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홍길동(윤균상 분).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홍길동(윤균상 분). ⓒ MBC


그간의 홍길동 드라마들에 비해 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 갖는 특색이 있다. 그것은 소설 속 홍길동과 실록 속 홍길동을 절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초반엔 실록 속 홍길동을 보여주려는 듯하다가, 중반부터는 소설 속 홍길동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나온 홍길동 드라마들은 허균(1569~1618년)이 지은 <홍길동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재상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호부호형할 수 없는 얼자(노비 첩의 아들)인 홍길동이 도술을 부리는 의적이 되어 사찰과 관청의 재물을 빼앗은 뒤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홍길동 드라마들의 줄거리였다.

그에 비해 드라마 <역적>은 첫 회에서부터 홍길동(윤균상 분)의 정체성을 혁명가로 설정했다. 이것은 <연산군일기>나 <중종실록> 같은 조선왕조실록과 일치하는 설정이다. 똑같은 조선왕조실록이면서도 <연산군일기>는 '일기'로 끝나고 <중종실록>은 '실록'으로 끝나는 것은, 1506년에 연산군이 이복동생인 중종의 쿠데타로 정권을 잃은 뒤 왕자급인 군(君)으로 격하됐기 때문이다. 다른 실록과 구분할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실제 홍길동은 혁명가

음력으로 연산군 6년 12월 29일자(양력 1501년 1월 18일자)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홍길동은 지방 유지들의 지원 하에 관복을 입고 관직을 사칭하며, 군대를 거느리고 관청을 습격하는 인물이었다.

홍길동이 그렇게 한 것은 관청 창고를 털어 빈민층에 나눠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방을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조선왕조에 대항할 목적이었다. 마음대로 관복을 지어 입고 자기가 자신에게 관직을 부여했다는 것은 그가 조선왕조의 관직 체계를 무시했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그가 조선왕조의 권위를 부정하는 반체제 지도자였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혁명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연산군일기>에서는 홍길동을 강도로 표현했다. 이를 근거로 그를 의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도에는 폭행·협박으로 남의 물건을 빼앗는 사람뿐 아니라 남의 정권을 강제로 빼앗으려 하는 사람도 포함됐다. 이렇게, 정치범을 비하할 목적으로 강도로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독립운동 혐의로 1911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백범 김구가 '국사(國事) 강도범'으로 불렸다는 <백범일지> 기록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홍길동 역시 그런 강도범, 즉 정치범이자 혁명가였던 것이다.

홍길동의 파괴력은, 그가 체포된 지 13년이 지난 1513년까지도 충청도에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는 중종 8년 8월 29일자(1513년 9월 27일자) <중종실록>에서도 확인된다. 홍길동의 군사반란 때문에 농토를 버리고 도망한 농민들이 많아서 13년이 지나도록 조세 징수가 힘들었다는 게 <중종실록>의 기록이다. 이처럼 홍길동은 비록 실패했지만 꽤 파괴력 있는 혁명가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일기>.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역적> 첫 회는 드라마 속 홍길동이 그런 혁명가의 길을 가게 될 것임을 예고했다. 홍길동과 연산군의 대화를 통해, 홍길동이 조선왕조의 부조리에 불만을 품고 거병하는 혁명가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를 위해 이 드라마는 홍길동의 아버지를 아모개(김상중 분)라는 노비로 설정했다. 드라마 속 홍길동은 그런 노비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주인집의 갑질과 착취를 목격했다. 그런 속에서 홍길동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을 키웠다. 이런 저항의식이 결국 조선왕조에 맞서는 혁명으로 귀결된다는 게 드라마의 설정이다.

물론 홍길동의 아버지가 노비였다는 설정은 소설 <홍길동전>이나 역사기록과는 무관하다. 소설 속의 홍길동 아버지는 세종시대의 재상이다. 실제의 홍길동 아버지도 비슷했다. 조선 전기에 나온 <세종실록>이나 일제강점기 때 나온 <만성대동보>라는 족보의 남양 홍씨 편에 따르면, 홍길동의 아버지 홍상직은 장관급(정2품)은 아니지만 국장급인 정3품까지 오른 고위층 인사였다.

그 홍상직한테 홍길동은 얼자였다. 서자(자유인 첩의 아들)가 아니라 노비 첩의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역적>에서 홍길동을 혁명가로 설정한 것은 역사기록과 일치하지만, 그를 노비 아버지의 아들로 설정한 것은 역사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역적> 홍길동은 의적인듯 혁명가인듯

 <홍길동전>.

<홍길동전>.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그런데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갑자기 <역적>은 혁명가 홍길동보다는 의적 홍길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드라마 중반 이후의 홍길동은 동지들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못된 양반들의 갑질 행위를 응징하는가 하면, 가끔은 그들의 재물을 빼앗아 서민들한테 나눠주기도 한다.

4월 3일과 4일에 방영된 제19회 및 제20회에서는 홍길동이 변방에 침입한 오랑캐들을 격퇴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적이 침투했는데도 현지 관청이 백성들을 보호하지 않자, 홍길동과 동지들이 대신 나서서 격퇴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방영분에서 홍길동은 온갖 좋은 일은 다 하고 다니고 있다. 중반 이후의 <역적>에 나오는 홍길동은 실록과 소설이 뒤섞여있다. 

의적과 혁명가는 세상에 대해 반항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마인드의 차이가 있다. 의적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시대가 생각하는 의(義) 관념에 스스로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혁명가는 자기 시대의 '의' 관념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의 체계를 수립하려는 사람이다.

물론 혁명가도 재원을 마련할 목적으로 관청이나 부유층의 돈을 빼앗을 수 있고, 그런 재물을 민중의 지지를 받을 목적으로 사람들한테 나눠줄 수 있다. 하지만, 의적한테는 그런 활동이 '주업'이지만, 혁명가한테는 '부업'에 불과하다. 의적한테는 목적이지만, 혁명한테는 수단·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가가 되려는 사람은 의적 활동으로 인해 자신의 목표와 조직이 사전에 노출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의적이 혁명가로 전환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드라마 작가는 자기 작품 속에서 전능한 존재이므로 그런 일도 어렵지 않게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 회의 예고대로 <역적>은 홍길동이 혁명가의 길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의적과 혁명가 사이를 오가는 <역적> 속 홍길동의 모습은 대한민국 사회의 크고 작은 부조리를 부각시키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홍길동의 활약상을 통해 조선시대의 부조리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부조리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관청의 방치로 인해 위험에 빠진 변경 백성들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구하는 홍길동의 모습은, 각종 재난과 경제위기로부터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을 풍자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의적의 눈에 포착되는 사회 부조리와 혁명가의 눈에 포착되는 사회 부조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의적과 혁명가 사이를 오가는 드라마 속 홍길동의 활약상을 통해, 의적의 눈과 혁명가의 눈에 각각 포착되는 갖가지 종류의 부조리가 좀더 많이 고발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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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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