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청이 난리도 아니었어요. 경찰차에 소방차, 헬기까지 왔으니 완전히 전쟁터였죠. 다친 사람도 많다던데 걱정이에요."

여기에서 오랫동안 수퍼를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건 처음 봤어요. 뉴스를 보니까 많을 땐 6,000명도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구청에 모인 사람들을 쫒아 내려고 출동한 경찰만 4,000명이 넘었대요. 잡혀간 사람만 1,000명이 넘는 큰일이 요 며칠 사이 우리 동네에서 벌어졌던 거예요.

▲ 1987년 12월 16일 구로구청에서 발견한 부정 투표함을 지키고 있는 시민들 ▲ 1987년 12월 16일 "부정선거 고발 소식", 민주쟁취국민운동 공정선거감시본부

부정 투표함은 11시 20분 봉고차, 봉고 트럭(서울7다7870) 안에서 발견되었다. 정부 여당은 트럭에 사과, 빵 궤짝으로 위장한 부정 투표함을 숨겨갖고 있다가 시민들에 의해 마당에서 발각되었다. 시민들은 즉각 봉고차 및 투표함을 사수하였다. 또한 시민들은 구로구청 입구에 즉시 '특보'를 써 붙이고 "경악한다, 국민들은 투표함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1987년 12월 16일 "부정선거 고발 소식", 민주쟁취국민운동 공정선거감시본부

부정 투표함이 사람들한테 걸렸대요. 십 몇 년 동안 대통령도 직접 뽑아보지 못하다가 이제 민주주의 좀 해볼까 했는데, 의심스러운 투표함이 딱 걸렸으니 그 사달이 난 거겠죠.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 났으면 경찰이나 공무원은 중립적으로 처리해야 해요. 그런데 무조건 투표함만 빼가려고 했으니 사람들이 가만있었겠어요? 항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래야 진짜 민주주의 아닌가요?

야권은 단일화도 못한 채 서로 비방이나 하고 앉아있고, 선거 직전엔 칼기 폭파 테러까지 일어나고, 유세장에선 욕설만 오고 가고, 투표일엔 정체가 의심스러운 투표함이나 걸리고... 민주주의란 게 말은 쉬워 보이는데, 실제로 해보려고 하니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갈 길은 가야 하고, 할 일은 해야지요.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다시 되돌아 갈 순 없잖아요.

▲ 1987년 12월 16일 부정투표함 밀반출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구로구청 앞 마당에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 시민들

이번 구로구청 사건의 진압을 보고 많은 시민들은 '제2의 광주사태', '제2의 건대사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로구청의 부정선거 항의투쟁이 기폭제가 되어 부정선거 규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선거를 위한 저들의 모종의 음모가 폭로되는 것을 막아내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의 원인이 후보 단일화 실패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근본적 원인은 명백히 전두환 노태우 일당의 부정선거 음모와 그 행위에 있습니다.
1987년 12월 24일 "성명서",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투쟁 피해자 가족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