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 1면도 대통령 선거 뉴스고, 저녁 9시 뉴스도 온통 대통령 선거 이야기예요. 온 국민의 축제가 시작된 거죠."

직업이 정치부 기자다 보니 다니는 데도 많고 만나는 사람도 다양해요. 그러다 보니 듣는 말도 많고 접하게 되는 정보도 만만치 않아요. 지금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모두 대통령 선거에 몰려 있는 것 같고요. 6월이 만들어 낸 새로운 풍경이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펼쳐지고 있네요. 이게 바로 민주주의인가 봐요.

▲ 1987년 11월 20일 동두천 유세장에서 화환을 목에 걸고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 후보 ▲ 1987년 11월 15일 마산 유세장에서 시민들의 호응에 화답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 후보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번 선거에 반드시 군부독재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지역감정과 개인의 무 비판적 또는 비판적 선호도를 떠나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양 김 씨의 후보 단일화를 쟁취해야 합니다. 양 김 씨의 동시 출마는 군부독재 세력의 금권, 관권 부정선거를 정당화할 위험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염원인 민주 승리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기필코 막아야 합니다.
1987년 11월 19일 "군부독재 종식 후보단일화 쟁취를 위한 단식 농성을 시작하면서", 계훈제 등 19인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아요. 여권은 일찌감치 노태우 씨로 후보를 정하고 열심히 뛰고 있는데, 야권은 사분오열 갈라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에요. 국민들 의견도 '후보 단일화' 주장과 '비판적 지지' 입장으로 갈리는 것 같네요. 여기에 '독자 후보 추대론'까지 더해지는 형국이니 세상은 점점 짙은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요.

원래 민주주의라는 게 조금 소란스럽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한 달 남았네요. 다음 달에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첫걸음을 위해 대통령 선거 투표장으로 갈거에요. 그리고 누군가는 대통령이 되겠죠. 하지만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의 아까운 희생이 헛되지 않게 말이에요.

▲ 1987년 11월 1일 명동성당에 모여 '후보단일화 관철을 위한 삭발식'을 거행한 재야인사들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주인 된 자세로 지키고 건설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모든 부정을 폭로, 저지하고 공정선거의 실현에 앞장서기 위하여 공정선거감사운동을 전개하며, 다음과 같이 우리의 결의를 밝힌다.
1987년 11월 20일 "결의문", 민주쟁취국민운동 공정선거감시 전국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