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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 풍자 그라피티 건으로 받은 벌금 30만원이 밀려 통장이 압류되고 지명수배자가 되어서 노역장에 다녀왔다(관련기사 : 박근혜 풍자 그라피티 그린 나, 법정에 서다). 작년에는 집시법 위반으로, 올해는 그라피티 건으로 교도소에서 수용생활을 했다. '생활'이라고 하기엔 짧은 이틀, 삼일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반 죄수들과 방을 쓰기도 했고, 독방을 쓰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드러나지 않으면 신비화되고, 대상화되고, 배제되기 쉽다. 교도소와 재소자가 그런 공간 중 하나다. 가려진 것,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기 위해 기록한다.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다.

교도소에서 목격한 것들을 세세히 기록할 거지만, 어떤 지역의 교도소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작년 11월에 다녀온 여자교도소, 이번 4월에 다녀온 여자교도소와 관련된 기록을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 기자 말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는 미물처럼 작다.
▲ 분홍색 여자수용소 이곳에서 나는 미물처럼 작다.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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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경찰서를 방문했다가 몇 개월 전부터 벌금 때문에 지명수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베 등에서 나를 모욕한 댓글과 게시글을 고소하려고 조서 작성차 경찰서에 갔던 것이다. 벌금은 20만 원. 2015년 4월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여했다가 체증을 당해서 연행된 후 받은 벌금이다. 집회시위에 관한 벌금 위반.

경찰은 조서를 작성하면서, 가족에게 연락해서 벌금을 내라고 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하면서. 가족에게 연락해서 돈을 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벌금을 내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게다가 20만 원이면 내 한 달 원고료인데!. 경찰 조사가 끝난 후 노역장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경찰은 검찰청 벌금 납부과까지 나를 데리고 가서 노역장에 들어갈 사람이라고 말했다. 몇 분 대기 후, 검찰청 직원 두 명의 차를 타고 교도소로 이동했다.

노역장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일반 징역수들과 다른 건물에서 노역수들끼리 노역을 한다고 들었기에, 별 걱정 없이 교도소 대문 앞에 섰다. 몇 개의 대문과 몇 개의 철문을 지나, 주민등록증을 대조하고 지문을 찍는 사무실에 들어갔다. 여자교도소에서 온 것 같은 여성 교도관이 들어왔다.

그녀에게 물어봤다. "노역자는 일반 교도소 건물과 다른 곳에 있나요?" 그녀가 내 얘기를 못들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대꾸를 하지 않는건지 대답이 없다. 곧이어 교도소 소장으로 보이는 배 나온 아저씨가 들어와 내 앞에 섰다. 책상을 양 손 끝으로 짚으며, 아주 큰 소리로 물어본다. "여기 왜 왔어요?!" 목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랐다. "노역하러요." "주민번호 대봐요!" "이름!" 큰 목소리에 놀라며 대답하던 중 깨달았다.

'여자교도관이 내 말에 대꾸를 하지 않은 것도, 교도관 소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큰 소리로 호통 치듯 말을 거는 것도 이곳이 교도소이며, 여기서 반항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 초반에 기를 죽여 놓기 위해서구나.'

분홍색 여자교도소

여자교도소로 이동했다. 밤이었지만 선명하게 보였다. 남자교도소는 연한 파란색 대문, 여자교도소는 분홍색 대문이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 대문은 내 키에 4배는 커보였다. 카프카의 '법 앞에서'가 떠올랐다. 이곳에서 나는 개미만큼 작고, 아무것도 아니다.

여성수용소 대문이 열리자, 멀지 않은 거리에 수용소 건물이 보였다. 1층짜리 건물은 얼핏 유치원 같기도, 원숭이를 수용하는 동물원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담한 분홍색 벽과 지붕 밑으로 "맑은 얼굴 바른 생각"이라고 쓴 간판이 붙어있다. 가까이 가자 흰색 창틀마다 굵고 녹슨 쇠창살이 보였다. '교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 여느 사람들이 감옥을 학교라고 부르는 것은 알맞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건물이 떠올랐다.

사회 질서를 위해 사람들을 수용하고, 교육하고, 교화하는 건물. 나는 그런 학교 건물이 답답해서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검정고시를 봤다. 그런 내가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이틀이니까, 조금만 참자고 생각했다. 여자교도관은 내 왼쪽 팔을 잡고 '맑은 얼굴, 바른 생각' 안으로 데리고 갔다.

