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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투표에 참가하는 미국 초등학교 학생들.
 모의투표에 참가하는 미국 초등학교 학생들.
ⓒ EBS<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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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시간에 대선 후보 모의투표요? 그런 것 하려면 교사직을 걸고 하려면 가능해요."(경북 중학교 교사)

한국에선 학교 안 모의투표 교사직 걸어야 가능?

시도교육청은 교사들에게 대선 계기수업을 독려하고 나섰다. 하지만 대선 계기수업의 꽃인 '모의투표'는 씨가 말랐다. 그나마 몇 안 되는 교사들이 대선이라는 적기를 맞아 계기수업으로 모의투표를 계획했지만, 교감과 교장이 번번이 퇴짜를 놓고 있는 상태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고교의 교사는 최근 수업시간에 대선 '모의투표' 계기교육을 하려고 교감과 교장에게 결재를 올렸다. 교감 결재는 받았지만 교장이 끝내 결재하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지난달 25일 경기도교육청이 대선 계기교육 권장 공문을 학교에 보냈지만 교장에게 가로막힌 것이다.

서울지역의 한 초등학교 수석교사도 <사회> 민주주의 단원 시간에 맞춰 대선 모의투표를 계획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포기했다. "(검찰과 선관위의) 빌미가 될 거 같아 자체 검열했다"는 게 그 이유다.

서울의 한 중학교 A 교사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 선거 관련 계기수업을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마침 공부하는 부분도 선거 관련이어서 후보들 공약 가운데 마음에 든 공약과 그렇지 않은 공약 3가지를 조사하고, 만일 내가 유권자라면 어떤 후보에게 투표를 할 것인지 수행평가를 냈어요. 그랬다가 교육청 조사, 선관위 조사, 그리고 선관위의 고발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습니다."

결국 검찰이 무혐의 처분했지만 이런 시달림을 당하고 보니 "모의투표를 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나라 형편과 달리 교육선진국들은 대부분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학교 안 모의투표가 축제처럼 진행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곳은 다름 아닌 교육부, 교육청 또는 학교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독일은 교육부가 나서 연방의회 선거 직전 모의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2013년 안할트 주의 경우 교육청이 '연방의회 선거를 위한 주니어 선거'에 학교들이 적극 참여하기를 권장했다. 대상은 7학년 이상 학생들이었다. 모의투표 방법은 수업시간에 온라인을 이용하거나 연방의회 선거 1주일 전 용지로 투표했다. 학생들이 선거안내문을 발송하고 선거규정도 만든다. 1999년부터 처음 실시된 이 모의투표는 독일 전역 100만 명의 청소년이 참여했다.

독일, 미국, 일본, 스웨덴, 핀란드, 코스타리카에선 '모의투표 축제'

일본 가나가와현 교육위원회도 이미 2010년 참의원선거의 모의투표를 모든 현립 고교에서 시행했다. 144개교 학생 3만 120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하기 전에 각 정당의 공약이나 정책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학생들의 정치의식도 높아졌다"는 게 한국교육개발원의 분석 결과다.

미국에서 대선을 앞둔 모의투표도 화젯거리다. 벤저민 프랭클린 초등학교의 모의투표는 1968년부터 48년 동안 벌였다. 그런데 한 번도 초등학생들의 예측이 틀린 적이 없는 '족집게'여서 미국 CBS 등의 단골 뉴스거리다.

하지만 지난 해 11월 2일 진행된 투표에서는 277표를 얻은 클린턴이 230표를 얻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를 제치고 승리했다. '족집게' 아성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2012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당시 핀란드의 한 중학교 복도에 내걸린 대선후보 얼굴들.
 2012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당시 핀란드의 한 중학교 복도에 내걸린 대선후보 얼굴들.
ⓒ 홍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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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는 보통 선거가 9월에 있는데, 그 전에 학교에서 모의선거를 한다. 중고교 과정에 있는 학생회에서 정당원을 부르거나 정당에 가입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유세를 벌인다.

스웨덴 국립교육청 과장을 지낸 황선준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은 "실제, 우리 아이가 '환경당' 당수로 나가 유세를 잘했는지, 그 학교에서 두 번째 큰 당이 되었다"면서 "이런 모의투표 활동 등은 정치가 학생들 삶과 같이 하고 있음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과서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도 모의투표를 주요 교육과정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17살 이상에게 선거권을 주는 코스타리카도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 12살 이상에게 모의투표 자격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도 학교 안 모의투표 시도가 꽁꽁 얼어붙었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은 "2012년 1월 핀란드 학교를 방문했을 때 마침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는데 고교에서 모의 투표를 하고 있었고 중학교 복도엔 후보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면서 "대통령선거를 활용해 민주주의 교육의 기회로 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교 안 모의투표가 교사 목을 내놓고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일까? 뜻밖에도 중앙선관위는 최근 서울지역 한 고교가 문의한 '모의투표 가능 여부'에 대해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 학교는 오는 8일 전교생을 대상으로 대선 모의투표를 벌일 예정이다.

태도 바꾼 중앙선관위? "교사도 학생 대선 모의투표 진행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도 '공무원인 교사도 학교 안에서 대선 모의투표를 진행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하는 것은 선거운동이 아니라 여론조사로 보는 것"이라면서 "그러니까 상관이 없다. 모의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그 모의투표 결과는 투표마감 뒤에 발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4월 16일 중앙선관위는 학교 밖에서 진행하는 YMCA의 대선 모의투표에 대해 '모의투표 결과를 투표마감시각 후에 공표하는 경우에는 무방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태그:#학교 안 대선 모의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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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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