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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용무도(昏庸無道)한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새해를 맞아 나는 인권 활동가들의 건투를 빌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NO'를 외치는 사람들

2000년대 초반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한 증권사의 CF 광고가 있었다. 아직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지 않고 '웰빙'이 유행했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한 개인이 다수자에 맞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명 '노맨'이 되라는 그 광고가 불편했다.

현재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평등을 위해 she/he 대신 성중립대명사 Ze/Xe를 사용하자는 '성중립 언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그녀뿐만 아니라 OO맨, XX녀 등 특정한 성을 지칭하는 단어엔 성차별적 요소가 내제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듯, 여전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향한 직간접적인 차별과 혐오는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

내가 만난 인권활동가들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인권 침해에 문제를 제기하며 다수를 향해, 권력과 자본을 향해 'NO'를 외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밤 10시 드라마를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소득 소비자의 삶, 고강도 노동자의 삶

8년차 인권활동가 소득을 환산해도 최저시급도 안 된다.
▲ 저소득 소비자의 삶, 고강도 노동자의 삶 8년차 인권활동가 소득을 환산해도 최저시급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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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침해자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권활동가들의 인권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2015> 연구조사는 약 8년 정도의 시간을 인권활동가로 지내온 30대 중반의 활동가들이 그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에 못 미치는 107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바야흐로 숨만 쉬어도 비용이 지출되는 사회. 모든 것이 자본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비영리를 추구하는 NGO는 풀뿌리 후원금으로 단체를 운영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하는 인권단체 대부분은 1~2명의 상임활동가 또는 비상임 활동가들로 운영되고 있다.

"또래만큼의 지출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벼룩시장 할인 또는 소비 없는 삶 등으로 지출을 피하죠."

척박한 환경에서 인권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경제적 급부를 기대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에서 포기를 각오한다. 하지만 <인권활동가 실태조사> 설문 응답자의 73% 이상이 안정적 수입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이 수치는 경제적인 안정이 활동에 전념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저임금 수준도 못 미치는 활동비를 받고도 활동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동수저쯤 돼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에너지 소진으로 인권 활동을 포기하는 것을 그저 개인의 문제로 보면 안 된다. 한 사람의 어깨에 너무 큰 짐을 얹는 것이다. 공익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인권

"한국은 경제로는 '수'를 받으면서도 삶의 질이나 인권 현실은 우·미·양 사이를 헤매고 있는 극히 모순적인 사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경제 논리가 더욱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인권 논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오디세이』(교양인) 중 「대한민국 인권 지수」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은 인권의 제도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내가 다른 이에게 오늘 하루 존중받으며 보냈는가 물어본다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것이 한국 현주소다.

보릿고개를 넘기신 나의 부모님세대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지상과제였다면 비교적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린 청년세대인 나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인권공화국을 꿈꾼다.

한 인권활동가는 토론회 자리에서 청중에게 "인권운동은 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이 아니냐"고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이의 말처럼, 나는 신체의 장기 중 유일하게 '마음이 담겨있는 내장'인 이 심장(心腸)에 인권의 첫 걸음인 인권감수성이 있다 믿는다. 인권이 마음과 마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결고리가 지금보다 더 넓고 단단해질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오늘, 바꿈 홈페이지에 중복 게재됩니다



태그:#노동, #인권, #활동가, #NGO,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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