"다리 꼬지 마."

11월 중순, 추운 밤공기가 건물 안에 그대로 스며들어있었다. 건물에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교도관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로 들어가 교도관이 안내해주는 대로 책상 앞에 비치된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았다. 사무실에는 두 명의 교도관이 있었다. 한 명은 나를 데려온 여자교도관, 한 명은 그곳을 관리하는 것 같은 여자교도관.

교도관이 내 옆에 앉아 인적사항을 묻기 시작한다.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최종 학력과 가족관계, 부모님의 이름과 직업과 나이, 형제자매의 이름과 직업과 나이, 몸에 상처는 없는지, 건강은 어떤지, 문신을 한 곳이 있는지, 가지고 들어온 돈은 없는지... 질문에 대답하는 나의 말을 빼곡하게 서류에 작성했다. 돈과 카드는 따로 보관하고, 보관한 봉투 모서리마다 지문을 찍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서류상의 질문을 제외하고 나의 사건기록을 보면서 내게 물었다. "벌금 20만 원인데. 그냥 내지 왜 들어온 거예요?, 아아. 집회를 한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들어온 거군요"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다리를 꼬고 있는 나에게 또다른 교도관이 허벅지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다리꼬지 마." 반말, 게다가 다리를 꼬는 것도 하지 말라니. 교도소는 원래 이런 곳이구나. 다리도 마음대로 꼴 수 없는 곳. 욱해서 그녀에게 그렇게까지 해야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에게 따라주는 게 여러모로 편안할 거라 생각했다. 오른쪽 다리를 내리고 대신 소심한 반항의 의미로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있었다.

한 교도관이 말했다. "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귀찮게 왜 여기 오는 거야, 20만 원이면 하루 10만 원씩 해서 내일 새벽에 나가겠고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하고 있는 귀걸이나 팔찌 같은 거 다 빼."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목걸이, 팔찌와 반지를 뺐다. 인도에서부터 차고 온, 한 번 빼면 다시는 차지 못하는 팔찌와 피어싱도 뺐다. 투명한 유리로 된 방에 들어가 블라인드를 치고 말했다. "여기서 사진 찍을 거야. 앞으로 서고, 옆으로도 한 번 서고." 얼굴 사진이 찍혔다. "잠깐 기다려봐, 옷 벗고 있어." "속옷도요?" "어. 속옷도. 몸에 상처 있는지 다 확인해 봐야 돼."

내 알몸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검사를 한다고?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미리 좀 알고 올 걸. "저 상처 없는데요." "그래도 해야 돼." 곧이어 교도관이 커다란 군복색 자루를 들고 내 앞에 내밀었다. 이걸로 다 갈아입어." 나는 속옷까지 벗고 교도관 앞에서 알몸으로 오른쪽으로 한 바퀴, 왼쪽으로 한바퀴를 돌았다. 자루 안에 있는 회색 양말, 하늘색 팬티, 하늘색 메리아스, 하늘색 내복과 푸른 소다색 교도복을 입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흰색 고무신을 신자, 교도관이 "따라와"라고 말했다.

"머리가 왜 이리 치렁치렁하니. 머리 좀 묶고"라며 머리끈, 아니 노란색 고무줄을 던지다시피 건네주었다. "머리가 왜 이리 치렁치렁하니"라는 말, 13년 전, 중학교 복도에서 지나가던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다. 그 선생님은 가던 길을 돌아와 내 오른쪽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들고 있던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낸 후 내게 말했었다.

"이만큼 다른 쪽도 잘라와. 머리가 왜 이리 치렁치렁해."

교도관이 건네준 노란색 고무줄로 머리를 묶는 동안 거울을 보는데, 눈 밑에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것 같다. 분명히 물리적으로 맞은 적은 없는데, 여기저기를 두드려 맞은 느낌이다. 아아. 교도소는 이런 곳이구나. 나는 인간동물이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비인간 동물, 원숭이가 된 것 같다. 이제 곧 철장에 들어가 그들의 명령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야겠지. 그러고 보니 동물원과 학교와 군대, 교도소는 비슷하다.

