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 천장사 주지 허정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 대변인을 맡고 있다.
 전 천장사 주지 허정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 대변인을 맡고 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허정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조로 알려진 경허 스님이 묵었던 서산 천장사에서였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돌계단을 타고 올라서야 만날 수 있는 천장사에는 경허 스님이 수행했다는 아주 작은 선방이 있다. 한 평도 채 안 돼 보이는 그 선방은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작고 소박한 방이었다.

천장사 주지라는 허정스님은 그 소박한 방만큼이나 소탈했다. 개를 껴안고 허허실실 웃어가며 처음 만난 내게 차를 권했다. 지식이 풍부하다는 스님들 앞에서는 보통 세 마디 이상 늘어놓기가 힘들지만 어딘가 모르게 헐렁한 구석이 많아 보이는 허정스님에게는 내가 살아온 이력을 비롯해 별의별 쓰잘데기 없는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을 수 있어 좋았다.

차를 다 마시자 스님은 밥을 권했고 잠자리를 권했다. 결혼 전인 20여 년 전, 서른 살 즈음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출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 저기 사찰을 기웃거릴 그 무렵에는 가난한 주머니 사정 신경 쓸 것 없이 그 어느 절에서건 쉽게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재수가 좋으면 차를 얻어 마시고 빈 선방에서 몸을 의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양을 권하는 스님은 물론이고 아무런 조건 없이 비어있는 선방에서 하룻밤을 묵기가 쉽지 않다.

그 사찰의 스님과 인연이 없으면 눈치가 보여 어지간한 공양간에 발을 들이기조차 쉽지 않다. 분명 세상은 2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 무렵에 비해 넉넉한 공간을 찾아 볼 수 없을 만치 불사 또한 늘어났다. 사찰 건물들은 촘촘히 들어서고 있지만 사찰 인심은 형편없이 달라졌다.

하지만 허정스님은 20여 년 전에 만났던 그 인심 좋은 사찰의 스님들 모습 그대로였다. 5년 전, 스님과 그렇게 인연을 맺어 간혹 천장사를 찾아가 차를 마시거나 발길 닿지 않으면 손전화기로 소식을 주고받곤 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스님을 다시 만났다.

스님은 미얀마를 다녀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지 자리를 내놓고 여기 저기 도반들의 토굴과 사찰 선방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헌데 스님의 허허실실 했던 얼굴빛이 달라졌다. 객승 신세 때문은 아니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어떤 결기 같은 것이 느껴져 왔다.

"작년 10월 주지를 그만두고 나니 막상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에서 3개월을 보내고 왔습니다. 미얀마 승가는 이방인에게도 잠자리에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수행할 수 있도록 외호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죄송스럽게도 수행은 못하고 직선제(조계종 총무원장) 고민만 하다가 온 것 같습니다."

허정스님은 출가하여 30년을 보냈지만 한국 절은 수행자를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절은 크지만 스님들을 위한 객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얀마에서 돌아온 스님은 당장 갈만한 곳이 없어 낮에는 도서관, 밤에는 찜질방에서 지내며 몇몆 도반스님들의 절이나 토굴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머물 자리가 없어서 찜질방을 가게 되는 내 처지를 보고 어떤 스님은 스님도 돈을 모아서 일찌감치 토굴을 장만하지 그랬냐고 안타까워합니다. 나도 토굴이 있었으면 거기에 안주하고 살림하느라 지금처럼 한국 불교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허정 스님은 조계종 승려로 30년 동안 봉암사, 불국사, 해인사, 범어사, 동화사 등등의 선방을 십년 넘게 다녔고 천장사 주지를 비롯해 한때는 조계종 교육원산하 불학연구소장,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 흔한 토굴 하나 장만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정 스님은 신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빈둥빈둥 놀고먹는 스님이 아니었다. 천장암의 주지로 있으면서 오갈 데 없는 수행자들을 위해 선방을 마련해 놓았고 대중들과 소통의 장을 열어가며 천주교 성지인 해미읍성에 종교를 초월한 연등제도 처음으로 개최했다. 그럼에도 천장사 주지 재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주지 재임이 되지 않은 것이 자승 총무원장이 반대하는 직선제 주장을 강력하게 펼쳐왔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허정스님의 직선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총무원장 직선제는 단지 제도적인 개혁이 아니라 오래된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불교 1700년의 역사 동안 우리 승가는 언제나 대중의 뜻을 물어 대소사를 결정하여 화합을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승가는 계파정치와 금권선거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 구조는 대중을 소외감과 패배감에 젖게 하고 있습니다."

