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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민 예산사과와인 부사장
 정제민 예산사과와인 부사장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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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 예산사과와인① 와인축제, 조용하고 은밀하게 열고 싶은 이유

예산사과와인의 정식 이름은 농업회사법인 예산사과와인주식회사. 이 회사를 설립한 사람은 정제민 부사장이다. 그는 와인에 푹 빠져 '나만의 와인'을 만들고 싶었단다. 그래서 장인의 사과농장이 있는 예산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 부사장은 어떻게 와인에 푹 빠지게 되었을까? 언제 와인을 처음 만났을까? 궁금해진다. 그의 와인 인생이야기는 너무나 흥미진진해 직접 듣는 게 가장 재미있지만, 그래도 풀어보련다.

정 부사장이 와인을 만난 곳은 캐나다였다. 대학 졸업 뒤,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그의 표현을 빌자면 억지로 끌려갔단다. 가족이 가니 어쩔 수 없이 같이 갔다는 얘기인데, 그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 와인이 그의 삶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서양에서 와인을 식품으로 분류하는 이유

"하루는 식구들이 누나네 집에 모여서 김장을 담갔어요. 그런데 이웃집에도 가족들이 모여서 뭔가를 담그더라고요. 뭔가 봤더니 와인이었어요."

우리네 식탁에서 김치가 빠지지 않듯이 서양 사람들의 식탁에서는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김치를 먹듯이 서양 사람들은 와인을 마신다. 우리가 김장을 할 때, 그들은 와인을 담근다. 서양에서 와인을 음료가 아닌 식품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정제민 부사장이 추사 블루베리 와인을 보고 있다.
 정제민 부사장이 추사 블루베리 와인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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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 정 부사장은 와인이 생활 깊숙이 파고든 캐나다 문화를 접하면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캐나다 사람들이 집에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먹는 문화가 굉장히 오래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동네마다 세탁소가 있고 떡집이 있는 것처럼 그 나라에는 '홈 메이드 와인 숍'이 있어요. 개인에게 와인을 만드는 공간을 빌려주고 와인 만드는 도구와 재료를 빌려주는 곳이죠. 캐나다에도 술을 만들어 팔려면 주류제조면허가 있어야 하는데, 개인이 파는 게 아니라 먹으려고 와인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거든요.

가게에는 생포도가 아니라 포도농축액을 나라별로, 품종별로 진열해놨어요. 카베르네 쇼비뇽, 피노 누아 이런 식으로. 그 중 하나를 선택해 발효통에 넣는 건데, 농축된 거는 물을 좀 타고 정해진 대로 이스트(효모) 털어 넣고 뚜껑을 닫는 거죠. 석 달 뒤에 가서 병에 담아서 가져가면 됩니다."

그가 와인 제조에 관심을 갖고 와인을 직접 만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캐나다였으니까. 그는 캐나다에서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사업을 찾다가 유학과 이민을 알선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때 사무실 한쪽에 '와인공방'을 만들었는데, 사무실의 90%를 차지했다나. 염불보다 잿밥이라더니, 그가 딱 그랬다. 이때 이미 그는 와인에 푹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적성에 맞지 않는 사업을 접고, 그는 '나만의 와인' 만들기에 도전한다. 그도 처음에는 포도와인을 생각했다. 포도와인이 대세므로. 그런데 그에게는 포도가 없었다. 포도재배를 할까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

예산사과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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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장인 서정학 대표가 운영하는 사과농장 은성농원이었다. 그는 사과와인을 만들기 위해 서울살이를 접고 가족과 함께 예산으로 내려간다.

주류면허는 2008년에 냈지만 지금의 와이너리 건물의 '뼈대'를 세운 건 2010년이었다. 처음부터 자본이 넉넉했다면 한꺼번에 건물을 완성했겠지만, 있는 돈을 전부 털어서 일단 땅을 확보하고 건물 뼈대부터 세웠단다. 몇 해에 걸쳐 내부를 하나씩 채워 넣었다.

"건물 내부는 나중에 얼마든지 리모델링이 가능하지만 뼈대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뼈대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와이너리를 시작하면서 내세운 원칙은 "술 공장하지 말고 와이너리 하자"는 것이었다.

