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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는 은둔 작가였다. 기존 문학계에 전혀 친교와 끈이 없었다. 그저 글만 썼다. 25살에 첫 작품 <합체>를 세상에 내놓고 31살에 마지막 작품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조용해 내놓았다.

2012년 박지리 작가의 <맨홀>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문단과는 거리를 둔 채 꾸준하게 의미 있는 작품을 내놓으며 눈길을 끌었다. 한번쯤 작가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2016년 하반기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문단 권력에 의해 그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정당하게 평가받지도 못했다.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그나마 안타까움을 조금 덜어주는 일도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2016년 12월, 마지막 작품인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출판계에서 꽤 큰 상인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문학 권력에게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좋은 독자들이 아직 남아 있는 출판계에서는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박지리는 문학계에 알려지지 않고 평가받지 못해 안타까운 작가다. 이 글은 그의 작품을 출간 순으로 돌아보며 작가의 문제 의식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글이 촉망받던 젊은 작가가 너무 빨리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길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갑작스레 나타난 참신한 젊은 작가의 첫 작품 <합체>

<합체>
 <합체>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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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의 작가 박지리.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작가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으며, 이전에 작품을 발표해 본 적도 없는 20대 젊은 작가였다. 그런 그가 2010년 한국 청소년문학을 개척한 사계절출판사에서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합체>를 출간한다. 갑작스러운 신예의 등장이었다.

<합체>의 주인공은 '키가 작은' 고3 쌍둥이 형제인 '합'과 '체'다. 이들은 키가 크는 게 최대 소원이다. 어느날 한 형제가 동네 약수터에서 흰 도복에 흰 고무신을 신은 자칭 '계도사'를 만나 키가 크는 비밀스러운 방법을 전수받는다.

결국, 형제는 33일 동안 키 크는 수련을 하기 위해 "닭을 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곳, 천지의 미물이 거물로 거듭나고, 팔푼이가 십분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곳, 뜻만 있으면 백치가 신선이 될 수 있는 곳"(112쪽)인 계룡산의 '형제 동굴'을 찾아간다.

이 작품은 '코믹, 무협, 성장소설의 합체'로, 누구나 겪는 작은 마음의 콤플렉스를 익살스럽고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덕분에 재미나게 술술 읽힌다.

그러나 코믹함 뒤에 숨어 있는 비유를 읽을 수 있는 만큼 이 작품의 의미가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주인공 형제가 진정으로 훌쩍 크게 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은 '계도사'가 아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서커스 공놀이'를 하는 '우리들의 난쟁이 아버지'가 성장의 비법을 슬그머니 흘린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합, 체야. 좋은 공이 가져야 할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다, 바로 공의 탄력도란다."
"탄력도? 그게 뭔데요?"
"(…) 실수로 잘못 쏜 공이 땅에 떨어지더라도 그대로 깨지지 않고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힘을 말한단다."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힘이요?"
"그래, 그래서 쇠공이나 유리공 같은 건 아무리 강하고 예뻐도 절대 좋은 공이 될 수 없는 거지. 걔네들은 쏘기도 어렵지만 일단 쏴도 다시 튀어 오르지 않고 땅에 박히거나 깨져 버리니까."(<합체> 65쪽)

그렇지만 이 진정한 비법을 듣고도 여전히 주인공은 "난쟁이는 큰 공 좀 쏘아 올리면 안 돼?"(82쪽)라고 생각한다. '다시 튀어 오르는 공'이 아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부러워할 만한 '큰 공'을 쏘고 싶어한다.

<합체>의 아버지는 분명 '난쏘공'을 연상시킨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난쟁이 아버지는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의 삶을 통해 사회 현실을 고발했다. 반면 <합체>의 난쟁이 아버지는 새로운 비유를 통해 한없이 쪼그라든 우리에게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성장의 메시지를 전한다.

막을 수 없는 '존재의 구멍'을 탐구하는 <맨홀>

<맨홀>
 <맨홀>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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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의 첫 작품 <합체>가 코믹함을 무장해 유쾌하게 술술 읽히면서 비유를 생각하게 한다면, 두 번째 작품 <맨홀>은 '살인을 저지른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해 시종 어둡고 무겁다. 또한 <합체>가 장르의 혼합을 꾀한다면, <맨홀>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다. 이 기법은 좀처럼 인식하기 어렵고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의 구멍'을 다루는 소설의 주제와 어울린다.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은 청소년 보호관찰소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현재와 어린 시절부터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지난 시간이 주인공의 고백 속에서 구성된다. 이 흐름을 통해 '맨홀'이라는 상징으로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은 가족에게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저녁마다 누나와 함께 밖을 헤매곤 한다. 그러다 수상한 어둠이 있는 맨홀 안으로 들어가 안식을 느끼게 된다. 맨홀 뚜껑을 처음으로 연 날 주인공은 커다란 구멍에 빠지는 악몽을 꾼다.