조계종, 사찰 수입 등으로 승려들 의식주 해결할 재산 보유

스님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
 스님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부처님에 귀의한 수행자가 밥 먹는 바루 하나에 승복 한 벌이면 됐지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라고 말할 수 있다. 스님들은 이슬만 먹고 살수 없다.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보장되어야 한다. 조계종은 사찰 수입 등으로 승려들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조계종 소유 토지는 우리나라 토지의 0.8%~0.9%인 9억 제곱미터, 2014년 한 불교 세미나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종단의 1년 총수입은 1조5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승가의 재산을 가지고도 부익부 빈익빈, 어떤 스님들은 돈이 넘쳐나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어떤 스님들은 가사 값, 승복 값에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허정 스님 말로는 의식주 해결이 개인의 문제로 떠넘겨 지게 되면 스님들은 알게 모르게 소유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승가에 살면서 '승가'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모르기에 승가에 의식주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자기가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가사 값이든 승복 값이든 학비든 자기가 벌어서 냅니다. 그러기 위해 부전도 살고 장례식장도 가고, 목탁노동자로 살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웁니다.

적금을 붓고 적극적인 사람은 주식투자도 합니다. 각각 사유재산을 갖고 개인주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호화롭게, 돈이 없으면 비참하게 사는 것이지요. 이게 2017년 조계종승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최소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선제가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자 스님은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가난한 스님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목탁노동자로 살아가기도 한다. 승가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하고 있다.
 부자 스님은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가난한 스님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목탁노동자로 살아가기도 한다. 승가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하고 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눠야 한다. 가진 것도 없는 사람에게 나누자고 강요하면 도적이다. 또한 가진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눠주지 않는 것은 더 큰 도적이다.

"제가 승가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직선제를 주장하고 가사 값 승복 값을 개인에게 부담지우지 말라고 주장하면 어떤 스님들은 승가의 허물을 드러내는 일이니 절 안에서 이야기하랍니다. 저는 절 안에서 30년 동안 줄기차게 이런 얘기들을 해왔습니다. 그런 불합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면 다시 말하지만 총무원장 직선제가 필요한 것이지요."

직선제는 본래 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이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3월 불광사에서 열린 사부대중 100인대중공사 자리에서 자승 스님이 자신의 공약을 뒤집어 직선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차기 총무원장 선거를 논하는 자리에서 종단의 대표자가 토론 도중에 직선제를 노골적으로 반대한 것입니다. 직선제를 하면 종단이 분열되고 혼란이 일어나 수습불가의 상황이 될 것이랍니다. 거기다가 비구니 스님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해 비구니가 결집하면 총무원장 선거는 끝장난다며 차별적인 발언까지 했습니다. 수적으로 우세한 특정집단으로 인하여 세가 형성되면 수습이 안 되어 극심한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이지요."

자승 스님의 작심 발언과는 달리 총무원장 선출 직선제는 대중공사에서 60%에 이르는 높은 지지를 받아 중앙종회의 특위 구성을 이끌어 냈다. 대중들의 열망 속에 중앙종회는 직선제 특위를 구성하고 관련 법 개정을 준비하며 이에 호응했다.

