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87년 3월 3일입니다. 경찰 고문에 희생된 박종철 군의 49재 날이에요. 그런데 거리엔 최루탄만 날리네요."

조계사에서 범종단적으로 올리기로 했던 박종철 군의 49재가 결국 취소됐다는 소식이에요. 보이지 않는 압력에 밀려 조계사 대신 부산 괴정동의 작은 절로 바뀐 거지요. 경찰은 쫒고 시민은 쫓기는 험한 모습이 하루 종일 전국에서 펼쳐졌어요. 전투경찰이 도시를 봉쇄하고 거리를 장악해 버렸거든요. 온 세상이 깊은 슬픔과 매운 최루탄으로 뒤덮인 하루였어요.

▲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영가 49재 천도식 ▲ 1987년 3월 3일 고 박종철 군의 49재를 맞아 서울 시내에서 진행된 '3. 3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오늘 우리는 우리를 자유민으로 지켜주기 위해 가장 반인간적으로 죽임을 당한 한 젊은 영혼을 위로하는 종교의식의 날을 맞아, 바로 68년 전 자유민임을 선언한 선열의 함성과 선혈이 가득한 바로 이곳에서 민족과 민주와 문명의 이름으로 고인과 민주열사, 독립선열을 추도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요 군부독재의 유지 수단인 고문을 영원히 추방할 것을 우리 온몸으로 다짐하는 고문 추방 민주화 평화대행진을 출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987년 3월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국민결의문(초안)"

지난 2월 7일 거행된 박종철 군 추모식 때에도 정말 서럽고 죄송했어요. 경찰이 절 입구에 진을 치고 있어 박종철 군 친척들도 못 들어왔대요. 스님들도 모두 자리를 슬며시 피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박군의 어머니와 누나가 추모 타종만 겨우 울렸대요. 젊은 생명을 그렇게 보낸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사람들이 모여서 추모도 하지말라는 건 어느 나라 법도란 말인가요.

부끄러워서 부처님 뵐 낯도 없네요. 사람이 사는 세상에선 사람이 해야할 예의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젊은 승려들과 시민들이 전국에서 최루탄을 뚫고 49재를 올렸다고 하니 고마움의 작은 빛이 비치는 것만 같아요. 나무 아미타불.
박종철 군의 마지막 길에 부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매운 최루탄 대신 온누리에 평화가 가득 차길... 두 손 모아 염원드려요.

▲ 1987년 3월 3일 어깨동무를 하고 청계천을 지나고 있는 시민들

우리는 왜 행진하는가!
1. 길거리에서의 검문·검색, 불법 연금, 강제연행을 근절하기 위하여
2. 구류, 단기 구금, 압수수색영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3. 모든 고문수사를 근절하기 위하여
4. 고문에 의한 자백을 증거로 삼는 재판을 없애기 위하여
5. 고문살인사건(우종원, 김성수, 신호수 등)과 고문·용공조작사건(백기완, 이태복, 김근태, 김문수, 권양 등)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하여
1987년 3월 3일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 고 박종철 군 범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 신한민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