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있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 감옥이에요. 6월 초에 선배들을 따라 거리 시위에 갔다가 백골단한테 잡혀 여기까지 끌려 왔어요."

닭장처럼 생긴 전경버스에 끌려가 두들겨 맞을 땐 정말 눈 앞이 깜깜했어요.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구요. 경찰서에서 조서를 쓸 때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형사가 이것저것 묻길래 아는 대로 대답해 줬는데, 내가 읽은 책이 문제가 된 모양이더라구요.

▲ 1987년 6월 11일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며 거리 시위에 참여한 시민 학생들 ▲ 1987년 6월 연세대학교 앞 도로에서 연좌시위 중인 대학생들과 이를 막으려고 출동한 전경들

오늘 우리의 이 구국대열은 오직 학문적 정의감과 청년학도의 시대적 양심에 발로한 것이며 조국과 민족을 분단과 예속, 독재와 학정의 계곡에서 구원하여 통일과 민주의 새 세상을 안내하기 위함이다. 떨쳐 일어서라, 청년학도여!
1987년 6월 10일"구국 출정 선언문 - 군부독재 타도하고 민주정부 수립하자",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우리 역사랑 사회과학 책을 읽으면 죄가 되는 세상이래요. 나는 지금 좌경 빨갱이라는 죄목으로 교도소에 갇혀 있어요. 여기는 또 하나의 세상인 것 같아요. 어제부터는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지금 저랑 같은 방을 쓰는 제소자 중에 바둑을 정말 잘 두는 형이 한 명 있는데 정말 고수거든요. 그 형은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인 같아요.

다음 주부터는 양심수 형님들이 단식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민주 회복과 재소 환경 개선'이 목적이래요. 형님들이 징벌방으로 끌려가면 두 번째 단식이 이어질 거예요. 그땐 저도 참여하려고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밥 굶는 건데 여기선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요. 전두환이 빨리 물러 갔으면 좋겠어요. 나도 밥 많이 먹고 맘 편히 공부 좀 하고 싶어요. 여가 시간엔 여기서 배운 바둑도 두고 싶고요.

▲ 1987년 6월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가두 시위를 벌이다 백골단에 강제로 연행되고 있는 청년

거리에 힘차게 울려 퍼졌던 애국가, 어두워가는 조국의 하늘에 길게 울려 퍼진 타종과 경적 그리고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구호와 함성은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염원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하나 된 국민의 힘이 독재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6.10 국민대회는 끝이 아니라 이 땅에 기필코 민주사회를 이룩하겠다는 '민주화국민대장정'의 첫걸음입니다. 어떠한 탄압과 어려움에도 우리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민주순례'의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1987년 6월 11일 "성명서 - 6.10 국민대회를 마치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