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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대형 롯데마트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마트 내부에는 손님이 없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 '사드 배치'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든 중국 롯데마트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대형 롯데마트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마트 내부에는 손님이 없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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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차오양취 왕징(朝陽區 望京)과 하이덴취 우다코우(海淀区 五道口)는 중국 내 한인 거주 비율 1~2위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그 만큼 많은 수의 한국 기업과 상점이 진출한 곳으로도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실제로 한 집 건너 한 곳이 우리말 간판을 달고 한국 브랜드 제품과 한국 음식 등을 판매해오고 있는데, 위 두 지역에는 최근 고고도 미사일 사드(THAAD) 배치 부지 제공 관련 반한 감정의 표적이 된 대형 롯데 마트와 중소 규모의 롯데 슈퍼가 각각 입점해 있다.

왕징과 하이덴취 등 한국 브랜드가 입점해 지금껏 현지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상점들이 이제는 한국 내 사드 배치가 실행을 거듭할 때마다 악화하는 '반한(反韓)', '혐한(嫌韓)'의 대상으로 전락한 상황을 취재했다.

'매출 신화' 점포가 반한 감정 표적으로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대형 롯데마트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마트 내부에는 손님이 없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 '사드 배치'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든 중국 롯데마트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대형 롯데마트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마트 내부에는 손님이 없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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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롯데마트에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7일 오후 7시, 중국 베이징 왕징 소재의 대형 롯데마트 입구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말로 녹음된 인사말이다. 뒤이어 "니하오, 환잉 니 라이 르티엔..."이라는 중국어 표현이 뒤따른다.

왕징은 중국 내 한국인 거주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지난해 주중 영사관 집계기준 6만여 명의 교민이 등록된 거주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한국어로 된 간판과 각종 한국 브랜드가 입점한 중국 최대 규모의 한인타운으로 꼽힌다.

이곳에 롯데마트가 문을 연 건 지난 2009년. 이후 지점장이 바뀐 지난해 5월 이후 시설 현대화 작업을 통해 각종 한국음식을 즉석에서 조리해 판매하는 등 한국 교민은 물론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이 일대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대형 마트였다. 실제로 해당 지역 마트는 개장 후 지난 8월 처음으로 20만 위안(약 3400만 원)이라는 흑자를 기록하며 중국 내 롯데 마트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곳으로 호평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지점이다.

그런데 최근 고고도 미사일 사드(THAAD) 배치와 관련, 롯데 그룹에서 사드 부지 제공 결정을 확정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곧장 반한 감정의 표적이 된 듯한 분위기다.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대형 롯데마트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마트 내부에는 손님이 없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 '사드 배치'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든 중국 롯데마트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대형 롯데마트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마트 내부에는 손님이 없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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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필자가 찾은 이날 해당 마트는 고급화 전략에 성공하며, 인근에 입점해 운영되는 까르푸(家乐福), 우메이(物美), 월마트(沃尔玛) 등 다국적 대형 마트와 견주어서도 특히 인근 거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는 평소 평가와 달리 매우 한산한 분위기였다.

더욱이 베이징 지하철 14호선 둥후취역(东湖渠站)과 연결되는 왕징 일대의 노른 자리에 위치한 마트 특성상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주민들이 장을 보는 장소로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지하철에서 마트로 연결된 길에는 오가는 이들의 수가 매우 적었다.

이 같은 사정은 마트 내부에 들어서자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특히 평소에는 즉석에서 조리한 한국 음식을 구매하기 위해 음식코너가 고객들로 붐볐지만, 이제는 긴 줄이 사라졌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고객 1~2명이 계산대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전부였다.

더욱이 필자가 마트를 찾은 시간은 직장인이 주로 찾는 퇴근 시간대(19~20시)였다. 평소 퇴근 후 저녁 식사용 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인파가 몰리던 모습과는 달리 매우 한산했다.  입구에서 울리는 "안녕하세요. 롯데마트에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인사말이 무색케하는 장면이었다.

중국인 종업원 "이렇게 한가한 건 근무 후 처음"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대형 롯데마트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마트 내부에는 손님이 없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 '사드 배치'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든 중국 롯데마트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대형 롯데마트가 늦은 저녁 시간까지 불을 켜고 영업 중이다. 마트 내부에는 손님이 없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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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해당 마트 신선 식품부에서 7개월째 근무한다는 중국인 A씨(24)는 "최근처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은 근무 후 처음 겪는 일이다"면서 "평소와 같았으면 퇴근 후 찾는 직장인 고객들로 붐비는 시간대이지만 최근 며칠 사이부터 부쩍 마트를 찾는 고객들의 수가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질문을 그만하라"며 말을 아꼈다.

이날 필자가 해당 마트 입구에서 약 30분 동안 마트를 찾는 손님을 세어본 결과 수백 평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대형 마트에 입장한 손님 수는 40여 명에 불과했다. 사드 부지 제공 업체로 '반(反)롯데' 감정이 확산되고 있는 현지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던 대목이다.

이와 함께 베이징에서 한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것으로 꼽히는 또 다른 지역은 하이덴취 우다코우(五道區) 일대가 있다.

이 일대에도 롯데 그룹이 운영하는 '롯데슈퍼'가 지난 2012년부터 문을 열고 운영 중이다. 필자가 찾은 8일 마트에는 각종 할인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진 모양새다.

