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예요. 국민들과 함께 독재정권에 저항해야 하는 지성인이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수많은 폭력을 목격했어요. 학교에 전투경찰이 상주하며 학생들과 교수들을 감시하던 때도 있었어요. 수업 중인 강의실에 경찰들이 쳐 들어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제자를 강제로 끌고 간 적도 많았고요. 그 꼴을 직접 눈 앞에서 보고도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속으로 울분을 삭히는 것밖에는요. 나약한 지식인의 한계였던 거죠.

▲ 1987년 7월 1일 "독재타도" 글귀가 새겨진 경찰용 방패를 들고 고 이한열 군이 잠들어 있는 영안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학생들 ▲ 1987년 7월 4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독재 타도와 양심수 전원 석방을 요구하는 민가협 회원들과 학생

국민 여러분! 우리 민가협은 한열 군의 죽음을 맞아 다시 가열찬 투쟁을 요구하는 이 시기에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인 양심수 전면 석방을 위한 투쟁을 온 국민과 함께 벌여 나갈 것을 호소합니다. 6.29발표에서 노태우는 선별 석방을 말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석방 제외 대상 즉 소수 극렬분자, 반국가 사범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987년 7월 9일 "양심수 전원을 석방하라",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

두려움과 좌절감에 현실을 외면한 적도 있었어요. 폭력이 두려워 스스로 양심을 검열했던 거죠. 제자들에게는 학생답게 공부만 하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올해에만 두 명의 제자를 또 잃었네요. 한 명은 물고문에, 다른 한 명은 직격 발사된 최루탄에 말이에요. 감옥으로 끌려 가는 학생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었어요.

6월항쟁은 우리에게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선물해 줬어요. 이에 맞춰 대학도 변할 겁니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은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발전하기 때문이에요. 양심이 선택한 길을 가기 위해 지성의 힘을 모으기로 했어요. 힘들게 다시 세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니까요. 새세상에 맞춰 새출발을 해야겠지요. 다시 민주주의를 잃지 않도록...

▲ 1987년 7월 6일 '고 이한열 열사 추모식'을 시작하기 앞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묵념하는 학생들

1987.7.26 현재 협의회 가입 회원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 : 11개교 92명, 경기 : 3개교 66명, 강원 : 2개교 7명, 충북 : 3개교 81명, 충남 : 5개교 40명, 전북 : 1개교 20명, 전남 : 1개교 60명, 경북 : 3개교 134명, 경남 : 1개교 40명, 제주 : 1개교 2명
* 부산, 대구, 광주는 인접도에 포함
1987년 7월 26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