직선제 특위는 매월 두 차례 이상 회의를 열고 승랍 10년 이상의 8000여 명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는 안건을 마련했고 전문기관에 의뢰해 직선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80.5%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조계종 공식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장 직선제가 무산됐다. 조계종 중앙종회는 2016년 9월부터 11월 2017년 3월에 이르기까지 3차례에 걸쳐 직선제 관련 종헌 개정안을 이월한 것이다.

여론 조사 결과 80.5%의 압도적인 직선제 찬성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3차례에 걸쳐 이월시켰다. 이에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에서는 2주에 한번씩 촛불법회를 열어오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 80.5%의 압도적인 직선제 찬성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3차례에 걸쳐 이월시켰다. 이에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에서는 2주에 한번씩 촛불법회를 열어오고 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80.5%의 찬성에도 불과하고 직선제 의결이 불발 되자 지난 3월 22일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수행승들의 모임)는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제 이행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국선원수좌회 1200여 명의 스님들은 '청정승가 구현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기본과 상식과 공의가 통하는 지도자, 율·교·선에 여법한 수행자가 종단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에 전국선원수좌회는 청정승가와 종도화합의 역량을 결집하고자 철저한 검증과 공개토론을 통해 인격과 수행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종사가 후보가 되어야 하며, 공영제에 의한 직선제를 시행하여 종단의 수장이 선출되기를 주장하는 바이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스님들은 "종도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라야 산적한 적폐를 일소하고 청정승가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자승 총무원장의 직선제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재정의 투명화로 수계에서 다비까지 전면 복지를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은 현재 24개 교구본사에서 선출된 240명의 선거인단과 중앙종회 의원 81명 등 321명의 선거인단이 투표로 뽑는 간접 선거 방식이다. 이를 두고 그동안 금권 선거 등 여러 폐단으로 인해 제도개선의 요구가 높았다.

"승가는 풍족해도 스님들은 청빈하게"

조계종 자승총무원장 체제에 맞서 직선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에서 대변인을 맡고 허정스님
 조계종 자승총무원장 체제에 맞서 직선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에서 대변인을 맡고 허정스님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서산에 잠시 머물러 있던 허정스님은 서울로 올라가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에서 대변인을 맡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차분히 마주 앉아 인터뷰할 시간도 마땅치 않아 조계종단에서 총무원장 직선제가 왜 필요한 것인지 현 총무원장 체제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설문지를 보냈다. 다음은 설문지를 통한 허정 스님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총무원장 직선제 운동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요.
100인 사부대중 대중공사에 참석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모여서 종단의 현안을 논의 해보고 대안을 찾아보자. 또 종단의 대화와 토론 문화를 가꾸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토론그룹입니다. 그때 종단현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는 어떤 모임이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작년 9월 종회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총무원장 직선 실현을 위한 대중공사'는 소수의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3월 종회를 대비하여 교계신문에 직선제 홍보 광고를 냈고 불교인터넷 신문에도 지속적으로 광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님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직선제 ok"를 뜻하는 ok 손 모양 인증샷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으며 곧 포스터, 호소문 등을 담은 우편물도 발송하고 동영상도 제작하여 발송할 예정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승가는 풍족해도 스님들은 청빈하게" 사는 승가 공동체 회복입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청정한 지도자를 뽑아야 합니다. 그 방법이 대중의 뜻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직선제입니다.

- 현행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요.
현행 간선제 총무원장 선출은 종회의원 81명, 각 본사에서 10명씩 240명, 총 321명의 선거인단에서 투표로 선출하게 되어있는데 이 가운데 160~170명만 포섭하면 총무원장에 당선 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이들을 포섭하려고 심혈을 기울이게 되고 거기에서 특정세력이나 특정인의 매수, 밀약이 이루어지는 거지요. 그래서 총무원장이 당선되면 그들과의 이권 약속을 지키려고 다른 일을 못해요. 또한 정치적 동지인 그들이 범계행위를 해도 처벌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승가의 화합에 심각한 갈등요소가 되었구요.

