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헌법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고대 폴리스에는 아고라라는 극장이 있었다.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도시의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고대 폴리스에는 아고라라는 극장이 있었다.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도시의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민주주의(民主主義)는 국민(民)이 주인(主) 되는 정치체제다. 영어의 데모크라시(democracy)를 옮긴 것인데 데모크라시는 그리스어 데모스(demos)와 크라티아(kratia)를 합쳐 만든 말이다. 데모스는 인민을 뜻하고 크라티아는 지배를 뜻한다. 데모크라시 역시 인민의 지배, 곧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체제를 뜻한다.

민주주의의 기원이 된 고대 폴리스에는 아고라(agora)라는 극장이 있었다.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도시의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이 직접 논의하고 토론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국가가 도시의 수준을 벗어나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국민들이 직접 정책을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는 한계에 봉착했다. 때문에 도입된 것이 대의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대표자를 통해 정책을 결정한다.

대표자는 국민 개개인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여 정책에 참여해야 하나 이 또한 여의치 않다. 한 사람이 대표해야 할 국민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표자와 국민 간 소통의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 언론이다.

언론은 국민들의 이야기와 의견을 모아 대중에게 전달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대표자와 국민 간 소통에 참여한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이 증대할수록 국민은 점차 직접 소통의 기회를 상실하고 언론을 통한 간접소통에 종속될 우려가 크다. 그렇기에 언론의 기능이 강화된다 하더라도 국민의 직접소통방식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

2007년 3월 황유미라는 여성의 죽음이 있었다. 그녀의 나이는 고작 스물셋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속초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세계 최고라는 연기 없는 공장 삼성은 이름 자체만으로 가슴 뛰는 곳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급성백혈병이었다. 힘겨운 암 투병을 이어가던 그녀는 병원을 찾아 헤매던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두었다. 택시 기사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황유미씨의 죽음 이후에도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백혈병과 암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그들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 역시 반도체 공장의 근무환경과 백혈병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노년의 택시기사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이는 없었다. 언론의 문도 두드려 봤지만 쉽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시민사회영역이 결합하면서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반올림)'가 결성되었다. 그제야 반도체 공장의 억울한 죽음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언론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 기업과 맞서기엔 아직도 힘에 부쳤다.

반올림은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누군가 반올림보다 먼저 집회신고를 했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반올림은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없었다.

관할 경찰서인 서초경찰서는 매번 선행 사전집회신고가 있다는 이유로 반올림의 집회신고를 반려했다. 사전집회신고는 집회의 필수요건이 아니다. 단지 집회 시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관할경찰서의 업무 편의를 돕기 위한 협력적 의무일 뿐이다. 그럼에도 반올림이 집회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건장한 청년들, 이들은 항상 반올림보다 먼저 집회신고를 했다

2016년 1월 삼성전자 사옥앞 반올림 농성장. 피해자들 사진과 피해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2016년 1월 삼성전자 사옥앞 반올림 농성장. 피해자들 사진과 피해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6조 제1항은 집회를 주최하기 위해서는 30일 전부터 최소 2일 전까지 관할 경찰서에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관할경찰서장은 같은 법 제20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사전신고를 하지 않은 집회에 대해 자진해산을 요청할 수 있다.

그리고 제24조는 관할경찰서장의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형량은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결코 낮지 않다.

집시법 제6조, 20조 그리고 24조로 복잡하게 얽히는 구조 속에 대부분의 미신고집회에는 해산명령이 내려지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현행범이 된다. 그리고 경찰에게는 현행범을 연행할 권한이 있다. 사전집회신고는 협력의무가 아닌 사실상 강행규정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규정한다. 죽은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부(老父)는 어디든 찾아가 호소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다. 혼자만의 목소리가 작았다면 여럿이 함께 소리 높여야 했다.

반올림이 결성되고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결사(結社)'라 한다.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소리치는 것은 '집회(集會)'다. 고 황유미씨와 반올림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삼성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삼성에게 전하고 따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반올림의 삼성전자 본관 앞 집회시도는 연이어 실패했다. 서초경찰서 앞에는 늘 건장한 청년들이 줄지어 있었고 이들은 항상 반올림보다 먼저 집회신고를 했다.

고 황유미씨가 삼성전자 본관 앞에 서는 것은 그녀가 아버지의 택시 뒷자리에서 눈을 감은지 5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삼성전자 일반노조는 2012년 서울행정법원에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에 대한 집행정지신청(2012아2376)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를 승인했다.

집회를 차단하기 위한 허위집회신고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었다.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는 황유미씨의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이제 삼성전자 본관 앞 집회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본관 앞 집회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남성들이 집회 장소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삼성과 상관없는 현수막을 들고 서있었다. 법원이 허위집회에 제동을 걸자 실제 집회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집회가 이루어지니 집행정지신청을 하기도 어려웠다.

집회는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주장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밖으로 나와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 공공장소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집회와 공공질서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집회의 자유와 공공질서유지 간 적절한 균형은 피할 수 없다.

선신고 집회를 이유로 후신고 집회를 거부한 근거는 질서유지였다. 같은 장소에서 동일시간대에 두 개 이상의 집회가 개최되면 질서유지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요소로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집시법 제8조 제2항 역시 중복집회신고 시 관할 경찰서장으로 하여금 "집회 또는 시위 간에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할하여 개최하도록 권유하는 등 각 옥외집회 또는 시위가 서로 방해되지 아니하고 평화적으로 개최·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복수집회라도 여러 집회가 모두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조 제3항은 중복 집회 간 시간이나 장소의 분리 권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뒤에 접수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행 집회시고가 있으면 후행 집회신고자에게 다른 시간이나 장소에서 집회할 것을 권유하고 이를 거부하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후신고 집회는 금지되고 있다.

집시법은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집시법 제1조). 삼성전자 본관 앞에 두 개의 집회가 신고 되었다면 적절히 위치를 구분하여 동시에 개최할 수 있도록 안내하면 된다.

두 집회 간 충돌이 우려된다면 경찰력을 통해 사전에 방지하면 그만이다. 집회로 인한 교통체증은 우회도로 등으로 안내하여 해결할 수 있다. 우회하여 지연된 시간은 집회의 자유 보장을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그럼에도 선신고 집회를 위해 후신고 집회를 일률적으로 불허하는 것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존재한다.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대부분 그것 말고는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할 방법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집회의 자유마저 빼앗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할 방법을 모조리 박탈당하게 된다. 결국 집회의 금지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금지를 넘어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집시법, #집회, #민주주의, #집회신고, #반올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