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정치는 말에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즉 콘텐츠와 전략이 정치인의 말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는 '말'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말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선 홍 후보의 말은 투박하고 직선적이며 때론 독설로 보일 정도로 공격적인 느낌을 준다. 그렇다 보니 그의 발언에 대해서 호오가 극명하게 나뉜다.

그런데 그의 말을 단지 독설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동안 있었던 홍 후보의 여러 발언을 분석해보았을 때 그는 매우 전략적인 판단을 하고 있고 그의 말에는 이러한 그의 의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 진보 진영에서는 홍 후보 발언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고 있다. 정치사회 영역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진영 내에서도 홍 후보의 여러 발언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으며  SNS 공간에서도 홍 후보에 대한 비난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홍 후보 정치담론 전략의 전체적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별 사안에 대한 비판은 많고 감정적인 비난 역시 많지만 이것이 나오게 된 구조적인 맥락과 의도에 대한 분석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필자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분석을 시도하려고 한다.

1960년 4.19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한 보수 세력

홍 후보의 담론 전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보수 세력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보수 정치세력은 1960년 4.19 이후 최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물론 4.19 이후에도 보수 세력은 3번에 걸쳐서 매우 중대한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그 3번의 위기 상황에서는 보수 세력의 중심이 견고했기 때문에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1979년 10.26 사건으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이 급서하게 되자 큰 혼란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 상황에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빠른 속도로 권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유신체제가 박정희 대통령 개인을 넘어선 재생산 구조를 갖추고 있을 정도로 견고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다음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도 보수 세력은 큰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6.29를 통해 이슈 대전환에 성공했고 정치적으로 단일대오를 구축한 상태에서 선거에 임하였기 때문에 결국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다. 중심이 견고하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뒤 2004년 총선에서의 패배 직후도 매우 큰 위기였다.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하고 2004년 총선에서마저 패배하게 되자 보수 세력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보수 세력의 중심 기반 자체가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위기는 중도층이 대거 이탈한 탓이었다. 그래서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재기할 수 있는 기본 기반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1979년, 1987년, 2004년과 비교해볼 때 상황이 판이하다. 근본적으로 지금은 보수의 중심이 급격히 이완되어 사실상 와해된 상태다. 견고한 단일대오를 구축하고 있던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당되어 두 당은 현재 보수 진영 내부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외에도 기존 보수 진영의 명망있는 인사 3명이 대선에 출마하여 총 5명의 후보가 출마한 상태다.

그러므로 지금 보수의 위기는 1960년 4.19 이후와 매우 비슷하다. 4.19에 의해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여 미국으로 망명길에 떠났고 지난 촛불 항쟁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결국 구속되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상징하듯 4.19 이후처럼 현재 보수 세력의 중심은 크게 이완되어 와해된 상태다.

강경 보수 세력들이 인식하는 적폐 세력, 적폐 연합은 누구인가?

이것이 지금 자유한국당 홍 후보가 처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홍 후보는 바른정당과 보수 내부의 주도권 경쟁을 해야 하고, 또한 이완된 보수 지지층을 규합해야 할 처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홍 후보는 소위 말하는 집토끼, 즉 골수 보수 지지층에 호소하여 이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저서에서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특징을 '적(부정적인 대상)'과 '친구=동지(긍정적인 대상)'의 구별이라고 했다. 여기서 적은 배제의 대상이며 친구는 포섭의 대상이다.

이것은 결국 선긋기를 통한 경계선 설정이다. 배제의 대상을 향해서는 이성적인 반대와 감성적인 적대를 유도하는 것이고 포섭의 대상을 향해서는 정체성 차원에서의 일체감과 이익실현에 대한 기대감 형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지금 홍 후보는 이 정의에 아주 잘 부합하는 정치 담론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홍 후보가 부정적인 대상으로 설정한 세력은 어디일까? 귀족노조, 운동권, 김대중 노무현 세력을 말한다. 강경 보수가 보기에 이들이 적폐 세력, 적폐 연합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계급적으로는 중산층, 문화적으로는 리버럴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과 관련된 이들의 태도와 접근은 적폐의 본질이다.

홍준표의 극단적인 선긋기 전략

그러면 홍 후보의 전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안보 문제에 있어 홍 후보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북한에 퍼주기를 해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홍 후보의 이러한 주장은 일방적이고 본질을 흐리고 있다. 북한도 무역을 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 이외에도 다양한 수입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 목적에서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협상을 하지 않고 압박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바다.

그리고 경제 위기에 있어서는 귀족 노조 문제를 언급한다. 이것은 보수 세력들이 자주 사용하던 내용이므로 새로운 감은 없다. 그런데 홍 후보는 그 동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을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다.

