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아들 친구가 구속된 모양이에요. 줄곳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한 사이라 저도 잘 알고 있던 아인데..."

작년에 대학엘 갔으니 이제 2학년인 셈이죠. 한눈 한 번 안 팔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아이였어요. 우리 애랑 친하게 지내더니 대학도 같은 학교를 가더라고요. 올해엔 두 녀석이 군대도 같이 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선배들과 무슨 공부를 하다 잡혀 간 모양이에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을 보면 걱정이 많이 드네요.

▲ 1987년 5월 1일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며 종로3가 도로에 누워 시위를 시작하는 학생들 ▲ 1987년 5월 12일 '4. 13 호헌'을 비판하고 독재정권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대자보와 이를 꼼꼼히 읽고 있는 대학생들

박종철은 피의자로 끌려간 게 아니라 수배된 학생을 찾아내기 위해서 참고인으로 끌려갔을 뿐이었다. 참고인으로 끌려가는 것은 모든 학생들에게 해당될 수 있었고, 또 대학생을 자식으로 둔 모든 부모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이 땅의 어느 부모에게도 결코 남의 일로 여겨질 수 없었고, 가슴이 떨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6월항쟁-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 서중석, 2011

올해 초엔 같은 학교 학생 한 명이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결국 죽어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경찰이 찾던 사람은 다른 학생이었데요. 찾던 학생과 아는 사이라고 참고인으로 잡아간 거라 하더라고요. 다짜고짜 옷부터 다 벗기고 물고문을 했나봐요. 그러다 그 사달이 난 거래요. 사람 목숨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데, 우리나라 경찰들은 그걸 잘 모르나봐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죄를 짓지 않아도 경찰에게 잡혀갈 수 있고, 운 나쁘면 고문을 받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세상이라는 말이잖아요. 우리 아들 같이 평범한 애들도 어느 날 갑자기 경찰한테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이러니 어떻게 마음 놓고 살 수 있겠어요. 이건 잘못돼도 뭔가 크게 잘못된 일이죠. 절대 그냥 넘어가선 안될 일이에요.

▲ 1987년 5월 27일 "결의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발기인 일동

현 정권이 저지른 광주사태, 박종철 군·권 양 등 고문과 고문 범인 조작, 장영자·범양 사건 등 권력부패사건 및 그 진상 조작과 같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유린한 수많은 범죄의 진상규명을 이 정권에 기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사적 범죄 진상규명 국민운동을 벌인다.
1987년 5월 27일 "결의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발기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