사회의 '정상인'보다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존재를 교화하고 훈육하고 훈련하기 위해 가두어놓고 밥을 주고 기존질서를 지키는 방법, 순응하는 방법, 순종하고 굴종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물론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 아니지만, 내가 겪어온 학교는 교육이 아니라 훈육하는 곳이었다. 아, 사람마다 질서가 다르게 적용되는 것도 비슷하다. 언젠가 어떤 재벌이 천문학적인 벌금 때문에 노역장에 들어왔는데, 그의 일당은 5억 원이었다. 논란이 일자 대법원은 노역형 일당을 1000만 원 안팎으로 맞췄다. 이 사회와 국가라는 체제가 그렇듯, 이 교도소도 모두 역할극을 하고 있다.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 인간들끼리 관리자와 대표자와 수용자라고 이름붙이고 열심히 몰입해서 행위 하는 역할극.

내가 입소절차를 거쳐 입소를 완료한 시간은 밤 11시, 출소할 시간은 몇 시간 후인 새벽 5시께다. 하루 잠만 자고 가면 된다. 그래, 조금만 참자, 하는 심정으로 교도관의 안내를 기다렸다. "이리 나와." 교도관이 사무실을 나와 방으로 안내했다. 긴 복도 왼쪽에는 독거방(혼자 쓰는 방)들이, 오른쪽에는 혼방(여럿이 쓰는 방)들이 있었다. 1반, 2반, 3반, 하늘색 철장 문이 열렸다. 내가 있을 곳은 7번 독거방이다. 투명한 리빙박스와 그 위에 군용 담요처럼 보이는 하늘색 담요과 건강베개 같아 보이는 스펀지 베개를 주었다. 두 손으로 그것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죄수번호 49번

맑은 얼굴, 바른 생각.
▲ '맑은얼굴 바른생각' 맑은 얼굴, 바른 생각.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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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이 오더니 개구멍만 한 통로로 저녁 안 먹었으니 먹으라며 도시락 통을 주었다. 도시락 통에는 콩밥과 김치찌개가 들어있다. 콩밥, 정말 교도소에는 콩밥이 있다. 채식을 하는 나는 콩을 유난히 좋아한다. 오랜만에 보는 콩밥을 맛있게 먹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도시락 통을 깨끗히 비운 후 한쪽 구석에 밀어넣고, 교도관이 준 리빙 박스를 열어봤다. 박스 안에는 새 비누와 새 칫솔, 새 치약, 수건 두장과 연두색 플라스틱 수저가 들어있었다.

2평 남짓한 독방은 흰 형광등 불빛으로 환했다. 화장실도 딸려있는데,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는다. 유치장 화장실이 그랬듯, 허리춤 밑으로는 불투명한 창이지만, 그 위로는 투명한 창이다. 감독관이 화장실 안에 있는 죄수들까지 다 볼 수 있도록. 세면대는 없고, 대신 낮게 설치된 수도꼭지와 진갈색 대야가 있었다. 휴지도 있다. 휴지에는 영어단어와 한자가 차례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림과 함께. 아마 이곳에서 영어공부, 한자 공부를 하라고 이런 휴지를 비치했나보다. 휴지를 꺼내서 한자를 들여다봤다. 한자는 복 복福, 영어단어는 문어, Octopus.  복과 문어. 배열된 단어들 사이에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교도관은 내 죄수번호가 49번이라고 했다. 49는 내가 좋아하는 숫자다. 49일은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7번의 7일 동안 심판을 받고, 마지막 49일째에 염라대왕에게 마지막 심판을 받는 날이다. 그 후에 지옥에 갈지 극락에 갈지 결정된다고. 심판의 의미도 있지만, 그래서 49일을 기리며 산자가 죽은 자를 위해 49제, 위령제를 열기도 한다. 지옥이든 극락이든 믿지 않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 지구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겠다는 의지를 되새긴다. 삶의 의미와 49의 의미를 생각하다보니, 이 교도소도, 이 교도소로 오게 한 이 사회의 어떤 권력의 질서도 작고 가볍게 느껴졌다. 생명의 질서보다 더 중요한 질서는 없다.

바닥은 따뜻했다. 노란색 바닥, 흰색 벽지. 모든 게 가장 단순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직사각형 교도소 건물과 직사각형 방, 직사각형 담요를 깔고 누웠다. 생각해보면 모든 딱딱한 것들은, 견고한 것들은 사각형이다. 동그랗거나 흐물흐물하고 삐뚤빼뚤하거나 느릿느릿한 것은 이 세계에서 열외다. 나는 달팽이마냥 축 늘어져버린다.

