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요? 설마, 그 말을 믿어 달라는 건가요?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순 없습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새로워 진건 하나도 없네요. 모든 게 뒤죽박죽이에요. 연말에 나왔어야 하는 책은 아직도 교정 중이고요. 올해 첫 책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회의를 하다가 소식을 들었어요. 편집장이 낮부터 술이나 한 잔 하자네요. 하긴 술 없이 맨 정신으로 버텨내기가 어디 그리 쉬운 날들인가요.

▲ 1987년 1월 26일 '박종철 군 추모 및 고문 근절을 위한 인권회복 미사'를 마친 시민들이 명동성당 밖으로 나오자 이를 막아 서는 전경과 백골단 ▲ 1987년 1월 19일 '고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고문 경찰들이 구속된 후 구치소로 이송되는 모습

우리는 박종철 군의 죽음이 반인간적 고문행위에 의하여 저질러진 것이라고 단정하고자 한다. 세계의 인권문제가 되었던 김근태 씨 고문사건에서, 부천서 성고문사건에서, 그리고 수없이 문제가 되었던 각종 고문사건과 의문의 변사사건에서 우리는 박 군의 죽음과 같은 인간말살의 최악의 사태를 염려해 왔다. 마침내 몸서리치는 일이 눈 앞에서 확인되고 있다.
1987년 1월 17일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사람이 죽었다", 민주헌정연구회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고문이나 실종이 처음은 아니잖아요. 이번에 고문 받다 죽은 학생은 수배자도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경찰이 좀 너무한 것 같아 보여요. 무고한 사람 끌고가 죽여 놓고 하는 변명이 너무 어이가 없잖아요. 소설의 핵심은 리얼리티예요. 리얼리티가 떨어지면 3류가 되기 마련이지요. 경찰이 B급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거겠죠. 정말 참담한 심정이에요.

그런데 요즘 박종철 군 고문 사망 관련 뉴스가 확연히 줄어든 것 같아요. 김만철 씨 가족 탈북 소식이 모든 걸 다 덮어버리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11명 가족이 한꺼번에 탈출한 사건이다 보니 다른 뉴스 가리기가 쉬운가 봐요. 그런데 그 가족이 마지막으로 향할 '따뜻한 남쪽 나라'는 어디쯤 있을까요. 차가운 겨울바람에 매서운 북풍이 겹으로 몰아치는 대한민국엔 언제쯤 따뜻한 봄날이 찾아올까요.

▲ 1987년 1월 26일 “이북 일가족 탈출 사건 진상 보고”, 민주화추진협의회

우리 민주화추진협의회는 정부가 고 박종철 군 고문 살인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항의의 초점을 흐리기 위해 북괴 김만철 의사 일가족 탈출 사건을 왜곡 보도하는 데 대해 다시금 분노를 느끼며 우리 민추협에서 입수한 사건 진상을 밝힌다.
김만철 씨는 청진호 선장이자 북괴의 의사 자격증을 소지한 자로서 북괴를 탈출한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한국, 일본, 북괴로 돌려보내는 것을 결사반대하고 있으며 다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보르네오 포함), 대만으로 보내줄 것을 희망하고 있음.
1987년 1월 26일 "이북 일가족 탈출 사건 진상 보고", 민주화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