"갑자기 천장에 작은 점 하나가 생겨났다. 콩알만 했던 그 점은 다음 단계에선 사람 눈동자만큼, 그다음 단계에선 사람 얼굴만큼 커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자라나 온 천장을 뻥 뚫린 구멍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얼른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구멍은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내 눈 바로 앞에서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머리에서부터 몸통, 다리까지 내 몸은 점점 그 구멍 속으로 야금야금 먹혀 들어갔고 나는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필사의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맨홀> 91쪽)

'나'는 존재의 구멍(무의식, 공허, 진실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함께 맨홀 속으로 들어가곤 하던 누나는 '어른'이 되어 더는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누나는 이제 '연극'을 한다.

"누나가 출연한 연도에 따라 차례대로 붙인 일곱 개의 포스터는 그 자체로 집을 떠난 누나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보여 주는 행적이 되었다. (…) 누나에게는 정말 '삶'이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나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를 볼 때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감동을 받는 한편, 저 세계, 누나의 삶에서 완전히 제외된 것 같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들곤 했다."(29~30쪽)

'맨홀'이 상징적인 만큼 '연극'도 상징적이다. 사실, 누나는 전부터 연기를 했다. "조명이 켜진 무대에 오르기 훨씬 전부터 누나는 이 집에서 연극을 했다."(<맨홀> 26쪽) 누나만이 아니다. 엄마와 누나와 주인공 모두 존재의 구멍을 적당히 봉합하는 연극을 해왔다.

"엄마와 누나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셋은 봉합의 전문가들이었다. 특히 엄마는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새벽까지 얻어맞고도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을 위해 태연히 아침 밥상을 차렸던 엄마와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더 제대로 된 집안의 딸인 것처럼 연기를 했던 누나, 보고 들은 더러운 것들을 몸 안에 꽉 가둔 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 우리 세 사람은 발광에 가까웠던 내 난동 역시 침묵으로 잘 봉합해서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맨홀> 187∼188쪽)

그렇지만 존재의 구멍은 우리의 본질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해도 누구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각기 '삶의 의미'를 정의하면서 잠시 잊거나, '연극'을 통해 벗어난 것처럼 구는 일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니까 <맨홀>은 우리가 살면서 벌이고 있는 '연극'을 까발리는 소설이기도 하다.

<맨홀>은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몽롱한 백일몽 같은 소설이다. 그렇지만 흡입력이 있어 한 번 잡으면 저절로 주욱 끝까지 읽게 된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며 존재의 진실에 다가간다.

"인간은 아예 구멍 그 자체로 이루어진 거 아닐까요?"(<맨홀> 21쪽)

세상에 대한 조롱과 낮은 곳의 저항 담은 <양춘단 대학 탐방기>

<양춘단 대학 탐방기>
 <양춘단 대학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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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진실을 탐구하는 시도인 <맨홀>로 신선한 충격을 준 박지리 작가는 세 번째 책 <양춘단 대학 탐방기>(아래 <탐방기>)로 이제 우리 시대를 들여다본다. 주인공은 60대 청소 노동자 춘단이다.

이 작품에는 문장을 읽는 맛이 있고, 장면 장면이 재미나다. 곳곳에 익살스러운 표현이 있으며, 작품 전체에 풍자와 조롱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져 있다.

여기에는 "불은 있는 대로 지펴 냄비는 끓게 해놓고 책임지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 덜 된 밥의 불을 끄고 냄비 뚜껑을 닫아"(<탐방기> 94쪽) 버리는 시대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는가 하면, "진실을 얇게 덮고 있는 금박을 긁어보면 지워진 자리에 '강제'라는 말이 드러나는 것이 여태껏 조직 명의로 발행된 모든 복권의 실체"(<탐방기> 165쪽)라고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까발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의료 체제나 대학 행정 등에 대한 조롱도 넘쳐난다.