이런 폐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거 때는 다른 후보들도 일대일로 사람을 포섭하는 그런 선거경쟁을 하게 됩니다. 선거 직전에 봉투를 주면 뇌물이지만 평소에 유권자들에게 꾸준히 봉투를 드리면 수행자 외호 또는 어른스님 공경이 되거든요. 이렇게 선거권을 가진 사람만 꾸준히 관리를 하니 대다수 스님들은 소외되고 정작 불교가 이 시대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됩니다.

- 직선제를 할 경우 비용이 많이 들어 금권 선거가 활개 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그렇습니다. 직선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박근혜도 직선제 대통령인데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잖아요. 직선제는 민주주의 꽃으로 철저하게 그 단체의 대중 수준과 함께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직선제를 원하는 것은 전체 대중의 뜻을 묻는 것이 불가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율장에서는 대중에게 두 번 물어서 소임자(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덕망이 높은 사회자가 '아무개스님을 소임자로 추천합니다.' 라고 한 번 공지를 하고 '아무개스님이 소임자가 되는데 이의가 없으면 침묵하시고 이의가 있으면 말씀하세요.' 라고 다시 한 번 물어서 대중이 침묵하면 소임자가 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같은 지역 (하루 동안 걸어서 왕래가 가능한 범위)에 사는 모든 대중스님들에게 의견을 묻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대중이 그분을 소임자로 받아들인다는 약속이지요. 이래서 승가의 화합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통의 발달로 대한민국이 모두 1일 생활권이 되었고, 같은 종지(宗旨)를 따르는 '종단(宗團)'이라는 것이 생겨서 총무원장 같은 종단승가의 소임자를 선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부처님 때와는 다르게 비구니승가도 포함되고 문중(門衆)이라는 특정세력들도 존재하여 옛날처럼 만장일치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간선제 투표를 하게 된 것인데 간선제도 문제가 많아 이제 직선제요구가 높아진 거지요.

직선제 방법에 있어서 저희는 1인2표제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2표를 행사하는 것인데 1표(인연표)는 평소 가까운 인연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1표(양심표)는 평소 존경하고 능력 있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습니다. '인연표'는 분산되는 표이고 '양심표'는 모아지는 표이기에 최종적으로 양심표에 의해 지도자가 선출되게 됩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설사 후보자가 금권선거를 시도하더라도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10년 이상의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이 투표하게 되면 8500명이 유권자가 됩니다. 유권자가 많아질수록 유권자를 컨트롤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직선제는 간선제보다 금권선거 가능성이 훨씬 적습니다.

- 직선제가 실행되면 비구니 스님들도 투표에 참여 할 수 있나요?
여성대통령, 여성 당대표가 되는 이 시대에 불교의 비구니 스님들은 아직도 중앙종회의원, 총무원장 투표권이 없습니다. 직선제가 되면 비구니 스님들도 투표권을 갖게 되어 승가 안에서 실질적인 평등이 이루어집니다.

- 직선제와 민주주의의 실현은 불법과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여기서 불법의 진리는 진리 그 자체를 추구하는 관점이 아니라 불교 공동체의 생활규범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승가의 규칙을 담고 있는 율장에 의거해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대중전체(현전승가)의 뜻을 묻는 대중공사(갈마제도)와 직선제는 대중의 뜻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다만 예전에는 같은 지역에 사는 승가대중(현전승가)은 소수였기에 만장일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세력이 존재하는 종단 자체가 승가이기에 현대사회처럼 선거를 해서 다수결을 택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법에 동의하는 것은 이미 구성원들이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동의한 것이고 이런 면에서 승가대중은 만장일치를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선제는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십니까?
평등하고 청정한 승가공동체의 구현은 물질만능주의와 경쟁사회에 지친 이들의 의지처가 되고 희망이 됩니다. 젊은이들의 출가가 늘어나고 불교가 국민화합에 도움이 됩니다. 직선제를 구성원 81%가 지지한다면 더 이상 지지부진한 논의를 끝내고 어떻게 실행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대중의 지지를 외면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다면 대중의 거센 저항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대중의 뜻을 외면하는 비상식적인 집단은 사회의 적폐가 됩니다.