베이징 하이덴취 우다코우 인근에서 운영 중인 롯데 슈퍼 내외부 모습. 사드 배치 결정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 베이징에 위치한 롯데 슈퍼 베이징 하이덴취 우다코우 인근에서 운영 중인 롯데 슈퍼 내외부 모습. 사드 배치 결정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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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지난 2012년 매장 오픈에 앞서 롯데 측은 해당 지점 운영 담당자를 유통 경험이 풍부한 중국 현지인을 채용하는 등 파격적인 중국 진출의 포석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곳이다.

반면 이날 필자가 찾은 100여 평 규모의 매장 내부에는 5kg 쌀 한 포대에 29위안(약 4900원), 한국 수입 라면 5개 포장이 19위안(약 3200원) 등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의 할인 행사가 있었지만, 이를 구매하기 위해 마트를 찾은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매장 내에서는 오직 신선식품 코너 2명, 계산대 직원 2명 등 약 10명에 달하는 슈퍼에 고용된 중국인 직원의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200ml 우유 구매 시 하나를 더 주는 '1+1' 행사, 28위안(약 4700원) 이상 구매 시 9.9위안(약 1700원)만 지불하면 18.8위안(약 3200원) 짜리 세탁기 전용 세제를 증정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매장 내부에는 단 한 명의 손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베이징 하이덴취 우다코우 인근에서 운영 중인 롯데 슈퍼 내외부 모습. 사드 배치 결정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 베이징에 위치한 롯데 슈퍼 베이징 하이덴취 우다코우 인근에서 운영 중인 롯데 슈퍼 내외부 모습. 사드 배치 결정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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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하이덴취 우다코우 인근에서 운영 중인 롯데 슈퍼 내외부 모습. 사드 배치 결정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 베이징에 위치한 롯데 슈퍼 베이징 하이덴취 우다코우 인근에서 운영 중인 롯데 슈퍼 내외부 모습. 사드 배치 결정 여파로 손님이 급격히 줄어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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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장은 인근 대형 마트보다 규모는 작지만, 소득 수준이 높고 맞벌이 부부가 많은 공동 주택 밀집 지역에 들어선 탓에 사드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장을 보는 현지 고객들로 붐볐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이날에는 손님 대신 마트 직원들이 잡담을 나누는 것만 목격할 수 있었다.

더욱이 사드 배치 문제와 한국 물건 불매 운동에 대해 묻는 필자의 질문에 대해 해당 마트 직원 중 일부는 "여기서 나가라.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것이냐. 사진 찍은 것은 지워라"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롯데만이 아니다, 한국 브랜드 불매 확산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화리엔 백화점 내부의 한국 브랜드 화장품 '에뛰드' 매장. 평소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지만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 제품 불매 운동 탓에 찾는 손님의 수가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 베이징에 위치한 롯데 슈퍼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화리엔 백화점 내부의 한국 브랜드 화장품 '에뛰드' 매장. 평소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지만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 제품 불매 운동 탓에 찾는 손님의 수가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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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화리엔 백화점 내부의 한국 제과 업체 파리바게트 매장.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 제품 불매 운동 탓에 찾는 손님 수가 크게 줄었다.
▲ 베이징에 위치한 롯데 슈퍼 베이징 차오양취 왕징에 소재한 화리엔 백화점 내부의 한국 제과 업체 파리바게트 매장.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 제품 불매 운동 탓에 찾는 손님 수가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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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드 배치로 인해 깊어진 반한 감정의 골은 비단 롯데 그룹에만 쏠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이징에 소재한 또 다른 대형 백화점 내에 입점한 각종 한국 브랜드 상점에도 중국 내 불고 있는 반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 보였다.

8일 찾은 왕징 소재 백화점 화롄(華聯)의 한국 브랜드 화장품 매장에는 2~3명의 손님이 매장 내부를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고, 손님 수보다 많은 중국인 직원이 한산한 매장을 지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한국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하며 큰 인기를 얻었던 인근의 또 다른 한국 제과 브랜드 상점 역시 손님이 줄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각에서는 온오프라인으로 부는 '반한', '혐한' 운동이 최근 한국 제품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이 불매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애국'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국어 강사 S씨(37세, 중국인)는 "한국에서 유학 후 중국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는, 일명 '친한파'로 분류됐던 중국인 지인들조차 한국 제품을 선호하거나 구매하는 것이 일반에 알려지면 '매국자'로 낙인 찍힐까봐 '혐한'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롯데 브랜드 제품은 구매하지도 팔지도 않을 것', '중국의 국방을 위협하기 위해 손잡은 한국과 미국의 행동에 반대한다'는 글이 오성홍기와 함께 '애국'이라는 문구로 포장돼 공유되고  있다.

또 같은 날 중국 최대 SNS 웨이보(微博) 1위 검색어를 기록한 단어로는 '사드 반대', '한국 사드 배치'였다.

불안한 교민들 "우리말 쓰지 말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달 초 주중 영사관 측은 중국 내 교민과 여행자 등의 신변안전을 주의하는 경고문을 공고, 중국인이 많은 장소 방문을 자제할 것과 중국인과 사드 배치 관련 논쟁을 벌이지 말 것 등을 수차례 발표했다.

주중 교민들이 주로 찾는 온라인 교류 사이트에서도 '길거리에서 우리말로 대화하지 말고 중국인으로 보일 수 있게 조심하겠다',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할 것이다'는 글이 게재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교민들이 자체적으로 자신의 신변 안전을 도모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비관적 상황이다. 향후 사드 배치와 관련한 현안이 단계를 거듭할 때마다 주중 교민들의 신변과 생계 활동에 대한 위험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태그:#사드, #중국, #롯데, #사드_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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