세 음은 빠르게, 다음은 길게 빼는 패턴을 많이 사용했죠."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도 베토벤은 빠지지 않았다.

"베토벤 소나타가 총 32개 있는데 저는 아직 5개밖에 안 했어요. 27개가 남아있는데 이걸 언제까지 완수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고요, 천천히 할 거예요. 독일, 오스트리아 계열이 아닌 작곡가를 할 것도 같아요. 쇼스타코비치나 드뷔시를 할 수도 있어요. 여러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함 안고 산다... 살아남기 위해 '꾸준함'에 의지

김선욱 피아니스트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선욱은 최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실은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달 18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한다.

이번 앨범은 지난 2015년 11월 발표한 발트슈타인과 함머클라비어 수록반에 이은 김선욱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의 두 번째 음반이다. ⓒ 빈체로


김선욱 피아니스트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선욱은 최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실은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달 18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한다.

▲ 김선욱 피아니스트 이번 앨범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음향을 자랑하는 베를린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2016년 8월에 녹음되었다. ⓒ 빈체로


어릴 땐 신동으로 불렸고, 지금은 '젊은 거장'으로 불리고 있단 말에 그는 "낯 뜨거운 단어"라고 손사래 쳤다. 자신은 영재도, 거장도 아니고 '애매한 위치'라고 했다. 올해 서른이 된 그는 특히 음악가의 나이 면에서 30~40대가 가장 애매하고 불안한 나이 같다고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있고 매년 뛰어난 어린 연주자가 나와요. 하지만 60~70살까지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요. 꾸준히 활동하고 작업해서 60~70대가 되어 결국 그 사람만의 일가를 세우고 합당한 존경을 받는 것, 그게 소위 말하는 거장이죠. 거기까지 가려면 정말 꾸준히 해야 해요.

제가 회사에 다닌 적은 없지만, 이건 회사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한 단계 승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게 과연 맞는 건가?', '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만둬야 하는 걸까?' 등 복합적인 감정이 끊임없이 들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해요. 그래서 더 매일 꾸준히 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김선욱은 '꾸준함'의 가치를 강조했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저도 많은 고민이 있어요. 그럼요, 왜 없겠어요. 갈 길은 멀고 해야 할 레퍼토리는 많고. 음악가는 안정적인 수입과 출퇴근 시간, 주말 이런 게 없잖아요. 장점도 있지만 힘든 점도 많아요. 머릿속에 이 생각밖에 없어요. '꾸준히 살아남자'. 제 지금 화두는 30~40대에도 잘 이겨내는 거예요. 음악가는 특히 불확실성의 연속을 잘 이겨내야 해요. 클래식 공연 특성상 2~3년 후의 연주는 예약이 돼 있지만 4~5년 후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연주하고 다음에 재초청을 받고, 또 재초청을 받고, 그래야 이어지니까요."

그는 "언제 사라질지 몰라서"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산다며 "60살 넘어서까지 계속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큰 존경심이 든다"고 했다. 자신도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매일 3~4시간 피아노 연습을 하는데 이건 어릴 때부터 해온 일이다. 어딘가로 7박 8일쯤 여행 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여행을 가면 피아노 연습실을 찾는다. 전에 하와이에 여행 갔을 때는 하와이 음대에 있는 교수를 찾아 전화로 연습실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연습했다. 밥을 안 먹는 날이 없듯, 연습하지 않는 하루는 없었고 상상도 안 된단다. 그렇지만 뭐 이런 생활에 딱히 불만도 없다. 싫지도 좋지도 않은 '일상'일 뿐이다.

클래식 대중화? 하고 싶은 것 하는 게 중요

김선욱 피아니스트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선욱은 최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실은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달 18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한다.

베토벤 '월광'을 연주하며 곡 해석을 들려주는 김선욱. ⓒ 빈체로


김선욱 피아니스트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선욱은 최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실은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달 18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한다.

김선욱은 10년간 베토벤에 천착해왔다. ⓒ 빈체로


클래식계의 영원한 화두처럼 보이는 '클래식 대중화'에 대한 그의 생각 혹은 계획을 물었다. 그는 소신껏 답했다.

"조심스럽지만…. 저는 그 역할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도 않는데요. 참 어려운 부분 같아요. 제가 하고 싶고 좋아하고 싶은 것만 해도 삶은 짧다고 생각하거든요. 연주자가 확신을 갖고 연주했을 때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연주회에 심심해서 한번 들어보려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호기심에서 공부하고 싶어 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관객들이 연주자인 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들으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거 좋아하시죠? 연주해드릴게요, 이런 것보단 내 색깔을 확실히 만들어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스스로 납득이 가서 청중들에게 보여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최근 리스트 작품에 빠져있다. 리스트의 곡들도 당시에 대중적이진 않았다며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남이 나에게 기대하는 게 뭔가가 아니라,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찾아서 들려드리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협연에 대한 질문에도 소신을 드러냈다. "피아노가 현악기나 관악기와 협연하는 경우는 많아도 피아니스트와 피아니스트가 함께 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음악가는 각자의 에고가 확실하고 색깔이 달라서 맞춰서 협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피아노와의 협연이 그렇다는 거지, 다른 악기와의 협연은 그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올해도 협연을 앞두고 있다. 오는 11월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과 독일 가곡 무대를 선보인다. 브람스,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등의 가곡을 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성악 하는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다른 세계를 봤다"며 "성악가는 컨디션이 좋을 때 음을 길게 끄는 등 변수가 많아서 피아노를 언제 끝내야 할지 눈치도 보게 되고 즉흥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것이 혼자 피아노 치는 것과 또 다른 매력과 재미를 준다며 다가오는 협연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왕립음악원 지휘과 석사라는 이력 때문인지 지휘에 대한 계획을 묻는 말도 이어졌다. 그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재미있게 할 생각은 있지만 지금 현재 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김선욱은 베토벤의 '월광'과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연주했다. 무슨 곡을 들려줄지 잠시 고민하며 "쟤는 베토벤밖에 안 해?" 하시는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도 했다. 하지만 베토벤만 연주하겠다고 해도 말릴 이가 없을 정도로 그의 '월광'은 스페셜리스트다운 연주였다.

김선욱 피아니스트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선욱은 최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을 실은 앨범을 발매했다. 다음달 18일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한다.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김선욱의 독주회는 3월 16일 과천, 17일 인천, 18일 서울에서 펼쳐진다. ⓒ 빈체로



김선욱 피아니스트 베토벤 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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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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