-다가오는 총무원장 선거에서 직선제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전망이 밝지는 않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직선제를 통해 승가의 공적유산을 공적(公的)으로 사용하자는 것이지만 현재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스님들은 공적유산을 사적(私的)으로 사용하는데 이미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들이 직선제를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80.5%라는 대중의 뜻이 이미 확인된 만큼 그들의 논리는 힘을 잃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이번에 직선제법이 종회통과를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노력은 대중을 깨우는 효과가 있습니다. 올 10월에 직선제를 지지하는 후보자가 나오도록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공적인 삶터에서 공심(公心)으로 살아가는 것은 탐진치를 버리는 수행자들의 생활방식입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이 아니라면 불교는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없으며 진실한 수행자도 되기 어렵습니다.

"스님들 제적하고 언론 출입 막고"

지난 4월 8일 서울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제3차 촛불법회.
 지난 4월 8일 서울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제3차 촛불법회.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기사를 작성하다가 허정스님과의 인터뷰만으로는 부족해 촛불 법회 현장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4월 8일 '충무원장 직선 실현 촛불 법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보신각 광장을 찾았다. 법회가 시작될 무렵 언론 기사를 통해 알게 된 박병기 교수(한국교원대학교)를 비롯한 몇몇 낯익은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박병기 교수는 '승가공동체 회복, 직선제로부터!'라는 공청회에서 '외제차를 타고 명품을 소비하는 주지스님'으로 상징되는 승가의 소비주체로의 전락은 불교 자본가로서 승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면서 고립된 독불장군식의 사부대중공동체 인식과 종무행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질타했었다.

이번에 세 번째로 열린 촛불 법회는 청정교단 구현을 추구해 오고 있는 참여불교재가연대와 더불어 재가 불자들과 허정 스님, 도정스님을 비롯한 3명의 스님들이 참여했다.

이날 춤과 노래가 함께하는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된 촛불 법회 현장에서 팟 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특별 판 '생선향기'>에 출연해 종단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공권정지 3년과 법계 강등의 징계를 받은 도정 스님은 조계종단의 적폐 청산을 위한 직선제의 필요성에 대해 목청을 높였다.

"솔직한 말을 하면 제적시키고 강등시키는 종단의 차별과 불평등에 침묵하는 스님들도 이제 종단의 적폐 청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날 법회 현장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정 스님뿐만 아니라 최근 명진 스님과 영담 스님 등 자승 총무원장 체제를 크게 비판해 온 스님들이 하나 둘씩 징계 처분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승 총무원장 체제의 호계원이 '승풍실추 혐의'로 영담 스님에게 제적이라는 징계를 결정했듯이 얼마 전에는 명진 스님(전 봉은사 주지)을 제적 징계 처분 했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었다. 자승 총무원장 체제는 <불교 닷컴>과 <불교포커스>를 상대로 취재금지 출입금지 광고 금지 접촉금지 접속금지를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체제를 비판하는 이들 언론에 대해 이른바 '해종 언론'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었다.

최근 <불교닷컴>은 더불어민주당의 복수 관계자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기도 했다.

'조계종은 지난 달(3월) 29일 더불어 민주당 불자회가 주최한 '한국불교의 미래, 미래의 한국불교' 토론회를 문제 삼아 수차례 항의방문을 했다.(발제자로 섭외된 서울대 우희종 교수를 '해종 세력'이라며 행사에서 배제시켰다.)