"제가 외국 와이너리들을 가보니 포도밭 언덕 위에 예쁘게 집 지어놓고 체험과 관광을 결합하고 있더라고요. 그것을 경쟁력으로 와인을 유통하고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서 술 만드는 곳을 가서 보니 완전히 공장이야. 현장을 보고 나면 오히려 사먹고 싶어지지 않는 그런 환경이었죠. 그래서 나는 절대로 술 공장하지 말고 와이너리 하자고 결심했던 거죠."

예산사과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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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사과밭 앞에 와이너리 건물을 예쁘게 지어서 체험과 관광을 결합시켰던 것이다. 외국에서는 와이너리 대부분 하고 있어 전혀 새롭지 않지만, 와인산업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포도원과 와이너리, 체험장이 한 곳에 있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 현실적으로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한꺼번에 지을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정욱 소믈리에 역시 그 점을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와인을 만들고 싶었을까?

"제가 롤 모델로 삼은 사과와인이 있어요. 캐나다 퀘벡에서 생산되는 피너클 애플 아이스와인이죠. 세계에서 유일한 애플 아이스와인입니다. 거기는 기후조건이 되거든요. 11월이면 사과가 얼어버리니까."

애플 아이스와인이란 자연 상태에서 언 사과를 원료로 와인을 만든 것을 말한다. 포도 아이스와인 역시 마찬가지다. 언 포도를 수확한 뒤 착즙해 발효시켜 와인을 만든다. 이와 구별해 인위적으로 사과나 포도를 얼려 만든 와인은 아이스와인이 아닌 아이스와인 스타일이라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아이스와인과 아이스와인 스타일을 엄격하게 구분하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단다. 아이스와인 스타일도 아이스와인 범주에 넣는다는 것이다. 추사 사과와인은 아이스와인 스타일이다.

예산사과와인에서는 애플 아이스와인 스위트와 블루베리 와인 스위트를 주력상품으로 생산한다. 정 부사장은 와인 외에도 사과와인을 증류,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브랜디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3년 숙성한 사과 브랜디가 조만간 시판될 예정이다. 종류는 35도, 40도, 45도 3가지다. 사과로 만든 브랜디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생산지 이름을 따 칼바도스라고도 부른다. 포도 증류주 브랜디를 대표적인 생산지 이름을 붙여서 코냑으로 부르는 것처럼.

예산사과와인 페스티벌
 예산사과와인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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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사과와인축제
 예산사과와인축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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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산사과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산사과와인축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어떻게 축제를 열 게 되었을까?

와인공방을 운영하면서 '와인동호회'를 구성, 재미삼아 와인을 만들던 정 부사장은 와인축제를 열고 싶었다. 축제가 별 건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와인을 마시면서 즐기는 거지. 기왕이면 사과를 수확하는 계절에 사과밭에서. 출발은 단순했다.

잘 아는 바비큐 동호회, 캠핑 동호회 사람들을 불렀다. 와인동호회 사람들은 각자 만든 와인을 들고 오라고 하고. 이 동호회 사람들 가운데 음악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공연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200여 명이 사과밭으로 몰려들어 사과밭 앞 잔디밭에서 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시면서 음악 공연을 신나게 즐겼단다.

이렇게 시작된 와인축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렸고, 2010년에 지금의 '예산사과와인 페스티벌' 틀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한 번에 판을 크게 벌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예산사과와인축제'로 키워나간 것이다. 이 축제 특징은 외국인들도 많이 참여, 신나게 즐긴다는 것.

"외국친구들이 많이 오니까 외국 밴드를 불러요. 커뮤니티에서 소개시켜 줬는데, 3년째 오고 있어요. 자기네들도 즐거우니까 술 한 잔 마시면서 노는 거죠. 우리는 전통술이 아니니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된 거죠."

☞이어지는 기사 : 예산사과와인③ 5년 동안 적자, 그래도 와인사업 계속하는 이유


태그:#예산사과와인, #정제민, #최정욱, #추사, #와인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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