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 청년이 버스 안으로 종이 무더기를 던져 놓고 사라졌어요. 오후 6시 경적 시위에 참여해 달라는 유인물이었어요."

머리에 최루탄을 맞은 대학생이 중태에 빠졌다는 긴급 뉴스가 라디오에서 한참 나올 때였어요.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한 요즘이에요.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이런 상황이 끝날지 가슴이 먹먹하기만 해요. 6월이 되면서 시내 도로가 점점 더 답답해졌네요. 어디서부터 막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 위에 서 있기 일수예요.

▲ 1987년 6월 버스에서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과 이를 지켜보며 박수치는 시민들 ▲ 1987년 6월 15일 이한열(경영2년)군의 병세와 치료현황

이 군은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15분경 두뇌 손상으로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내원하였음. 내원 당시 신경학적 검사상 의식은 혼미한 상태였으며, 좌측 후두부에 두피 열상과 우측 이마에 찰과상이 있었음. 단순 두부 엑스선 상 좌측 후두부에 직경 5mm의 원형 두개골 골절이 있었으며, 이물질들(약 2mm 크기)이 나타났고, 뇌전산학단층촬영상 좌측 후두악부의(소뇌 및 뇌간부)에 뇌좌상, 뇌출혈 및 이에 동반된 뇌부종과 5개의 금속성 이물질이 있었음.
1987년 6월 15일 "이한열(경영 2년) 군의 병세와 치료 현황"

유월의 뜨거운 해가 중천을 지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6시를 향해가고 있었어요. 오늘따라 운전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네요. "사람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려줄까", "혹시 경적을 울리면 경찰이 잡으러 오지나 않을까", "사람들한테 욕이나 먹지 않을까". 생각만 많아지는 요즘이에요. 아내가 몸조심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앞 차에서 울린 경적 소리가 들렸어요. 시계를 보니 아직 6시가 되진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때 마주 오던 승용차 운전자가 비상 라이트를 깜빡이면서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더라고요. 이차 저차에서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어요. 길가의 놀란 눈길들이 자연스럽게 도로 안으로 모여들었어요. 손뼉을 치는 사람, 구호를 외치는 사람, 휘파람을 부는 사람. 자동차 경적으로 연주하는 6월의 행진곡 같이 들리더라고요.

▲ 1987년 6월 10일 '6. 10 국민대회' 경적시위에 참여한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시민들

오후 6시 국기하강식을 기하여 전 국민은 있는 자리에서 애국가를 제창하고, 애국가가 끝난 후 자동차는 경적을 울리고, 전국 사찰, 성당, 교회는 타종을 하고, 국민들은 형편에 따라 만세삼창(민주헌법쟁취 만세, 민주주의 만세, 대한민국 만세)을 하던지 제 자리에서 1분간 묵념을 하므로 민주쟁취의 결의를 다진다.
1987년 6월 "6.10 국민대회 행동요강",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