먼저 북한이다. 홍 후보는 개성공단이 북한의 일자리 정책이고 그만큼 한국 내부의 일자리가 창추로디지 않는다는 식의 공세릴 펼친다. 이는 대북포용정책 노선을 강조하는 구 야권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북한 문제를 통해 안보와 경제 문제를 연관시키는 복합 전술이다.

그 뿐만 아니다. 홍 후보는 극우 진영이 제기하고 있는 5.18 가산점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재검토'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물론 현재까지 홍 후보의 입장은 가산점 폐지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재검토'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재검토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이는 매우 큰 문제다. 왜냐하면 5.18 국가 유공자 가산점 문제는 5.18 국가 유공자 특혜론에서 나온 것이다. 5.18 유공자들이 공무원 시험에서 특혜를 보고 있어 일반 공무원 응시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이는 극우 진영의 5.18광주 민주 항쟁에 대한 모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며 전형적인 가짜 뉴스다.

2017년 1월 기준으로 보면 10% 가산점을 받는 국가 유공자는 전몰군경이 3만6553명, 순직 군경 1만 7128 명, 순국 선열 780명 4.19 관련자 36명, 5.18 관련자는 183명이다. 이렇게보면 5.18 관련자는 비율로 보면 극히 적다. 더군다나 이렇게 10% 가산점을 받는 합격자의 햡격율은 전체 합격자의 30%로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5.18 유공자 특혜론은 광주 항쟁을 모독함과 동시에 반호남지역감정을 유발하는 것과도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이미 지난 시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극우 진영의 차별, 부정, 모독과 연관된 사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5.18 국가유공자 특혜론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비록 재검토라는 낮은 수위의 표현을 썼지만 홍 후보가 꺼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현재 문제의 원인이 기존 진보 세력과 연계돼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홍준표, 기승전 '김대중-노무현'을 강조하다

그러면서 홍 후보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계속해서 거론한다. 이것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연장선상에서 규정하는 것이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향해서는 배후에 실질적으로 김대중 세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전통 보수 세력 내부에 있는 반DJ 정서와 반노무현 정서를 동시에 타깃으로 한 것이다.

홍 후보가 동성애와 사형제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이 이슈는 지금 당장 크게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보다는 홍 후보가 정치적 차원에서 공론화를 유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를 통해서 홍 후보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호명을 의도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집권 시기는 한국에서 자유주의가 가장 확산되었던 때다. 그래서 사회적 차원에서 인권에 대한 의식도 향상되었다. 퀴어 문화제가 2000년에 처음 시작된 것도 그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 때부터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한국은 현재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이다.

홍 후보는 이 문제를 정면에서 지적한 것이다. 홍 후보는 이것이 사회적 기강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유약하고 권위가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앞의 내용과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홍 후보는 진보 세력이 자신들만의 기득권만을 챙기고 있고 북한에 대한 비현실적인 태도로 인하여 안보 위기도 초래했으며 경제 회복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동성애 문제와 사형제 문제에서 보듯 진보 세력은 낭만적이면서도 유약한 사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홍 후보의 인식으로 보인다.

홍준표, 절망에 빠져 있는 서민들을 향한 포퓰리즘 전략

그러면 이를 통한 홍 후보의 포섭 대상은 누구일까? 그것은 현재의 위기 상황 속에서 고통받는 서민이다. 홍 후보는 진보 세력을 중산층 리버럴 세력으로 규정하고, 서민들과 이들 사이의 계급적/문화적 균열선을 창출하여 서민을 동원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직설적이고 감성적이고 쉬운 단어를 쓴다. 그리고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고압적인 태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홍 후보는 미국 트럼프와 상당히 유사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홍 후보는 '북한 김정은을 무릎 꿇게 하겠다'고 하였고, 동성애 사형제 등 인권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도 엄격한 태도를 강조한다. 소위 말하는 '스트롱맨' 전략이다. 이는 '힘'을 강조하여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서민층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는 계급적으로 보면 진보의 주된 지지기반인 중산층 리버럴층을 배제한 최상층과 하층 사이의 결합, 세대로 보면 장년층 이상 노년층, 지역적으로는 TK 지역, 종교적으로는 보수적 개신교계 등을 주된 포섭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 보수 세력의 주된 세력 기반이다.

그래서 홍 후보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규합하기 위해 상당히 자극적인 정치 담론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철저히 '적(배제의 대상)'과 '친구(포섭의 대상)'을 구분하여 선긋기를 하는 정치 전략의 기본에 매우 충실한 전략인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거시적인 관점에서 홍 후보의 정치 담론 전략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현재 한국 보수 세력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비판에 앞서 필요한 것은 분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보수 세력의 '반노무현' 정치 전략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노무현, #홍준표
댓글2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