입소한 지 한 시간 정도 되었는데 기운이 빠졌다. '나는 지금 잠시 찜질방에 온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한숨 자고 나면 나간다.' 곧 교도관이 오더니, 담요를 깔고 자라고 했다. 새 칫솔로 새 치약을 짜고, 찬물로 이를 헹궜다. 이가 많이 시려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찬물로 이를 헹구겠지(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따뜻한 물은 따로 페트병에 담아서 준다).

담요를 깔았더니 방이 거의 가득 찼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낯선 환경에서도 곧잘 잠드는 나지만, 이곳은 너무 낯설다. 게다가 형광등의 빛이 너무 환해서 잠들기도 힘들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저런 안내문을 읽어본다. 수요소 생활규칙이라고 써있는 종이도 있다. 규칙에는 밝고 명랑하게 인사하기, 교도관 말을 잘 듣기... 생활규칙을 읽다가 문 쪽을 바라봤다. 복도에서 여성 수용자와 교도관이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 교도관님 저 목욕한 지 얼마 안 되었잖아요!" 40~50대 되어보이는 여성의 목소리다. 교도관은 "안돼. 들어가요 어서"라며 그녀를 방 안으로 밀어넣으려는 모양이다. 독방 문에는 식판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통로와 철장 창문이 뚫려 있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내 방 바로 건너편인 3번 방과 4번 방에 수용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수용된 사람들은 신입이 궁금한 눈치인지 나를 보기 위해 창문에 몰려있었다. 몇 몇 수용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모두 40대~60대 여성들이었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그들은 우리 엄마의 뒷모습, 옆모습과 비슷했다. 모두 평범해보이는,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나를 끈질기게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는 각도의 자리에 앉아 수용소 생활규칙을 마저 읽었다.

폭력 앞에서

생활규칙 안내문에는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시,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교도관에게 알몸을 보여줘야 하고, 그들의 반말과 시비조의 말투를 고분고분 들어줘야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거창한 말과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빈정 상하고 수치스럽지만, 그들의 그런 태도를 역할극이라고 인정해주고, 따라주어야 하는 걸까 생각한다.

그들은 '이곳에 들어오면 이런 취급을 받는 거야, 그러니 조심해!'라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수행하는 그 역할극 자체가 폭력적인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를 위축시켜서 그들이 통제하기 쉬운 사물로 만들어놓으려는 행동이라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그것은 폭력이 아닌가. 국가라는 이름, 질서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라 해도.

그럼 어디까지 저항해야 하는걸까, 그리고 어떻게 저항해야할까. 이런 고민은 중학교와 대학교에서도, 법정과 경찰서 유치장, 집회를 하러 나간 광장에서, 가부장제를 따르는 가족공동체 안에서, 1인 시위를 하러 찾아간 청와대 앞과 국회의사당과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어린이집, 고등학교 특수교실에서도 했던 고민이다.

내가 마음이 편하려면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비겁과 굴종은 잡초처럼 무성하게 번지고 나를 끝끝내 괴롭혔다. 그렇다면,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 그게 먹힐까. 아니면, 꾹 꾹 기억하고 저장해 두었다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는 것은. 인권위에 제출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럼 일반적인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원래 교도소라는 것이 그런 건데 어쩌겠나. 그럼 감옥을 없애자는 건가? 그러니까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닥치는 작은 폭력에 저항한 사람들 덕분에 학교와 감옥에서 잔혹한 체벌이 줄어들고, 처우가 좀 더 나아지진 않았나.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던지 간에, 적어도 하나의 존재에게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든 옳지 않다는 인식을, 거창하게는 인권의식을 표면적으로라도 주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교도소가 아니더라도, 이 사회 모든 조직에서 행해지는 역할극은 한 인간의 개성을 다루기 쉬운 이름으로 분류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극을 한다. 그것이 가장 경제적으로 인간들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푸코는 감옥을 이렇게 정의한다.

"감옥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는 착각을 주기 위한 정치적 공간이다."

교도소에서 나온다고 해도, 역할극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이 사회에서 여성, 젊은(어린)20대, 국민의 역할극을 한다. 작은 조직과 큰 조직, 비제도권 조직과 제도권 조직 모두에서 역할극은 행해진다. 49번 죄수번호를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잠에 들려고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항의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게 역할극이라는 걸 잊지 않는 일이다. 망각하지 않는 일. 모든 특권과 차별과 특별함과 비참함에 속지 않는일. 그래서 나를 지켜내는 일이다.


태그:#여자교도소, #세월호, #홍승희, #교도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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