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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라는 이름의 폭력

동물학대범 임정필 재판 참관 그 후
17.05.07 15:22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여러 의미에서 끔찍했다. 김수현(이병헌 분)은 자신의 약혼녀 주연(오산하 분)이 잔인하게 살해되자 복수하기 위해 범인 장경철(최민식 분)을 찾아 나선다. 이에 수현은 경철이 자신의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하게끔 하는 복수에 성공한다. 이처럼 줄거리 상에서 읽히는 '관계의 죽음'(애인 살해와 그에 대한 대가성 부모 살해)이 불편한 것은 오직 살해 방법이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닌, '대가성 살해'다. 경철이 수현에게 준 행위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다시 앗아갈 만큼의 정당성을 갖는가. 그 정당성은 또 다른 '폭력' 아닌가. 의문이 든다.

이천십칠년 오월 이일. 난 오늘 현실판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적고 나서 망설여진다. 용어의 선정성 때문에 의도가 잘못 전해질까 말이다. 손가락 끝을 맴돌던 망설임을 지우고 다시 적어 본다. 악마를 보았다-고. 자신의 신념 앞에서 기꺼이 절대악을 물리치는 '절대선'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것은 악마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시작 전부터 방청석의 분노는 실내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충분히 화가 나 있었다. 그 점에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판사가 그의 이름 임정필을 호명하자 분노는 언어로 나타났다.

"씨발놈"

"저 새끼가 그 새끼야?"

"니 엄마 누구야?"

세찬 소나기를 닮은 스타카토가 따갑게 귀에 꽂혔다. 저 말들을 법정에서 들을 줄이야. 촌지를 받다가 문제가 되서 학교를 떠난 교사가 열 살 바기 내게 했던 그 말. "니네 엄마 뭐하냐? 뭘 하기에 널 이렇게 키웠냐." 벌써 십년도 전의 이야기건만 아직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모멸감을 불러오는 말. 뭐, 피의자가 그 때 나처럼 모멸감을 느꼈을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저 말들이 그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말일까. 아마도 그렇긴 어렵겠다.

이후 법원을 채운 말들은 간단명료했다. 판사는 건조하게 피의자의 나이, 생년월일, 행정상 주소를 묻고 주문을 밝혔다. 생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취지의 동물보호법을 위반했고, 이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넷상에 학대 동영상을 업로드 한 뒤 유포하고 범죄를 독려한 점. 이 모두를 고려해봤을 때 징역 4개월 벌금 300만원 240시간의 사회봉사가 적절하겠고, 단 2년간 집행유예를 둔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 번의 스타카토가 방청석을 따라 파도쳤다. 주문을 받아 적던 내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악랄했건만. 고작, 고작, 고작. 벌금 300만원이라니. 동영상 속 그 아이들의 생명의 무게는 300만원. 떨리는 나의 손이 볼펜에 힘주어 300만원 이라는 글자 뒤에 쓸모없이 마침표를 여러 개 찍자, 재판은 끝이 났다.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었지만, 이때까지의 동물학대 재판 중 그나마 형량이 무겁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임정필 재판 후 재판에 참관했던 사람들이 피의자를 에워싸고 있다. ⓒ 김현

임정필 재판 그 후 재판에 참가한 사람들이 피의자를 때리고 있다. ⓒ 김현

피의자의 재판이 끝난 뒤 나를 비롯해 방청석의 절반이 썰물처럼 법정을 떠났다. 나는 그 썰물들이 제각기 바다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파도를 이뤄 피의자의 트럭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법이 내리지 못한 판결을 자신이 대신 내리겠다며. 군중의 파도는 거멓게 트럭을 에워싸고, 그를 끄/집/어/냈/다. 이어 그를 꼬집고, 발로 차고, 뺨을 때리며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뉴욕에서 왔어. 내가 왜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뉴욕에서 와야 하는데?"

"뉴욕에서만 왔게? 대전, 제주 전국에서 다 왔어. 여러분 이 새끼 이제 어떻게 할까요?"

"야 이 새꺄. 너 같은 새끼 때문에, 온 국민이 잠을 못 잤어. 당장 진심으로 사과해. 알았어? 당장 사과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이 외의 수많은 말, 말, 말. 이어지는 '경미한' 폭력. 난 이 상황이 아주 괴이했다. 그래, 피의자가 죄를 지은 것은 맞지. 그것도 아주 악랄한 죄. 그런데, 그것을 타인이 명명하고 마치 파워포스레인저처럼 범죄자를 처단할 수 있단 말인가? '폭력을 통제하는' 폭력은 정당하다고 여기면서, (범죄)폭력이 정당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모순이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폭력의 본질을 가리고, 폭력을 장려하며, 마침내 끝나지 않는 폭력의 순환고리가 완성된다는 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학대와 범죄의 종식 아니던가. 

아우성 같은 주차장을 등지고 집에 돌아오며 피의자의 혼잣말이 들리는 듯했다.

"씨발,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지. 그깟 고양이가 뭐라고. 내가 앞으로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해 완벽한 범죄를 해내겠어. 그리고 너희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더 많은 고양이를 더 고통스럽고 더 치밀하고, 처절하게 죽여 그 사체를 니들 코앞에 들이밀거야. 두고 봐."

나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낙인찍힌 뒤 자타를 향한 모멸감과 분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다시 다른 범행을 저지를 그의 모습이 너무도 눈에 선하게 그려져서. 왜 이렇게 사람들은 타인을 낙인찍는 것에 '익숙'하고, 자신이 정의의 사도 마냥 '대신 벌주려'하며 대의라는 명분의 폭력을 행하려 할까.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의'만 있고, 사적인 분노는 없는지 한 톨의 의심도 왜 하지 않는가.

이제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들도 오늘 재판을 '통쾌하게만' 지켜보진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이 꿈에 나와 내게 "당신 역시 내 마음을 모르잖아."라고 말해줄까.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현재 동물보호법이 아주 미비하고, 약하기에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데는 강하게 동의합니다.
하지만 심판을 내린다는 빌미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데는 반대합니다.
폭력을 종식시키는 폭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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