'대학을 다니는' 주인공 춘단은 그저 청소 일만을 하지 않는다. "시간 날 때마다 여그저그 돌아다니면서 도둑 공부 들어야제, 친하게 지내는 교수 선생이랑 밥도 같이 먹어야제, 요즘 대학생들은 뭘 하고 어떻게 사나 다 듣고 보고"(<탐방기> 153쪽) 한다. 특히 건물 옥상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게 된 대학 강사와의 대화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저가 살아본 적도 없는 세상을 워떻게 그리워한다는 건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가는 거라. 한 번이라도 겪어봤어야 그리워하든 보고 잪아 하든 하는 거 아니오? 아, 우리가 먹는 이 밥만 해도 그렇지 않소? 뭐가 먹고 잪아도 어릴 때 한두 번씩 해먹던 음식이나 그리워하지 생판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뭔 맛인 줄 알고 그리워하겄소?"

(…)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그리워하고, 살아본 적 없는, 저 달나라에나 있을 법한 세상을 그리워하는 걸 이상이라고 하는 거 아닐까요?"(<탐방기> 193~194쪽)

작품 속에서 내내 불의가 정의가 되는 세상은 물론 무의미한 저항까지도 풍자하고 조롱하던 작가가 갑자기 이상에 대한 지향을 슬그머니 꺼내 놓는다.

주인공 춘단이 다니는 대학에는 부처님 상‧예수님 상보다 큰 거대한 코끼리 석상이 있다. 그것은 대학의 상징이며 시대의 상징이다. 처음에 춘단은 그 코끼리 석상에 압도당한다. 그러나 '석공의 자손'인 춘단은 세상의 위선과 허상을 깨달아 가면서 거대한 코끼리 석상을 부술 은밀한 계획을 짠다.

과연 한 시대의 무너짐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작품에는 위선적인 시대를 향한 낮은 자의 은밀한 저항이 담겨 있다. 이 작품 또한 진지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풀어낸 솜씨가 20대의 젊은 작가의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한편 박지리의 작품은 통상적인 소설 작법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예상치 않은 장면에서 연극적 기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첫 작품 <합체>부터 그랬다. <양춘단 대학 탐방기>에서는 그것이 더 두드러지는데, 여기서는 환상적 리얼리즘을 활용한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어느 하나의 종에 속하지 않는 '혼종'(hybrid)이다.

간혹 어떤 이는 그것을 소설 작법의 미숙함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는 작법에 '바른 전통'(canon)이 있다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어찌 소설 작법에 '바른 계통'은 있을 수 있는가?

마지막 작품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다윈 영의 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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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의 마지막 작품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아래 <악의 기원>)이다. '이번에도 갑자기' 범죄 추리소설이다. 그렇지만 다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추적한다. <맨홀>의 문제의식이 확장되어, 존재의 구멍을 가리기 위한 분투가 펼쳐진다.

이 책은 8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이다. 그렇지만 가독성이 좋으니 걱정할 것 없다. 소설의 배경은 상류층이 사는 1지구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는 9지구까지 각기 갈라져 있는 미래의 가상 사회다. 주인공은 최고의 명문 학교인 프라임스쿨을 다니는 모범생 다원 영이다.

다윈 영에게는 1지구를 비판하고 의심하는 프라임스쿨의 아웃사이더 레오라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9지구 사람에게 살해당한 제이 삼촌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루미가 있다. 주인공이 60년 전 일어난 12월 폭동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줄거리의 핵심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문교부 차관이자 프라임스쿨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니스 영이다. 작가는 또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슬그머니 중요한 정보를 흘린다.

"아버지, <종의 기원>은 16번이에요. 왜 자꾸 이 책을 맨 앞에 놓으시는 거예요."
"그게 보기가 훨씬 좋아서. <종의 기원>이 첫 번째에 있어야 모든 순서가 바로 잡히는 기분이 들거든."(<악의 기원> 346쪽)

한 개인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 즉 사회화 과정을 거쳐 한 사회 속에 자리매김하는 기원은 존재의 구멍을 적당히 가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대화는 그것을 암시한다. 이 외에도 이 작품은 법의 효용, 운명의 수레바퀴 등에 대해 생각게 한다. 추리소설이니 소개는 이쯤만 하는 것이 독서의 재미를 위한 배려겠다.

이왕이면 <맨홀>을 먼저 보고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맨홀>의 문제의식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맨홀>과 <악의 기원>은 짝이 되는 책이다.


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박지리 지음, 사계절(2010)


태그:#박지리, #합체,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다윈 영의 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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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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