또한 추미애 당 대표, 우상호 원내 대표 등을 찾은 조계종측은 "토론회가 종단 자주권을 침해하고 왜곡 비난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면서 책임자 색출과 향후 계획을 밝혀라"고 요구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불교 닷컴은 민주당의 복수 관계자의 말을 빌려 "조계종 승려가 재가종무원과 공문을 들고 몇 차례 항의 방문을 왔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고압적이었다. 문재인 후보 지지 철회와 집단행동도 언급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입바른 사람들을 몰아내고 입바른 예술인들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박근혜 정부, '이게 나라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순실과 함께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렀던 추악한 박근혜 정부와 자승총무원장 체제가 겹쳐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 3차 춧불 법회는 재가불자들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춤과 노래가 있는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했다.
 제 3차 춧불 법회는 재가불자들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춤과 노래가 있는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촛불 집회 현장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는 곱지 않은 눈들도 있었다. 스님들이, 수행자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을 마뜩찮게 바라보는 눈빛들이다. 직선제 쟁취를 위해 동가식서가숙, 사방팔방 스님들을 만나러 다니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허정 스님은 일갈한다.

"불교에서는 선악을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선악을 나누는 것을 꺼려합니다. 마치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처럼. 왜냐 하면 금강경에서 말하듯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업, 불선업, 십선법이라는 측면에서 선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계의 차원이 아닌 혜의 차원에서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회에서 선과 악을 나누기는 쉽지 않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중도(中道)를 지키랍니다. 불성이 있으니 너는 이미 부처랍니다. 평생 선방에서 얻어먹는 것이 전생의 복이라고 합니다. 정치인들도 중도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중도 정당이라 합니다. 중도를 '대충'이라고 읽습니다. 중도를 '편할 대로'라고 읽습니다. 중도를 '내 맘대로'라고 읽습니다.

직설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해라' '대중의 뜻을 물어 지도자를 선출해라'라고 말하면 중도가 아닌 것인가요? '해고 노동자를 껴안아라' 라고 말하면 극단이고 양변에 떨어진 것입니까? 책상에서 생각해낸 양변은 현실에는 없습니다. 관념속의 양변을 부정하고 내놓은 중도란 아픈 사람에게 처방약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에게 현재 불교가 답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매모호한 말을 던지고는 품위 있게 미소 짓는 모습에 대중은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입으로 가르치기만 하는 중도, 품위만 지키는 중도, 그 속에서 불자 3백만 명이 떨어져 나가고 초심 출가자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는데 너희들은 모르지라는 태도와 권위주의와 엄숙주의에 승가가 질식하고 있습니다."

촛불 법회를 마치고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서산 가야산 자락 산막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천장사의 벽화가 떠올랐다.

천장사에는 절벽 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탐욕스런 중생을 단적으로 표현해 놓은 한 폭의 벽화가 있다. 절벽 위에서는 성난 코끼리가 쫒아오고 그 아래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는데 쥐들이 갉아 먹고 있는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벌집에서 흘러나오는 꿀을 받아먹겠다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신도들의 주머니 털어 권력과 주색에 빠져 있는 어리석고도 탐욕스런 승려의 모습이기도 했다.

천장사 벽화. 절벽 위에서는 성난 코끼리가 쫒아오고 그 아래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는데 쥐들이 갉아 먹고 있는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벌집에서 흘러나오는 꿀을 받아먹겠다고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천장사 벽화. 절벽 위에서는 성난 코끼리가 쫒아오고 그 아래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는데 쥐들이 갉아 먹고 있는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벌집에서 흘러나오는 꿀을 받아먹겠다고 입을 쩍 벌리고 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제4차 촛불법회는 4월 22일 수원화성행궁에서 연등 축제 하는 날. 명진 스님 초정. 황소를 데리고 포퍼먼스 벌일 예정이다.



태그:#조계종, #총무원장 직선제, #허정스님, #촛불법회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이 정도면 마약, 한국은 잠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