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꼬마, 한화 팬 되다

2005년, 내가 13살 때였다. 당시 우리 집에 케이블이 달려 많은 채널을 볼 수 있었다. 그전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던 나는 스포츠 채널을 자주 봤다. 당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던 박지성, 남자들의 로망 프로레슬링까지 다양한 스포츠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야구를 보게 됐다. 야구는 거의 매일 경기를 하기 때문에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온 나는 자연스레 야구를 보게 됐다.

그전까지 축구만 좋아했던 나는 야구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계속 보다 보니 야구에 빠져들게 됐고 좋아하는 팀도 생겼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화이글스를 응원하게 됐다. 아무래도 내가 충청도에 살기 때문에 대전을 연고지로 두고 있는 한화에게 팬심이 생겼다.

 첫 유니폼이자 마킹의 주인공은 괴물 류현진이다.

첫 유니폼이자 마킹의 주인공은 괴물 류현진이다. ⓒ 이상민


당시에는 한화가 강팀이었기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됐다. 당시 한화의 멤버를 살펴보면 KBO 전설로 남아있는 송진우와 정민철, 그리고 2006년 혜성처럼 등장한 괴물 신인 류현진까지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했었다. 팀 성적도 괜찮았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2006년에는 페넌트레이스 2위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한화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줄곧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암흑기의 시작이었다.

의도치 않은 보살 입문

9년의 암흑기 동안 한화 팬들에게는 별명이 생겼다. 바로 '보살'이다. 보살은 '누가 봐도 분노할 상황인데 그것을 참아낸다'라는 뜻으로, 울화통이 터지는 한화의 경기를 보면서도 한화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붙은 별명이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한화는 어이없는 실수와 웃픈 플레이를 연발하며 최하위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팬들은 계속해서 한화를 응원했다. 2010년대부터는 성적에 관계없이 오히려 관중 수가 증가하기도 했다.

한화 팬인 나도 어느새 보살이 돼 있었다. 누군가 어느 팀을 응원하냐고 물어봤을 때 한화라고 대답하면 백이면 백 돌아오는 말이 있다. "힘내라", "아이고 어떻게 하냐", "왜?", "보살이네"라는 대답들이다. 이럴 땐 난 그저 웃고 말았다. 충분히 그럴 만하니까...

심지어 남자를 만나려면 한화 팬을 만나야 된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어떠한 일에도 화내지 않고 묵묵한 그런 남자 말이다. 언론에서도 한화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한화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왜 이런 팀이 좋냐", "이게 팀이냐"는 댓글들이 달렸지만 정말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명장들을 영입하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설레발만 늘었다.

명장들을 영입하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설레발만 늘었다. ⓒ 이상민


암흑기를 담담히 받아들였던 나는 김응용 감독이 부임한 2012년부터 기대를 갖고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김응용 감독 부임과 함께 한화가 FA시장에서 통 큰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시작으로 국가대표 테이블 세터 이용규-정근우,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배영수 등 이름 있는 선수들을 여럿 영입했다. 하지만 성적은 제자리였다.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 나의 설레발은 더 커져갔다. 주위 사람에게 "이번에는 정말 한화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하고 다녔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면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서 만세삼창을 한다는 공약도 걸었다. 하지만 다 부질없었다. 가장 기대가 컸던 지난해 한화는 전년도보다 한 단계 내려간 7위를 기록했다. 덕분에 나의 보살생활은 더 길어지게 됐다.

그래도, 앞으로도 영원한 한화 팬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가운데)과 이태양(왼쪽)과 이용규가 인사하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가운데)과 이태양(왼쪽)과 이용규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메이저리그 팀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등극했다. 이 과정에서 시카고 컵스의 할머니 팬이 화제가 됐는데 이 할머니는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정상 등극을 지켜본 뒤 6일 만에 사망했다. 할머니는 1908년 생으로 갓난아기 때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경험했고 사망하기 6일 전 또 한 번 우승을 지켜보고 생을 마감했다. 무려 108년의 기다림이었다.

이것만 보면 우승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한화는 아직 '새발의 피'라는 생각도 해본다. 암흑기에 들어선 지도 이제 9년이 됐을 뿐이다. 나도 한화 경기를 보면서 울화통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이러다 화병이 걸리진 않을까 생각하며 팀을 옮길까 생각해봤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음으로는 한화를 응원하고 있었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팀을 내가 왜 좋아하는지... 그래도 한화를 응원하며 지내온 12년간 나는 야구 팬으로, 한화 팬으로 야구라는 종목에 관심을 갖게 됐고 야구 기자라는 꿈도 갖게 됐다.

여전히 난 한화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어김없이 한화를 응원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끝을 맺으면서 올해도 설레발을 쳐본다. 올해 한화는 포스트 시즌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내안의 덕후 공모작
한화이글스 암흑기 그래도 떠나지 않을거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