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금속활자의 비밀들> 한 장면. 고려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에 전해졌을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나선 다큐 제작진

다큐멘터리 <금속활자의 비밀들> 한 장면. 고려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에 전해졌을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나선 다큐 제작진 ⓒ 아우라픽쳐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고려 금속활자가 원나라를 통해 유럽에 전파된 것이었다."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금속활자들의 비밀들>은 이 가설에서 출발한다. 마치 탐정들처럼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역사적 자료를 찾아 나서는 영화로, 구체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애쓰는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은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느낌이다. 취재과정에서 첩보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비들까지 동원한 것이 흥미롭다.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빗은 캐나다 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책 '직지'를 알게 된다. 서구에서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려 금속활자보다는 78년 늦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어떤 식으로든 고려의 영향을 받았을 거란 의심을 갖고 데이빗과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명사랑 등 다큐 제작진은 유럽의 주요 나라를 휘저으며 근거를 잦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직지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오직 구텐베르크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직지'의 실물에 접근하는 것도 매우 어려울 만큼 한국의 다큐 제작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작은 단서를 갖고 도서관의 고문서를 뒤져 관련된 내용을 찾아내는 것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다큐 제작진은 놀라운 사실 하나를 찾아낸다. 1333년에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를 바티칸 수장고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내용은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 이를 확인한 게 바로 <금속활자의 비밀들> 제작진이었다. 편지에는 '고려왕이 그리스도인들을 잘 대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고 씌어있다. 반면, 해당 서신과 관련, 교황이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내용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 상태다.

다큐 제작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 프랑스도서관

 <금속활자의 비밀들> 한 장면. '직지'를 보관중인 프랑스

<금속활자의 비밀들> 한 장면. '직지'를 보관중인 프랑스 ⓒ 아우라픽쳐스


<금속활자 비밀들>이 흥미를 돋우는 부분은 입증이 어려울 것 같은 가설에 하나둘 신빙성이 더해질 때다. 고려와 원나라 유럽으로 이어지는 금속활자의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각종 장비 및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은 역사다큐가 첩보다큐로 비치게 하는 부분이다. 힘든 취재를 통해 귀중한 자료들이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느끼는 희열감은 이 다큐가 주는 매력이다.

직지의 존재를 최초로 알린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 박병선 선생의 이야기,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에 대해 역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 등은 탐사다큐의 힘을 보여 준다. 그 취재 결실이 교황이 고려 왕에게 보낸 편지처럼 지하에 묻힌 역사를 하나둘 양지로 끌어 올린다. 

<금속활자의 비밀들>에서 돋보이는 것은 집요한 취재력이다. 제작진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이메일은 순탄한 제작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큰 위기가 닥쳐 포기할 뻔한 상황도 생긴다. 그렇지만 이를 극복해 내는 제작진의 경이적인 노력은 한국의 언론이 본받을 만한 자세다.

긴 역사를 추적하다보니 102분의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지만 22Km에 달하는 서고 등 무궁무진한 자료들이 아직도 잠자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취재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가설을 확실히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접근을 이룬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을만한 작품이다.

<금속활자의 비밀들>은 오는 6월말 개봉할 예정이다. 5억 원의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완성도가 빼어나다. 고려와 원나라 유럽으로 이어지는 금속활자의 여정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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