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네가 너무 조용해서 을씨년스럽네요. 경찰 물고문으로 대학생이 죽었다는 뉴스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대학교 근처 동네의 겨울은 유난히 쓸쓸해요. 여름방학 때랑 달라서 해도 많이 짧아지고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네요. 낮에는 최루탄 소리에, 밤에는 술 마신 학생들의 고성방가에 시끌벅적한 동넨데, 겨울방학만 하면 이렇게 적막에 쌓이곤 하죠.

▲ 1987년 1월 20일 '고 박종철 열사 추모 행사'를 마치고 교내 행진에 나선 동료 학생들 ▲ 1987년 1월 23일 '고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 현장 검증 장소인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

지난 1월 14일 새벽 2시경, 하숙집 앞에서 경찰에 의해 불법 연행된 박종철 열사가 집단 폭행, 물고문, 전기고문으로 물에 절인 온몸에 타박상과 19군데의 피멍 자국을 남긴 채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차디찬 밀실 바닥에서 숨졌다. 당초 경찰은 이 사건을 은폐시키려 하였으나 검진을 했던 오연상 의사의 용감한 증언과 양심적인 몇몇 기자들의 조사에 의해 그 일부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1987년 "우리의 형제 박종철 동지는 죽어서도 살아 외치고 있다!"

그런데 골목에서 서성대는 저 험상궂은 사내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요? 경찰 같아 보이긴 하는데 우리 동네에서 왜 저러고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눈에 불을 켜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살벌한 눈빛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네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참 안 좋더라고요. 사람 많은 동네에서도 저러고 다니는데,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선 오죽하겠어요.

아까 낮엔 우리 집 하숙생이 기별도 없이 고향에서 돌아왔어요. 개강 때나 돼야 다시 오곤 했는데 오늘은 좀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생이 저녁 먹으며 했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도네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뉴스와 너무 다른 말을 하기에 입조심을 시키긴 했어요. 무서운 세상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문이라니요. 경찰이 학생을 고문해서 죽이다니요. 그것도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말이에요.

▲ 1988년 1월 14일 弔詞

종철아! 지금 우리가 무슨 말로 너의 혼을 달랠 수 있을까. 종철아! 그 춥고도 눈보라 치던 지난 겨울 너의 시신이라도 이 군사정권으로부터 되찾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래서 결국 재로 변한 너를 벽제에서 발견하고 울며 울며 되돌아섰던 이 엄마의 한을 잊을 수가 없구나. 이제 알고 보니 그 당시 경황이 없었던 너의 아버지를 그 가증스러운 박원택이가 속여서 벽제로 갔다니 더욱 복받쳐 오르는 원통함을 누를 수가 없구나.
1988년 1월 14일 "弔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