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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대청소의 시간이 드디어 돌아왔다. 갖은 잡동사니부터 옷, 책, 프린트물에 이르기까지 제때 처분하지 못한 물건들이 먼지를 머금고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 그러던 차에 서점 한 귀퉁이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곤도 마리에가 쓴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The Life-Changing Magic of Tidying Up)이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 더난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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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워서 소설책을 읽듯 단숨에 끝낼 수 있었다. 단순히 생활 팁을 소개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인생 이야기부터 정리의 미덕과 생활의 지혜까지 다루고 있어, 도대체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곤도 마리에 자신의 캐릭터 성격이 담담하게 드러난 지극히 개인적 이야기가 묘하게 흥미를 자극한다.

이 책은 이미 40개국에서 700만 권 이상 팔렸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무려 124주 동안 머무르는 중이다. 저자인 곤도 마리에는 '레이첼 레이 쇼'를 비롯한 미국의 각종 TV 토크쇼에 출연하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잡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5년에 타임스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곤도 마리에는 미디어 외의 현실 속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최근에는 정리 전문가를 육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미국에서 만들었고 아이폰 앱도 출시했다. 곤도 마리에의 도움으로 집과 인생을 정리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도 올해 6월 미국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일본인 작가로 미국에서 이 정도의 인지도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 외에는 없을 것이다. 곤도 마리에가 정리의 마법으로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는 2012년에 번역되었지만, 영어권에서는 비교적 늦은 2014년에 소개되었다. 저자인 곤도 마리에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여, 인터뷰 등을 통한 미국 시장 내에서의 마케팅 전략을 추진하는데 저자의 기여가 크지는 않았다.

이에 곤도 마리에의 책을 출판한 텐스피드 출판사 역시 책의 성공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디어 서평도 좋은 편이었고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의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곤도 마리에의 정리 방법에 대한 좋은 입소문이 나면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게 되었다.

출판사의 적극적인 마케팅보다는 실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한 입소문이 책을 알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을 읽은 미국인들은 이제 '곤도'라는 이름을 '정리하다'라는 동사로 대체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곤도 마리에가 쓴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The Life-Changing Magic of Tidying Up)의 미국판 표지.
 곤도 마리에가 쓴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The Life-Changing Magic of Tidying Up)의 미국판 표지.
ⓒ 텐스피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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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생활 철학, 정리의 팁, 자기계발이 주요 내용으로 이뤄진 다소 복잡하고 독특한 구성의 책이지만 그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곤도 마리에는 손으로 만져봤을 때 자신에게 기쁨이나 설렘을 주는 물건은 간직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감동을 주는 물건만 남기고 다 정리하면 생활의 스트레스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감동이 없는 물건은 삶을 짓누르는 고통이자 만성 질병이 되어 현재의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망령이 된다.

물건과 대화를 시도하는 다소 엉뚱한 의식을 실천하는 저자를 보며 떠오른 영화가 한 편이 있다. 바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연인과 헤어진 후에 집안의 사물과 대화를 나눈다. 곤도 마리에는 의인화된 사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떠나보낼 때는 감사의 말을 꼭 전하라고 권유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깃든 정령이 이 책의 주요 인물인 셈이다.

마치 판타지 영화처럼 사물과 교감하는 장면들이 있어서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는 새로 산 휴대폰으로 과거의 휴대폰에게 문자를 보낸 경험을 공유한다. 신비롭게도 그동안 고마웠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그 오래된 휴대폰은 바로 고장이 나서 다시는 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은 물건을 정리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관계나 직장까지 정리할 것을 제안한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직장을 관두거나 연인과 헤어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설레지 않는 일과 인간관계는 정리 대상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목적은 정리 자체가 아니다.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필요 없는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소중한 물건이나 삶의 가치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잊고 있었던 꿈을 찾아서 떠난 사람의 이야기도 깊은 울림을 준다. 책은 사람의 욕망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한동안 유럽 여행에 관한 책을 사 모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 책을 정리하면서 읽지 않는 책 중에 몇 권을 꺼내서 책 장을 넘기며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어쩌면 마리에가 권하고 있는 건 일상에 찌들어 살면서 잊고 있는 꿈을 지금이라도 다시 살려보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반소비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이 소비의 천국, 자본주의 미국에서 주목받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인구의 5%밖에 차지하지 않는 미국이 세계의 전체 에너지의 24%나 사용하고 있다. 월마트와 아마존으로 구매한 물건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는 미국인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내다 버릴 것을 강요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곤도 마리에는 옷, 책, 프린트물 등의 순으로 한꺼번에 물건을 정리하는 의식을 통해서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곤도 마리에는 옷, 책, 프린트물 등의 순으로 한꺼번에 물건을 정리하는 의식을 통해서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 류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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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된 2014년에 미국판 아름다운 가게인 굿윌(Goodwill) 뉴욕지부에는 기부가 22%나 증가했다고 한다. 책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시대적 흐름과 우연히 일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이 낭비되는 물건에 대한 미국인의 집단적인 자각이 아닐까. 소비 과잉과 낭비의 시대에 이 책이 주목받는 건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직업으로서 정리 전문가가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과도한 소비와 물건 집착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리얼리티쇼가 나온 것을 고려한다면 이 책의 인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집과 자동차를 공유하는 경제가 호황을 이루고 있는 미국에서 소유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이제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곤도 마리에를 예찬하는 미국인이 늘어나는 것은 소비주의 사회에 질린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많은 책을 처분했다. 예전에 읽고 싶은 마음으로 샀지만, 지금은 관심사가 달라져서 안 읽게 되는 책과 과감히 이별했다. 책 욕심이 많아서 그 일이 쉽지 않았지만 실천하고 나니 책꽂이도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 옛날의 열정으로 다시 책을 꺼내 읽게 되는 경우도 있어 독서가 늘었다.

내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다른 물건도 집어 들었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기념 티셔츠, 결혼식날 입었던 한복,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누군가에게 받은 열쇠고리 등의 물건들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대부분은 기쁨이나 감동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손에 먼지만 잔뜩 묻었다. 아직 '곤도'해야 할 물건이 집안에 많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물건에 대한 집착은 조금 털어낸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짐을 덜어내고 남은 물건은 예전과 달리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대하게 되었다. 정리라는 행위는 결국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한 시간인 셈이다. 나의 꿈이나 욕망에 더 내밀하게, 더 진솔하게 알기 위해서 더 많은 과거의 물건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ryudonghyup.com)에도 게재됩니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더난출판사(2012)


태그:#청소, #정리, #책, #곤도 마리에, #자기계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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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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